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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남강·촉석루 '국가 자연유산 명승' 지정…촉석루 보물승격 추진

역사관광 콘텐츠 확충·교육해설 프로그램 강화…1948년 국보지정, 6·25전쟁 당시 폭격 전소

강경우 기자 | kkw4959@hanmail.net | 2026.11.04 16:26:28
진주를 상징하는 대표적 풍경이자 호국 역사의 현장인 '진주 남강·촉석루 일원'이 국가가 공인하는 명승으로 이름을 올렸다. 개별 건축물 위주의 보호를 넘어, 벼랑과 강물, 성곽이 맞물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복합 역사문화경관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인정받은 첫 쾌거다.

진주남강 촉석루 국가 자연유산 명승 지정. ⓒ 진주시

진주시는 4일 열린 국가유산청 지질·명승·조경분과 국가유산위원회 최종 심의에서 본성동 진주성 일대의 '진주 남강·촉석루 일원'이 국가지정 자연유산 명승으로 공식 지정됐다. 

현재 진주시 관내에는 보물 27점을 비롯해 43점의 국가유산이 자리 잡고 있지만, 자연유산법상 명승으로 지정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지정 구역은 촉석루라는 단일 누각에 머물지 않는다. 남강 변의 깎아지른 자연 절벽과 진주성이 앉은 구릉, 논개의 충절이 서린 의암(義巖), 사당인 의기사(義妓祠)와 의암사적비에 이르는 일대 경관 전체를 포괄한다. 

국가유산청 심의위원회는 배후 구릉과 전면의 물길, 수직 절벽을 방어 기지이자 조망처로 활용한 독특한 지형적 입지와, 고려 말 이래 축적된 군사·행정 중심지로서의 장소성을 핵심 평가 요인으로 꼽았다.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과 논개의 순국 등 구체적 역사 사건이 특정 자연 지형과 긴밀히 결합해 예술 작품으로 계승돼 온 점 역시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이번 명승 지정은 진주시가 오랜 기간 공을 들여온 '촉석루 보물 승격' 작업과 맞물려 상당한 정책적 시너지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1241년 고려 고종 때 진주목사 김지대가 창건한 촉석루는 평상시 풍류와 연회의 장소이자 전시에는 장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남쪽 장대(將臺) 역할을 해왔다. 

해방 직후인 1948년 국보로 지정될 만큼 건축미를 인정받았으나,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전소되면서 국가유산 지정이 해제되는 비운을 겪었다.

현재의 촉석루는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성금과 국·도비를 모아 원형대로 복원한 결과물이다. 

당시 국가 정식 승인 절차를 거치고 원형 고증 설계도와 공사 기록을 체계적으로 남겨두었기에, 단순 재현물이 아닌 역사적 연속성을 입증하는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진주시는 지난 8월 7만1500여명에 달하는 시민 서명을 결집해 촉석루를 보물로 승격해 달라는 지정요청서를 국가유산청에 제출한 바 있다. 이번 명승 지정으로 촉석루를 둘러싼 터전과 지형의 가치가 공식화되면서 누각 자체의 가치 재평가 논의에도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남강 일대 주민들의 묵은 헌신에 대한 행정적 감사도 뒤따랐다. 조규일 진주시장은 진주 남강과 촉석루 일원이 지닌 호국과 충절의 유산을 세계적 유산으로 가꾸어 나가겠다고 밝히며, 1963년 진주성이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60여년 동안 도시 고도 제한 등 각종 재산권 규제를 묵묵히 감내해 준 진주시민들에게 각별한 경의를 표했다.

진주시는 향후 국가유산청과 함께 체계적인 중장기 보존·관리계획을 수립하는  성곽 경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관람 동선과 탐방 환경을 재정비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남강 수변과 진주성 경내를 잇는 역사 투어 콘텐츠를 고도화하고, 시민과 방문객이 유적의 층위별 가치를 쉽게 체감할 수 있도록 현장교육 및 해설 시스템을 전면 보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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