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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하나은행 369정기예금이 남긴 것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09.30 18:05:49
프라임경제] 최근 하나은행이 내놓은 상품 중에 ‘하나 369 정기예금’이라는 것이 있다. 하나 369 정기예금의 특징으로 내세우는 것은 중간 해약을 할 수 있는 이탈 기회를 준다는 데 있다.

1년제 정기예금에 가입한 후 3개월, 6개월, 9개월 등의 기간별로 중도해지를 해도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점이 인기 비결로 연결된 것으로 은행측은 설명한다.

그간 정기예금이나 정기적금은 약정기간 이전에 이 상품에서 이탈하는 경우(유지나 불입이 곤란한 사정이 생기든, 상품에 불만이나 회의를 느끼든간에) 불이익을 줘 왔다. 즉 만기까지 꼬박 채웠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율보다 낮은, 혹은 거의 없다시피한 이자만 일부 얹어서 받고 물러나는 게 정기예금 혹은 정기적금을 깰 때의 법도였다. 

하지만 이번 상품은 이러한 상식을 깬 것이다. 물론 이에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해 우리 나라 기준금리는 극히 낮은 상태로 떨어졌다. 경제 위기가 닥치자 기업 유동성 공급 등을 이유로 중앙은행격인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정한 것이다. 하지만 위기가 일단 진정 조짐을 보이는 이른바 '금리 상승기'가 곧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즉 지금 이 이율을 놓고 계약을 했다가 금리 조건이 변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널리 깔려 있다. 이런 금리 상승기에 이 상품은 유동 자금을 주도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판단 기회를 몇 번 열어 주도록 설계돼 고객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은 것이다.

경기 회복 문제를 놓고 '출구 전략'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손실 없이 철수한다는 군사전략에서 나온 이 용어는 경제정책에서는 불경기에 푼 돈을 경기 회복 시작 무렵에 적절히 거둬들여 인플레이션 등 문제를 예방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청와대, 중앙은행이나 학계가 이런 말들을 할 때, 객체는 어디까지나 '한국 경제'다. 국가 경제에 대한 고민이 있을 뿐, 이 출구 전략, 혹은 그 세부 수단 시행으로 인해 기준 금리가 오르면 그로 인해 각 개인(가계)은 어떤 영향을 받을지 같은 작은 문제는 도외시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시민들로서는 가뜩이나 시중은행들도 내 편이라고 믿기 어렵다. 은행들이 그간 보여온 횡포에 가까운 행보, 예를 들어 펀드 불완전 판매, 키코의 불합리한 구조 등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가뜩이나 알토란 같은 밑천을 이런 격변기에 정기예금에 묶어 놓기 힘들다. 1년 사이 무슨 일이 있을지, 어느 누구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불안감이다.

하나은행의 369 정기예금은 이런 불만을 해결해 준 친시장적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은행이 금융시장에서 항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고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스스로 정보비대칭이라는 무장을 포기하고 계단을 한 칸 내려온 설계라고도 이야기할 만 하다.

물론 하나은행으로서도 속된 말로 땅을 파서 은행을 움직이는 게 아닌 바에야 타산이 전혀 없진 않았을 것이라 본다. 은행으로서도 중간에 갑자기 이탈 고객이 늘어나는 경우 등을 가정해 보았을 것이다. 하나은행의 고민이 없지 않았을 줄로 믿는다. 그리고, 냉정한 이야기지만, 하나은행은 이 상품에 가입한 금리가 그렇게 3,6,9개월마다 대거 고객 이탈이 일어날 만큼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배짱으로 이를 설계했을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작년에 고금리로 잡아놓은 정기예금 고객들이 만기가 도래함으로써, 어떤 방안을 동원하든 이를 대체할 만한 새 상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판단에서 나온 상품이 이 369 정기예금일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모든 가능성을 변수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이 상품은 스스로 고객 불만을 해결해 새 시장을 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은행은 발매 후 19영업일만에 이 상품이 유치한 예금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고 30일 밝혔다. 그간 메릴린치 손실, 키코 논란 등으로 이미지도 깎이고 공황도 겪었을 하나은행으로서는 고객 사랑을 되찾는 진일보를 이번 369 정기예금으로 만들었다고 볼 법 하다.진심이 느껴지는 좋은 상품을 설계하면 고객이 알아본다는 점을 깨닫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으리라 본다. 이 369 정기예금에 보여준 고객들의 관심은 하나은행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주문이라도도 여겨진다.

임혜현 기자 /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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