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이 상반기에 외형적으로는 비교적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하반기로 들어서면서 지원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중소기업청과 진흥공단이 주도적으로 뛰는 만큼 시중은행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어 이 점에 대해서도 보완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하반기에는 경기회복을 앞둔 인플레이션 방지책인 ‘출구전략’ 검토 등도 맞물려 있어, 시중은행들의 적극적 협조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기청·진흥공단·기보 양적팽창 앞장
상반기 중기 유동성 지원 부문의 일선을 맡은 곳은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공공기관.
정부는 당초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작년 2조9000억원에 비해 1조4000억원 늘린 4조3000억원으로 확대한 바 있다. 더욱이 중기청·중기진흥공단에 따르면 이 정책자금 중 74.6%가 상반기에 이미 집행됐다. 중기 유동성 강화를 위해 상반기에 조기 집행 방침을 세운 것이다. 이번 상반기 집행은 작년 상반기 집행 금액(1조5138억원)의 2배를 초과한 규모다.
기술보증기금 역시 보증을 통한 중소기업 자금난 해소에 나섰다. 기보는 상반기에 10조5808억원의 보증을 지원했다. 전년 동기 지원액 6조4263억원에 비해 4조원이나 증가한 데다가, 사상 최대 기록인 2001년 상반기 7조8000억원보다도 늘어난 규모다.
◆은행권은 중기 대출 미온적
이렇게 공공기관 지원이 늘어난 데 비해, 시중은행들은 중기 대출보다 주택담보대출 등 다른 곳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8개 국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6조2000억 원 늘어난 데 비해서, 주택담보대출은 18조원 이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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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는 1월 2조 2000억원, 2월 3조 3000억원, 3월 3조 3000억원, 4월 3조 3000억원, 5월 2조 9000억원으로 월평균 3조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이 추세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실물경제 지원을 위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릴 것을 누차 강조해 왔지만, 정작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등 안정성이 높은 분야에 더 신경을 쓴 것이다.
◆출구전략 준비 국면, 총액한도대출폭 동결
시중은행들이 중기 유동성 지원을 강화하도록 무한정 지원을 늘리기도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3분기 총액한도대출 한도를 전분기와 같은 10조원 수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금통위에서 1분기 총액한도대출 한도를 9조원에서 10조원으로 확대하기는 했으나, 이후 2분기 연속 이 수준을 이어나가고 있다.
총액한도대출은 한국은행이 중소기업 대출용으로 시중은행에게 지원하는 자금으로, 대표적인 준재정활동으로 꼽힌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나 기금 등 정부의 공식적 재정활동 외에 사실상 정부정책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미 중소기업청 등이 지출할 수 있는 금년도 중소기업 정책자금도 하반기에는 30%만 남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총액한도대출의 분기 한도를 동결한 것은 정부당국의 고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출구전략’을 전혀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대래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최근 “출구전략을 현재 시행하자고 하는 정부는 없는 만큼 실행에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은 당국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민간 부문의 회복 속도를 가늠하면서 출구 전략 시행 계획을 저울질하고는 있음을 시사한다.
통화안정증권(통화량을 줄이기 위해 중앙은행이 개인과 금융기관에서 파는 채권) 발행액이 급증하는 등 ‘출구전략’을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방증도 있다. 지난 6월 현재 통안증권 발행 잔액은 약 168조원으로, 작년 말 대비 41조원가량 증가한 것이다.
결국 당국은 중기 유동성 지원이 시급하기는 하지만, 출구 전략 준비의 일환으로 더 이상의 지원폭 확대는 어렵다는 가이드라인을 이미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중은행 ‘중기 신규 대출 늘리기 싫다’ 속내
결국 당국은 하반기에 시중에 풍부하게 풀린 유동성도 관리해야 하고, 현재까지 풀린 유동자금은 실물부문, 즉 시장 성장가능성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데 만전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주택 가격 상승과 이에 수반되는 물가 인상 견인 가능성이 높은 주택담보대출 등보다는 기업 대출에 시중은행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3일 주택담보대출 동향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시장 불안이 우려되면 대출기준 강화 등 선제적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준수와 기업 대출이 부동산 시장 유입 등 비성장 분야로 전용되는 ‘누수 현상’ 점검도 추진된다.
하지만 급격하게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하는 등 압박을 가해 중기 대출 여력을 늘리도록 하면 부동산 시장이 위축돼 경기 하강과 심리 악화 등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시중은행들에게 주택담보대출 제한 등을 지나치게 압박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상한선을 제출받는 등으로 압박하더라도, 대출 여력이 되는 여유 자금을 은행권에서 스스로 중기 대출로 돌리도록 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금융권 분위기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시중은행 여신 총괄 책임자들을 조사해 한국은행이 6일 내놓은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경우 대출태도전망지수가 13으로 2분기 16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하반기에도 정부의 지원정책이 지속됨에 따라 기존대출의 만기연장 등을 통해 대출태도를 완화할 전망”이라고 설명을 달긴 했으나 시중은행들이 느끼는 중소기업에 대한 신규 대출 요인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경기 둔화 여파에 따라 올 5월 말 기준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2.6%로 2007년 말 대비 1.6%포인트나 상승했다. 부도율은 아직 큰 악화 국면은 아니지만, 사실상 중기 유동성 강화로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유력하다.
◆구조조정 후에 은행대출·정책자금 숨통 예상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강화가 이런 대출 문제 해결에 전기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미 주채무계열(대기업)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완료했고, 이달 15일까지 841개 중소기업들이 세부점검을 받는 등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일정이 오는 11월말까지 진행하게 된다.
이 계획이 집행되면, 단기적으로는 중소기업 부도율이 높아지는 등 여파가 클 수있지만 나머지 중소기업들에게는 오히려 대출 지원이 집중될 수 있다.
향후 11월까지의 중소기업 구조조정 집행 일정에 따라 체력 자체가 부실한 기업은 정리되고, 중소기업이 시중은행권 대출 여건이 충분히 있는 중소기업이나, 담보 등은 마땅찮으나 기술력 등이 있는 기업으로 선별될 전망이다.
그 반사적 효과로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 전반을 꺼리거나 상반기에 은행 자금 대출을 받기 어려운 기업들이 중소기업 정책자금 쪽으로 대거 쏠리는 현상도 완화돼, 한결 여유가 생길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른바 저탄소 녹색산업 기업 등이 큰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상반기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 과정에서도, 당국의 의지에 따라 신재생 에너지, 화석연료 청정화, 에너지 효율 산업 등 이른바 저탄소 녹색산업 중소업체들과 벤처·이노비즈 기업(기술혁신형 중소기업) 등 혁신형 기업에 대한 지원이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저탄소 녹색산업 업체들에 대한 지원은 지난해 529억원에서 올 6월까지 1087억원으로 105.5% 늘어났고, 혁신형 기업은 같은 기간동안 1조 803억원에서 1조3976억원으로 29.4% 증가했다.
향후 중소기업 중에 옥석이 가려지면 이렇게 되면 지원 강화를 통한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도 한결 여유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은행과 정책자금 집행기관인 중기청과 중기공단이 대출 심사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여전하다. 시중은행들이 여전히 과거의 담보 대출 관행을 고집할 우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옥석이 가려지는 중소기업 구조조정 이후에는 기술력 등을 평가해 대출 기준으로 끌어들이는 노하우가 더 중요하게 부각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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