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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금융대수술 회고]평균은 A+,제일·외환銀 '지못미'

외환위기 맞아 금융정상화 총력, 일부은행 헐값매각 논란도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08.18 16:39:26

[프라임경제] 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언론개혁을 추진해 보수언론에 메스를 대는 한편, 남북 관계의 새 장을 열었다. 더욱이 호남차별을 일부 사라지게 하는 등 긍정적 족적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고인의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가장 큰 일이라면 집권 초부터 닥친 외환위기 해결이라는 과제를 온몸으로 맞아 선방한 점일 것이다. 김 전 대통령 서거를 당면해 그의 금융위기 해결 그 중에서도 금융 부문 대수술을 간단히 짚어본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의 국가경제 운영 실패로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라는 표현과 함께 이 캐치프레이즈가 많이 사용됐다)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목도하면서 임기를 시작했다. 

◆국제표준과 따로국밥이던 금융권에 칼날 '정조준'

200년 12월 초,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주목받으면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종금사들이 줄줄이 거래정지 상황을 맞는 상황은 우리 나라 금융계의 토대가 얼마나 약한 것이었나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자금을 들여오면서 각 기업의 구조조정과 회계기준의 국제표준화 등을 요구받는 수모를 겪었다. 산업 부문만이 아니라 금융회사 중 부실한 곳은 국제기준에 비추어 퇴출시켜야 한다는 압박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퇴출 또는 경영 정상화를 결정하는 최종 결정 검증절차를 금융위원회 등 감독당국으로부터 받는 진통 끝에, 2003년까지 6년 동안 14개 은행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등 금융 시장에 대수술이 단행됐다.

◆은행간 헤쳐모여, 공적자금 투입 통해 '숨고르기'

하지만 이처럼 국내 금융기관들의 부실을 정리하면서도 국민의 정부는 외국으로의 매각이라는 쉬운 방법을 가급적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오히려 당시 정책집행과 이후 결과물들을 보면 공적 자금을 투입해 최대한 금융기관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것으로 요약된다.

   
  <사진=한일과 상업은행이 합쳐진 우리은행은 훗날 우리금융지주의 모태가 됐다. 우리금융지주는 이후 '메가뱅크론'의 중심핵으로 언급되는 등 뉴스메이커가 됐고, 현재까지도 기업운영자금 지원 등 정부 정책을 추진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서울 회현동 우리금융-우리은행 본사>  
이는 특히 은행이 무너지는 경우 국민들의 자산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것은 물론, 심리적 공황이 올 것을 우려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도 많다. 그러나 최근 '화폐전쟁'의 쑹훙빙 같은 이가 지적하듯, 이러한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한 기업 살리기는 '알짜 재산'이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우수한 수단이 됐다는 평가도 높다. 쑹훙빙은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은 외국 투기자본이 시도한 '양털깎기(금융위기를 초래하고 알짜 기업이나 금융기관을 헐값에 먹어치우는 일)'가 사실상 거의 성공하지 못한 나라'라고 높게 평가한 바 있다.

더욱이 이같은 효과 외에도, 금융기관을 합종연횡시키면서 세계 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규모를 이룬 점, 그리고 금융지주회사 추진에 한결 쉬운 발판을 미리 놓은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일본 경제에서나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메가뱅크론'이 각종 지주사 설립 이후 진지하게 종종 논의된 것만 해도 우리 나라 금융사에서 DJ식 위기 정리 비법이 갖는 순기능의 비중을 평가할 수 있다.

일례로 1999년 1월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몸집을 키운 한빛은행이 탄생했다. 평화은행은 2001년 4월 한빛은행과 합병됐다. 이같은 몸집 불리기가 현재 우리금융지주의 태동이었다.

후일 조흥은행은 신한은행과 합병이 됐다. 신한지주가 현재 한국 금융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면 1982년 탄생한 후발주자 신한이 조흥은행을 삼키는 게 허락된 이 '비상수단적' 합병이 어떤 지각변동 효과를 가져왔는지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사진=하나은행도 서울은행 인수 등 김대중 정부의 금융계 대수술 와중에 수혜를 봤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서울 을지로 하나금융-하나은행 본사)>  
작은 금융투자회사로 시작했던 지금의 하나은행이 하나금융지주로 빅 4 자리를 꿰어차게 된 것도 부실한 은행들을 기존 은행에 넘겨 회생 기회를 잡는다는 DJ식 정책의 수혜에 크게 기인했다는 평가다. 충청은행과 보람은행, 후일 서울은행과 뭉쳐졌다. 주택은행은 지금의 국민은행과 합병됐고 이후 KB금융의 발전 기반이 됐다.

◆외자 잠식 일부 은행 '지못미', 훗날 불씨되기도

그러나 김 전 대통령 치세에 모든 은행이 해피엔딩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일부 은행은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서 '외국계 은행'이라는 낯선 이름을 달게 됐다. 더욱이 헐값 매각 논란 등과 함께, 외국계 기업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마찰이 뒤따르기도 했다.

한미은행은 경기은행을 흡수한 뒤 한국씨티은행으로 합쳐졌다.

외환은행은 론스타로 매각되기는 했으나, 헐값 매각 논란으로 한동안 시달렸다. 외환은행의 론스타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해 경영진이 경영부실을 과장해 협상기준 가격을 낮추고,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 비율 전망치를 부실하게 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면서, 일대 파동이 인 것.
 
또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이같은 매각절차상의 문제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관련 법규를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결국 오랜 법정 공방 끝에 변양호 씨 등 당시 고위공직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

   
  <사진=제일은행과 외환은행 등 일부는 외국자본으로의 매각을 면하지 못했다. 더욱이 일부 은행들은 헐값 매각 논란과 함께, 구조조정, 이질적 기업문화 등 후폭풍도 상당히 크게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서울 종로 SC제일은행 본사)>  
제일은행 역시 헐값 매각 논란 등을 겪은 케이스다. 8조4000억원의 공적 자금이 투입됐던 제일은행은 외국계 펀드인 뉴브리지캐피털에 5000억원이라는 헐값으로 매각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후 제일은행은 뉴브리지캐피탈에 매각된 후 스탠다스앤차터스(SC)그룹에 재매각됐다.지금의 SC제일은행이다.

SC제일은행은 외국계 임원들이 계속 부임하면서 직장 문화의 이질감으로 종종 파열음을 냈다. 각종 실적 압박 논란이 자주 불거지면서 노조의 반발이  크게 부각되기도 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승부수

이렇게 금융위기 여파 속에서 금융기관들을 속히 정상화시키는 데 최선을 다한 김 전 대통령의 치적은 전체적으로 볼 때 우수한 정책으로 평가된다. 특히 국제통화기금 체제에서 각종 압력을 버티면서 금융기관의 내실을 다지고 회생 가능성을 연 대목, 또 금융지주제로의 이전 토대를 구축한 점은 훗날 10년만에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 침체의 여파를 겪는 지금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세계 경제 침체 속에서 기업활동을 뒷받침할 무기로 당시 살려낸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이 외국 투기 자본에 넘어간 점 등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당시 부족한 여력에서 최선을 다한 점만큼은 고인의 치적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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