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해외 시장에서 한글이 더 이상 번역해야 할 ‘낯선 문자’에 머물지 않고 있다. 제품명을 현지어로 바꾸는 대신 ‘꼬북칩’이나 ‘참붕어빵’을 그대로 내세우고, ‘찍먹’과 ‘대박’처럼 한국에서 사용하는 표현까지 패키지에 담는 식이다.
K푸드와 한국 문화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한글 자체가 제품의 한국 정체성을 보여주는 디자인 요소로 활용되는 모습이다.
29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리온(271560)이 중국과 베트남, 러시아, 인도 등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는 제품 패키지에 한글을 그대로 표기하는 ‘한글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달 베트남에서 판매하던 네 겹 스낵 ‘마시타’의 제품명을 국내와 동일한 ‘꼬북칩(Kobukchip)’으로 변경했다. 미국 등에서 판매 중인 ‘붕고(Bungo)’에는 한글 디자인을 원하는 현지 바이어들의 요청을 반영해 ‘참붕어빵’을 한글로 병기했다.
한글 제품명을 넘어 한국 특유의 표현도 패키지에 등장했다. 베트남에서 판매되는 따요(오!감자)에는 소스에 찍어 먹는다는 의미의 ‘찍먹’을 넣었다. 오스타(포카칩) 등에는 ‘대박’을 사용했다.
맛을 설명하는 방식에서도 한글을 활용한다. 중국 랑리거랑(꼬북칩)에는 ‘콘스프’, 베트남 따요에는 ‘떡볶이’, 인도 케이스낵에는 ‘스파이시’를 각각 한글로 표기했다. 외국 소비자가 뜻을 곧바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음에도 한국 제품이라는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한글 자체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 것이다.
한글을 글로벌 브랜드 자산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삼양식품(003230)의 ‘불닭’이다.
불닭볶음면은 해외 진출 초기 ‘Hot Chicken Flavor Ramen’이라는 영문 설명을 앞세웠다. 글로벌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현재는 ‘Buldak’ 자체가 제품을 지칭하는 브랜드명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어 ‘불닭’의 발음을 그대로 로마자로 옮긴 명칭이 해외 소비자에게 고유명사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삼양식품 역시 공식 글로벌 홈페이지에서 제품을 ‘Buldak Ramen’으로 소개하고 있다. 수출용 불닭볶음면에도 한글 제품명을 활용해 한국 제품이라는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브랜드의 해외 비중도 크다. 올해 상반기 삼양식품 전체 매출에서 수출 비중은 80%를 넘어섰다. 지난해 불닭 브랜드 해외 판매량은 약 17억개를 기록했다. 한글에서 출발한 ‘불닭’이라는 이름이 제품의 글로벌 확장 과정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브랜드 자산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 bibigo Sticky White Rice 광고 이미지. Ⓒ CJ제일제당
해외 유통업체가 직접 한글 표기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빙그레(005180)는 지난해 말 미국 코스트코의 요청을 받아 현지에서 판매하는 ‘싸만코 클럽팩’ 패키지의 영문명 ‘SAMANCO’ 아래에 한글로 ‘싸만코’를 추가했다. 현지에서 한글이 들어간 제품을 한국 제품으로 인식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점을 반영했다.
CJ제일제당(097950)은 보다 일찍 한글을 글로벌 브랜드 전략에 포함시켰다. 지난 2024년 비비고의 글로벌 BI를 개편하면서 기존 영문 ‘bibigo’ 중심에서 ‘비비고/bibigo’로 바꿨다. 일본과 유럽, 동남아시아, 미국 등 글로벌 제품 패키지에 이를 순차적으로 적용했다. 회사는 당시 한글을 함께 표기해 한국 브랜드라는 점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롯데웰푸드(280360) 역시 지난해 카자흐스탄에 무설탕 디저트 브랜드 ‘제로’를 출시하면서 한글 ‘제로’를 패키지에 그대로 적용했다.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분유 브랜드 ‘뉴본’에는 태극기와 함께 ‘우리 아이를 위한’, ‘올바른 성장 프로젝트’ 등 한글 문구를 넣고 있다.
과거 해외 진출 과정에서 소비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영어나 현지 언어를 전면에 배치했다면 최근에는 제품의 한국 정체성을 굳이 감추지 않는 흐름이다. 특히 오리온과 빙그레처럼 현지 바이어가 한글 사용을 요청하는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한글의 역할도 단순한 문자 표기를 넘어 제품의 출신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요소로 확장되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K-웨이브 열풍에 발맞춰 한글과 한국 고유의 맛 등 우리 문화를 제품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마케팅을 지속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