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 결국 뜨거운 감자가 되고 말았다. 국가정보원은 서울지방법원에 박 변호사를 상대로 소가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박 변호사는 일전에 한 주간지를 통해 당국의 압력으로 하나은행과 손잡고 펼치던 하나희망재단 계획에서 배제되는 등 불이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놓고 '공안 정국'으로 회귀하는 징표가 아니냐는 불안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근거없는 '음모론'이라는 시각도 우세하게 존재해, 이를 놓고도 사회 각 분야에서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편 이번 논란이 공권력에 의한 '은행 자금줄의 개폐'라는 측면에서 지난 1985년 벌어진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에 의한 국제그룹 해체 사건과 비견할 만 하다는 호사가들의 시각도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국제그룹, 주거래 은행이 자금줄 막자 도산 '사실상 사형선고'
80년대 중반 국제그룹은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7위의 막강한 재벌이었다. 그러나 1985년 전두환 정권 당시 해체됐고, 핵심 계열사였던 국제종합건설과 동서증권은 극동건설그룹에 넘어갔다. 나머지 계열사와 국제그룹 사옥은 한일그룹이 인수했다. 고 양정모 회장은 국제상사를 중심으로 재기를 꿈꿨으나 결국 이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고인은 정부를 상대로 국제그룹 해체가 부당하다며 위헌 소송을 벌였다. 헌법재판소가 아직 자리를 완전히 잡지 못했던 초창기인 1993년 7월, 양 회장은 "정부의 공권력 행사가 기업활동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판단을 이끌어 냈다.
당시 법조 일각에서는 구 재무부가 국제그룹의 자금 흐름을 사실상 막았다는 점이나, 이것이 사실상 국제그룹에 대한 압살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공권력'으로 볼 것인지 '사실행위'로 볼 것인지에 대한 법적 논쟁도 붙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재무부장관이 국제그룹 주거래은행이던 제일은행측에 사실상 압력을 행사했고 이것은 공권력 행사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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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 을지로 하나금융-하나은행 본사> |
희망제작소가 하나은행과 협력하기로 한 사업은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등에서 연원하는 '마이크로 크레딧'. 신용도가 낮고 담보 등 여력이 부족한 저소득층에게 자금 대출을 해 재기 발판을 마련하는 사업이다.
애초 희망제작소와 하나은행은 은행측이 300억원의 규모의 하나희망펀드를 조성하고, 사업의 실질적인 콘텐츠는 희망제작소 산하 소기업발전소가 맡을 것으로 밑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7년 처음 사업 관련 협약을 맺고도 지지부진하던 이 사업은 지난해 9월 하나희망재단이 출범했음에도 결국 금년 초 결별로 종지부를 찍었다.
문제는 지난해 말까지 재단과 희망제작소는 이미 50여 명의 창업 지원자에게 10억여원을 대출해준 상황이라는 데 있다. 또 전문 인력 투입, 육성을 위해 해당업무에 인원 배치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사업이 틀어졌기 때문에 희망제작소는 형편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사무실 이전이나 일부 직원 휴가 등의 원인도 결국 하나은행만 믿고 일을 일부 진행했던 데서 찾는 시각도 우세하다.
모 주간지에 박 변호사의 언론 폭로 인터뷰가 처음 나간 당시,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희망제작소와의 협력이 우리의 재단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일 뿐"이라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사실상 사업 자금 조달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재단 운영의 파트너가 줬다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공권력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또 다른 논점이 사실인 것으로 입증되면, 주된 쟁점은 하나은행의 신의없음에서 공권력의 사실행위에 따른 자금 흐름 차단, 그리고 이런 방식을 괘씸죄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따른 위법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박 변호사의 주장이 사실로 판명되는 경우 정권 차원의 후폭풍이 불가피하고, 설사 아니라 해도 하나은행측의 무신의나 불성실이 입방아 대상이 될 여지가 있다.
결국 국정원의 이번 민사소송은 그 진행 과정에서 안보 권력의 광범위한 행사 논란은 물론, 공권력 행사의 한계를 규정하는 격전장이 될 전망이다. 하나은행으로서는 원하지 않는 싸움에 끌려 들어가게 된 셈이다. 그러나 한편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측이 헌법재판소에서 국제그룹 해체 과정의 전모를 전했듯, 하나은행도 '진실의 입' 역할을 맡는 숨은 주연이 될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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