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본래 이 말은 먹을 것이 넉넉해 살이 오르는 풍요를 반기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살이야말로 가장 경계하는 대상으로 바뀌었다. 천고마비가 더는 미덕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식탁의 풍경이 그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흰쌀밥에 고깃국 한 그릇을 잘 먹는 것이 사는 일의 상징처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반대다. 흰쌀밥은 줄이고 잡곡과 나물을 챙기며, 밥은 어느새 살이 찌는 주범처럼 여겨진다.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즉석밥마저 작은 공기로 나오는 시대다. 우리의 고민은 '무엇을 먹을까'에서 '무엇을 덜 먹을까'로 옮겨 왔다.
그런데 같은 시대, 같은 하늘 아래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오늘 끼니'를 걱정한다. 넘쳐서 덜어 내는 사람과 없어서 거르는 사람이 한 시대를 함께 산다. 그 엇갈린 풍경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리가 바로 혼자 사는 이의 밥상이다.
실제로 그런 분들께 밥을 보내 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 한 지자체와 손잡고, 홀로 사는 어르신들께 매달 한 번 집에서 지어 드실 밥을 보내 드리는 일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끼니를 거르지 않게 밥을 넉넉히 채워 드리면 되는 일이라고. 그러나 막상 시작해 보니, 밥을 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깊은 일이었다.
매달 문 앞에 도착하는 한 상자의 밥은, 받는 분들에게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바깥의 누군가가 아직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다음 달에 또 밥이 간다는 것은, 다음 달에도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혼자 사는 이에게 그 약속은 한 달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밥 한 끼가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비유가 아님을, 이 일을 하며 알게 되었다.
보내 드리는 것이 데워서 때우는 즉석식이 아니라 손수 지어 드실 밥이라는 점에도 마음을 썼다. 받아서 바로 먹어 치우는 한 끼가 아니라, 직접 짓고 상을 차려 맞이하는 한 끼. 그 작은 수고 속에서 하루에 할 일이 생기고, 갓 지은 밥의 온기가 집 안에 돈다. 끼니를 대신 때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어 드실 수 있게 곁을 두는 일. 그것이 우리가 택한 방식이었다.
우리는 흔히 복지를 '먹여 드리는 일'로 생각한다. 몇 끼를 채웠는지, 영양은 충분한지를 센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혼자 사는 이에게 밥이 가진 의미는 열량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나를 떠올려 밥을 챙겨 보냈다는 그 마음이, 끊어져 가던 세상과의 끈을 다시 잇는다. 배를 채우는 일과 외로움을 더는 일은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밥상 앞에서는 하나다.
세 집 중 한 집이 혼자 사는 시대, 끼니는 갈수록 개인의 일이 된다. 혼자 먹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혼자 먹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아무도 안부를 묻지 않는 밥상도 함께 늘어난다. 고독사라는 말의 밑바닥에는 결국 '혼자 먹다가 혼자 떠난' 밥상이 있다.
혼자 사는 이에게 끼니때는 생각보다 큰 자리를 차지한다. 출근도 약속도 없는 하루에서, 밥때는 흐트러지기 쉬운 하루를 그나마 구분해 주는 눈금이다. 그 리듬이 무너지면 하루는 경계 없이 뭉개지고, 사람은 쉽게 자신을 놓아 버린다. 누군가 때맞춰 보내는 한 끼는 그래서 영양을 넘어, 하루에 다시 눈금을 그어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밥을 보내는 일은 단순한 배식이 아니라 안부를 배달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같은 한 끼라도 컨베이어 벨트에서 받아 든 것과, 누군가 내 이름을 알고 챙겨 보낸 것은 다르다. 전자는 배를 채우고 후자는 사람을 채운다. 복지의 언어가 '몇 끼를 제공했는가'에서 '그 한 끼가 어떤 경험이었는가'로 옮겨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렵게 생각할 일도 아니다. 상자에 이름을 적는 일, 계절이 바뀌면 안에 담는 것을 바꾸는 일, 좋아하시는 것을 기억해 하나 더 넣는 일. 비용이 크게 드는 일이 아니다. 다만 받는 이를 숫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느냐의 문제다. 그 작은 차이가 '배급받는 끼니'를 '누가 나를 위해 차린 밥상'으로 바꾼다. 돌봄은 거기서 시작된다.
밥은 혼자 먹어도 된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 둬선 안 된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끼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아직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유일한 증거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밥을 건넬 때 실은 건네는 것은, 밥이 아니라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덜 먹는 시대다. 밥공기는 작아지고 밥상은 가벼워진다. 그러나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을 더 줄일까가 아니라, 줄어든 밥상 안에서도 서로의 안부를 전할 방법을 찾는 일이 아닐까. 덜어 낼수록, 누군가에게 그 한 끼는 오히려 더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내 밥을 줄이는 그 자리에, 누군가에게 보낼 밥 한 끼를 놓아 두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이 풍요로운 시대가 정작 놓치고 있는 한 끼인지도 모른다.
다음 끼니에 뵙겠습니다.

- ㈜ 잇더컴퍼니 대표
- 제주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
- 서울대학교 푸드테크 최고책임자과정
수료 및 월드푸드테크협의회 정회원
전) 매일유업 조리식품 브랜드매니저
전) WK 마케팅그룹 브랜드컨설팅 컨설턴트
전) 한화 S&C 마케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