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황영기 KB금융 회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하고 회장직과 금융지주 이사직을 버렸다.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황 회장은 파생상품에 의욕적으로 투자를 했지만, 세계 금융 위기 속에서 이것이 큰 손실로 우리은행에 타격을 입혀 뒤늦게 문책 대상으로 떠올랐다. '직무정지 상당'이라는 중징계에 황 회장의 반발, 명예회복 노력이 예측됐으나 결국 당국의 전방위 압박에 일단 무릎을 꿇은 셈이 됐다.
황 회장의 무모한 사업 진행에 대해 부동의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자신만만한 태도다. 마치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을 분식회계 건으로 몰아낼 때 윤증현 당시 금감위원장이 보인 태도와 유사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황 회장의 투자 실패가 전적으로 황 회장의 책임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거리가 남아 있다.이런 사정에 대해서는 몽고메리 영국군 원수의 마켓가든 작전 책임과 비교할 만 하다.
제 2차 대전 당시에, 연합군은 1944년 가을부터 진격 속도가 꺾여 고민하게 됐다. 1944년 9월 10일 아이젠하워 총사령관과 몽고메리 원수의 회담에서 마켓가든 작전은 태동했다.
이에 따라 당시에 독일군이 몰려있던 네덜란드는 도로사정상 진격로가 한정되므로, 연합군의 주력이 지상에서 진격할 도로상에 있는 주요 교량들을 공수부대를 투입해 확보하고 영국 30군단을 투입해 네덜란드를 해방시킨다는 작전이 연합군 수뇌부를 통과했다.
즉 "공수부대원들이 낙하산으로 뛰어내려 용감무쌍하게 네덜란드에 있는 주요 다리들을 확보하면"이라는 전제 하에, 그 길을 따라 대규모 기갑부대를 진격시키면 독일군의 서부방어요새선인 '지그프리트라인'도 우회할 수 있고, 독일본토로 진격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쉽게 승인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진격예정 시간표가 모두 어긋나 버리는 불상사가 생겼고, 보름만에 공수부대만 대거 손실을 입는 참사로 끝나고 말았다. 전제 조건이 버거웠다는 점이 너무도 쉽게 묵살돼 결국 전체 작전을 망쳤다는 평가다.
물론 영국군의 몽고메리 원수가 미군보다 앞서보려는 '공명심'에서 일을 벌인 게 실패의 직접적 원인으로 평가받고 있고,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근거로 많이 이 실패가 거론된다. 당시 거의 대부분의 연합군 수뇌부가 독일군 능력 폄하론과 '조기 종전'의 단꿈에 빠져 있었다는 점도 배경을 이뤘다는 점에는 이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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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회장의 문책 이후에도 이같은 예금보험공사(우리은행 대주주)는 물론 감독당국의 소홀한 일처리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은행은 공적 자금이 대거 투입돼 되살린 국민 모두의 재산이기에 더 그렇다.
임혜현 기자/프라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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