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상황 보고를 받은 임채진 검찰총장의 장고(長考)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임 총장은 우회적으로 검찰 수뇌부 인사들에게 불구속 의견을 내비쳤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대통령의 직무가 워낙 광범위한 만큼, 청탁의 구체성 없이 돈을 받았어도 '포괄적적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돈 600만달러가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네졌다고 의심할 정황은 없지 않으나,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이를 알았다고 볼 결정적 고리가 없다는 게 문제다.
◆유학자금 등 100만 달러 존재 인지했나? 처벌 어려움 클듯
검찰은 미국에 있던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 씨가 주택 임대나 금융거래 등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국정원 직원의 도움을 받은 정황을 포착해 냈다.
국정원이 100만 달러라는 돈의 흐름을 알았고, 필연적으로 이는 국가원수인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가 됐을 것이며 자연히 노 전 대통령이 재직 시절 100만달러 존재를 알았을 것이라는 고리가 형성된다.
하지만 막상 핵심 사실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의 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이 여전히 '100만달러는 아내(권양숙 여사)가 받아 빚을 갚는 데 썼다'며 모르쇠를 고집하고 있다.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 몰래 100만달러 일부를 미국에 보내고 또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국정원에 우회적으로 청탁을 넣어 돌본 것이라면 이를 노 전 대통령 혐의와 직접 연관시키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500만 달러 사업투자금 문제도 논란거리
작년 태광실업 홍콩 현지법인 APC 계좌에서 인출돼 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 연철호 씨에게 건너간 500만달러도 핵심고리가 빠져 노 전 대통령을 직적 압박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일단 연씨가 아닌 건호씨가 이 돈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은 검찰 수사에서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문제는 노 전 대통령과 관련성이다.
결국 검찰로서는 권 여사를 한 두 차례 더 조사해 진술이나 정황을 끌어내거나 건호 씨를 걱정하는 노 전 대통령의 심리를 역이용해 마음을 돌이킬 수 밖에 없게 된다.
또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적 지시가 있었다는 김 전 국정원장의 진술을 얻어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실제 지시사항이 청와대에서 나왔다고 해도 정 전 비서관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됐을 가능성이 더 높아 국정원발 진술만을 근거로 전직 대통령을 얽어 넣기에는 애로사항이 적지 않을전망이다. 미국 내 건호 씨 행보 등을 담은 정보관의 보고서가 존재하거나 상부에 제출됐어도 수뇌부에서 이를 판단 착오 등으로 무시했다는 쪽으로 정리되면 노 전 대통령 처벌 문제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박연차 단일 계통 금품수수도 '골칫거리'
더욱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노태우 전 대통령 사건을 근거로 포괄적 뇌물죄 처벌의 뼈대를 세우고 있는 검찰로서는 이들 사건처럼 파렴치성이 높지 않다는 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고민거리가 있다.
이 점이 일선 수사부서나 소장 검사들과 수뇌부간의 판단에 미묘한 시각차를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전 전 대통령이나 노 전 대통령이 경우 불특정 다수의 기업들로부터 뇌물 수수를 했으나, 노무현-박연차 거래의 경우 오랜 정치적 동반자인 단일 창구를 통한 자금 지원이라서 정상 참작 여지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어 구속 단행에 부담을 주고 있다. 대가성 여부 증명이 재임 중 인지 여부라는 벽에 부딪힌 것과는 별개로, 만약 인지 혹은 인지했을 가능성을 입증해 내도 여론 등의 부담이 작용한다는 것.
박 회장과 관련성이 있는 전현직 검찰 인사들의 처리 수위 문제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위와 연동될 수 밖에 없어, 검찰로서는 후폭풍을 여러 모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별개의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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