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직원이 퇴사하면 기업은 사원증을 회수하고 업무용 계정을 정지하며 담당 업무를 후임자에게 인계한다. 그러나 그 직원이 직접 만들고 운영하던 인공지능(AI) 에이전트는 어떻게 될까. 고객 문의에 응답하고 자료를 분석하며 업무를 처리하던 AI가 퇴사 이후에도 작동한다면, 그 안에 축적된 지식과 데이터는 누가 관리해야 하는가.
한국일보가 보도한 앤트로픽의 사례에 따르면, 올해 8월 AI 에이전트의 총 작업시간은 직원 전체 근무시간의 6배에 달했다. 작업시간이 곧 생산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의 업무 수행이 사람의 노동시간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기업은 AI가 얼마나 많은 일을 대신하는가를 넘어,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식을 어떻게 조직의 자산으로 남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 IT업계에서는 직원이 퇴사한 뒤에도 그가 생성한 AI 에이전트의 접근권한과 운영 책임이 남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직원의 계정을 정지해도 별도의 인증정보로 작동하는 AI는 계속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반대로 에이전트를 중단하면 자동화된 업무와 축적된 지식이 단절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반영된 전문성이다. 과거에는 숙련된 직원이 떠나면 경험과 노하우의 상당 부분이 함께 사라졌다.
이제는 직원의 업무 절차와 판단 기준, 문제 해결 방식이 AI 에이전트의 설정과 실행기록에 남을 수 있다. 개인의 경험을 조직이 재사용할 수 있는 지식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다만 AI가 수행한 모든 판단이 자동으로 저장되는 것은 아니므로 무엇을 기록하고 보존할지부터 설계해야 한다.
데이터의 가치는 축적량보다 활용 가능성에 달려 있다. CIO가 소개한 가트너의 전망에 따르면 AI 데이터의 의미와 맥락을 우선 관리하는 기업은 내년까지 정확도를 최대 80% 높이고 비용을 최대 60% 절감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이는 실제 달성된 성과가 아닌 전망치지만,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예컨대 영업직원이 AI로 고객 제안서를 작성했다면 완성본만 보관하는 것보다 고객 요구와 AI의 제안, 직원의 수정 내용, 계약 결과를 연결해 관리하는 것이 유용하다. 어떤 판단이 성과를 높였고 어떤 오류가 반복됐는지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새로운 경쟁자산은 단순한 AI 도구나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과 AI가 함께 만들어낸 업무 과정과 판단, 성과가 연결된 지식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전문성에 대한 평가 기준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특정 업무를 오래 수행하며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사람이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AI가 반복 업무를 수행하고 관련 지식을 축적하는 조직에서는 지식의 보유만으로 전문성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AI에 축적된 정보를 해석하고 오류를 검증하며 새로운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물론 고객과의 신뢰, 복잡한 상황에 대한 판단과 책임 있는 의사결정은 여전히 사람의 역할이다. 기업 역시 직원이 AI로 얼마나 많은 업무를 처리했는지뿐 아니라 어떤 지식을 축적하고 개선했으며 조직 성과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AI와 함께 조직의 지식을 발전시키는 능력이 새로운 인력경영의 평가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제 기업은 AI 에이전트의 도입 규모보다 업무지식과 데이터를 어떻게 축적하고 승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직원이 퇴사하거나 이동할 때 에이전트의 운영권한과 함께 업무기록, 판단 기준, 개선 이력을 후임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개인정보와 영업비밀을 보호하고 불필요한 데이터는 폐기하는 체계도 필요하다.
가트너는 오는 2028년까지 기업 보안 침해 사고의 25%가 관리되지 않는 머신 권한과 AI 에이전트 오용에서 비롯될 것으로 전망했다. 데이터 활용이 중요해질수록 관리 책임도 커지는 것이다. 과거 기업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이제는 사람이 AI와 함께 만들어낸 지식을 조직의 자산으로 축적하고, 이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AI 시대의 인력경영은 사람의 경력을 관리하는 것을 넘어, 사람이 남긴 전문성을 조직의 미래 역량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