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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명확성 서민배려 등 타산지석 삼아야

MB경제팀이 배워야 할 DJ노믹스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08.24 11:46:17

[프라임경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이 지난 23일 엄수된 가운데, ‘국민의 정부’ 정책, 그 중에서도 경제정책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국민의 정부’를 기치로 내건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초는 우리 경제가 IMF(국제통화기금)체제로 들어서는 등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한 때로, 당시 정부는 임기 내내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한국 경제를 살리는 데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됐다. 카드대란 등 실책도 없지 않았지만, IMF 체제를 조기 졸업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DJ노믹스의 이모저모는 10년만에 다시 우리 경제를 덮친 경제 위기를 이명박 정부가 헤쳐 나가는 데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고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둠의 터널을 향해가고 있지만 곧 터널을 빠져 나갈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 같은 자신감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짧은 기간에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저력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 지도부의 위기돌파를 위한 결단의 리더십과 과감한 경제구조개혁이 뒷받침됐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당시 정부는 IMF와 자금지원 합의를 통해 김 전 대통령 취임 후 불과 한 달 만에 214억달러를 도입했으며, 금융기관 단기외채에 대한 만기연장,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성공적 발행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는 것으로 DJ노믹스의 시동을 걸었다. 이 덕에 천정부지로 치솟던 환율은 안정됐고 금리도 내려가는 등 문제 해결의 고삐를 잡았다.

평소 반시장주의자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한 김 전 대통령이었지만, 당선 직후 미 재무부 차관(데이비드 립튼)을 직접 만나 정리해고를 약속하는 등으로 논란을 조기에 불식시키는 데 나서기도 했다.

이에 비해 2008년 하반기 세계를 강타한 경제 침체에 이명박 정부는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경제팀은 집권 초부터 이어온 고환율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대한 집착을 계속했다.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과감한 방향 전환을 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는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을 이끌어 내기는 했으나 초기에 외환 부족 현상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실패해 끊임없이 9월 위기설, 3월 위기설 등이 반복되는 단초를 오히려 당국이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비지니스 프렌들리’, ‘규제 완화’를 강조한 이명박 정부가 최근에야 ‘서민정책’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대목도, 시기를 놓친 정책은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워룸’을 만들고 경제 위기를 챙기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책은 각오는 좋았으나 실제 성과를 가시적으로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크게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정책추진…과감한 판단과 빠른 집행

김대중 정부의 위기 대응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업 구조조정을 과감하고 빠르게 해결했다는 점이다. 필요할 때는 대통령 자신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노사문제 등에서는 가급적 정부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 DJ노믹스의 큰 틀이었으나 대기업 등 기업의 구조조정 문제는 당시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정부 당국이 관심을 갖고 추진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기업 개혁이 늦어지자 “구조조정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5대 그룹도 워크아웃에 넣을 수 있다”(1999년 4월 간담회 발언)고 압박하는 등 경제 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빅딜 등을 통해 중복투자 부분을 교환하고 살릴 수 있는 기업을 선별하는 작업이 이뤄진 것도 이때다.

이렇게 부실의 싹을 근본적으로 도려내는 한편, 64조원의 대규모 공적자금을 신속히 투입, 부실 금융사와 부실기업 퇴출과 회생이 동시에 진행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부실기업이나 은행을 거의 외국자본에 넘기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최대한 많은 숫자의 기업·은행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김대중 정부 당시에는 해당 기업의 온갖 반발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 문제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추진됐지만, 이번 정부에서는 구조조정·재무구조 개선 문제가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아직까지 정부 당국이 직접 구조조정에 나서기보다는 채권 금융기관을 통한 구조조정 압박으로 가닥을 잡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DJ 시절 기획예산처를 이끌었던 진념 전 장관은 최근 한 간담회에서 “정부가 구조조정과 기업 지원에 있어 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금융기관에 기업 구조조정 키를 맡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출만기 연장을 해주는 등의 정책은 불분명하다”는 진 전 장관의 지적은 현재 정부당국이 구조조정처럼 직접 분명한 정책적 개입을 해야 하는 대목에서 개입을 주저하는 데 대한 우려로 읽힌다.

   
   

다만 24일부터는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을 대상으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재무구조 개선 상황을 독려·점검을 독려하는 등 고삐를 죄고 있어, 이 같은 정책 추진에 힘이 붙을지 주목된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사회안전망 ‘동시추진’ 

DJ노믹스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라는 길을 열었지만, 복지와 사회안전망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공공부문에 대해서도 개혁 정책을 추진했고 정리해고제, 근로자 파견제 등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도 추진했던 김대중 정부에 대해 진보 일각의 ‘변절’ 비판이 적지 않았던 게 현실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 노동계를 국가 노동정책 판단의 파트너로 처음 인정했다. 실제로 노사정위에서는 △정리해고 인정 △근로자파견제도 등 친기업 정책 외에도 △사회안전망 강화 △해고 남용방지 △공무원 및 교원의 노조결성 허용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을 함께 추진했다.

이 대목은 최근 이명박 정부가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추진하고 4대강 정책 등을 추진하면서도 복지 예산은 오히려 삭감하는 것과 비교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통의 정책’ vs ‘밀어붙이기’

DJ노믹스의 여러 정책이 완전무결했다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의 정책 중 벤처기업 육성 정책이나 카드 내수부양 등은 현재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대목이다. 그 후폭풍이 만만찮았고 그 부작용을 진화하기 위해 이후 많은 희생을 치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DJ노믹스는 유사 이래 처음 겪는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열린 자세를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국고가 텅 빈 상황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알리고 적극적 협조를 당부하는 한편, 정책적 조언을 구하기 위해 이전 정부에서 일했던 관료라도 능력이 있는 경우 발탁해 중임을 맡기는 등 의견 수렴의 길을 텄다. 진념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 영입이 그랬고, 노태우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이규성 씨가 DJ정부에서 초대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다시 영입되는 등 실용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김 전 대통령 시절 각 부처가 외신대변인을 두고 선제적으로 궁금증을 해결, 잘못된 위기론이 등장하지 않도록 채널을 열어둔 일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대중경제론’을 통해 내수위주의 경제, 분배위주의 정책에 경도됐던 것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같은 실용적 행보는 놀라움을 낳는 한편, 국민들의 적극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DJ노믹스의 각종 세부 정책 사항 추진에 대해 당시 국회에서도 크게 제동을 걸지 않은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잘 요약해준다. 정치적 쟁점법안은 논외로 하더라도, 경제정책 추진에 있어서는 충분한 대화와 공감대 형성을 통해 장애요소를 제거한 것이다.

이런 ‘국민의 정부’의 행보는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도 막상 모피아 위주의 인선, TK·공신 발탁 우선 경향, 관치 금융 구태 반복, 외국 언론과의 소통과 이해 실패 등의 논란을 끊임없이 낳고 있는 MB노믹스 사령탑의 지난 1년 반과 대비되고 있다.

이렇게 ‘대중경제론’의 독선에서 벗어나, 시장개방을 포함한 영미식 자본주의 정책 시행과 유럽식 사회복지 정책들의 조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DJ노믹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대의 괄목한 만한 각종 경제지표들의 배경이 됐다. 이렇게 두 마리 토끼 잡기를 추구했던 DJ노믹스를 벤치마킹해 이를 초월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2기를 맞이한 MB노믹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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