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기업에서 사람을 관리하는 가장 오래된 기준 가운데 하나가 '직무'다. 기업은 직무를 만들고 사람을 채용한 뒤 부서와 직급을 부여했다. 교육과 평가, 보상도 직무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이 답을 알려주는 도구를 넘어 스스로 계획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하면서 이 익숙한 방식이 흔들리고 있다. 기업의 질문도 '이 직무에 누구를 뽑을 것인가'에서 '무엇을 사람이 하고, 무엇을 AI가 하며, 둘의 능력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로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의 최근 인사 혁신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준다. 삼성전자 DX부문은 사내외 데이터 112만건 이상을 AI로 분석해 16개 직무를 1만487개의 세부 스킬로 구분했다. 직원은 'My Skills'를 통해 자신의 역량과 부족한 역량을 확인하고 교육과 프로젝트, 새로운 직무까지 추천받는다. 사람을 하나의 직무에 묶어두는 대신 개인의 스킬을 세밀하게 파악해 필요한 일과 연결하는 것이다. 인력관리의 기본 단위가 '직무'에서 '스킬'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AI 에이전트가 들어오면 변화는 더 커진다. 오픈AI가 공개한 자율형 에이전트 '닷(Dots)'은 사람이 계속 지시하지 않아도 업무 흐름을 파악하며 일을 수행한다. 버그를 모니터링하고 수정안을 제안하거나 예산 수립과 같은 업무도 맡길 수 있으며 회계·마케팅·법무 등 전문영역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AI가 사람이 일을 잘하도록 돕는 '도구'에서 일정한 업무를 위임받는 '가상의 팀원'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인력관리도 달라져야 한다. 하나의 직무가 여러 업무로 구성돼 있다면 과거에는 이를 수행할 한 사람을 채용했다. 앞으로는 자료수집과 분석, 문서작성 등은 AI가 맡고, 일부는 인간과 AI가 협업하며, 판단과 협상, 관계 형성, 책임처럼 인간에게 적합한 업무는 사람이 담당할 수 있다. 기업이 확보해야 할 대상도 '직무 하나를 수행할 완성된 사람'에서 인간의 스킬과 AI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조합하는 체계로 확장된다.
채용과 교육 역시 달라진다. 조직에 부족한 스킬을 파악한 뒤 이를 신규 채용으로 확보할지, 기존 직원의 재교육으로 채울지, AI에게 맡길지를 판단해야 한다. 교육도 획일적인 방식에서 개인별 '스킬 갭'을 찾아 채우는 방향으로, 인사이동도 부서 중심에서 필요한 스킬을 가진 사람이 프로젝트를 찾아 이동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인력경영의 공식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HR이 '사람→직무→조직→성과'였다면 앞으로는 '사람의 스킬+AI의 역량→프로젝트→성과'라는 구조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직무 자체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직무라는 큰 상자 안에 있던 업무가 작은 단위로 나뉘고 각각의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인간과 AI에게 재배분되는 것이다.
따라서 AI 시대에 기업이 준비해야 할 것은 직원들에게 생성형 AI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다. 조직의 일을 다시 들여다보고 어떤 일은 AI가, 어떤 일은 인간과 AI가 함께, 어떤 일은 인간이 맡아야 하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스킬과 AI의 역량을 연결하는 새로운 조직을 설계해야 한다.
AI 시대에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직무의 경계'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은 사람을 많이 가진 기업도, AI를 많이 도입한 기업도 아닐 것이다. 사람의 스킬과 AI의 능력을 가장 잘 조합해 성과를 만들어내는 기업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 인력경영도 '사람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를 넘어 '사람과 AI의 일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