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 통합을 앞두고 조종사 서열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이번에는 기장 승격 시기 산정 방식으로 번졌다. 대한항공은 통합 이후 자사 조종사 90% 이상의 승격 시기가 기존 예상보다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지만, 노조는 해당 계산에 적용된 승격 인원이 실제로 보장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9일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Korean Air Pilots Union, KAPU)은 전날 대한항공이 노동쟁의 조정 신청과 관련해 밝힌 입장에 대한 반박 자료를 냈다. 앞서 노조는 7일 2024년 단체협약과 2025년 임금협약 교섭 결렬을 이유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갈등의 중심에는 통합 이후 적용할 조종사 서열순위가 있다. 조종사에게 서열은 기장 승격 순서뿐 아니라 선임·수석기장 수당과 대형기 전환, 교관·검열 보직 등에 영향을 미친다. 통합 과정에서 어느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조종사 개인의 승격 시기와 경력 경로가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대한항공은 외부 컨설팅을 토대로 양사의 기존 내부 상대서열을 유지하는 통합안을 마련했다. 통합 이후 항공기 규모와 기장 수요 등을 반영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대한항공 조종사 가운데 기존 예상보다 승격이 늦어지는 사례는 없고 90% 이상은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가 문제 삼은 건 이 결과를 산출한 조건이다. 회사의 승격 전망에는 월 기장 승격 인원을 기존 10명에서 15명으로 늘리는 가정이 반영됐지만, 공청회와 교섭 과정에서 노조가 월 15명 승격을 명문화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는 회사가 이를 확약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오는 12월17일 아시아나항공이라는 별도 법인은 대한항공에 합쳐진다. 그날은 6년 가까이 이어진 합병 절차의 완결점인 동시에 실질적인 통합을 검증받는 시작점이다. ⓒ 연합뉴스
계산에 월 15명을 적용하면서 실제 승격 규모는 보장하지 않는다면 '90% 이상 승격 시기 단축'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노조의 논리다. 전날 공개된 대한항공의 입장에도 월 15명 승격을 확약한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노사 간 계산이 엇갈리는 또 다른 지점은 민간경력 조종사의 서열 기준이다. 대한항공은 양사의 기존 내부 서열을 유지할 경우 자사 민간경력 조종사가 아시아나항공 민간경력 조종사보다 평균 3년3개월 빠르게 기장 승격 대상이 된다고 보고 있다. 노조는 양사 민간경력 조종사의 승격 시점을 비교하기에 앞서 대한항공 민간경력 조종사의 최초 입사일이 서열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약 600명에 이르는 대한항공 민간경력 조종사들은 비행경력 1000시간을 갖추고 입사한 뒤 계약직 신분으로 회사의 장기 양성과정을 거쳤다. 통합안이 최초 입사일 대신 정규 사번 부여일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양성과정이 길었던 조종사의 순번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아시아나항공 출신 조종사의 경력을 후순위로 조정해 달라는 요구는 한 적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대한항공 민간경력 조종사의 최초 입사일을 인정하고 기존에 적용해 온 승격 기준을 통합 이후에도 일관되게 적용하자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서열 결정 권한을 둘러싼 해석도 엇갈린다. 대한항공은 조종사 승진과 서열 결정이 회사의 인사권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근거로 제시하는 단체협약 조항에 대해서도 과거 관련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사례 등을 들어 노동쟁의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노조는 운항승무원 서열순위제도를 노사합의로 정하도록 한 조항이 2000년 최초 단체협약부터 존재했고 현재 단체협약에도 남아 있다고 반박했다. 올해 3월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노동쟁의 범위에 포함한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고용노동부 해석지침에는 합병 등 사업재편이 관련 사례로 담겼다는 설명이다.
운항본부관리매뉴얼(Flight Operations Administration Manual, FOAM)을 통합 이후 어떻게 적용할지도 쟁점으로 남아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출신 조종사에게도 자사의 기장 승격 및 훈련·심사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교섭 과정에서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조종사에게 FOAM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입장을 보여왔다고 주장한다. 회사가 공개적으로 밝힌 방침대로 대한항공 기준을 적용한다면 착륙 350회와 비행시간 4000시간, 부기장 임명 이후 근무연한 등 FOAM에 규정된 요건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열 이외의 교섭 안건에서도 양측 설명에는 차이가 있다. 대한항공은 임금과 휴식, 수당 등에서 상당 부분 의견이 좁혀졌다고 설명했지만 노조는 잠정합의가 이뤄진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노조는 임금 3.3% 인상과 10시간 이상 비행 후 현지 30시간 휴식 확대, 비행수당 산정 시점을 출두시각으로 변경하는 방안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2024년 단체협약과 2025년 임금협약을 놓고 회사와 30차례 교섭을 진행했다. 오는 14~20일에는 대한항공 본사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등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항공운수사업은 필수공익사업으로 조정기간은 신청일부터 15일이다. 조정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지난 4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마친 노조는 쟁의권을 확보하게 된다. 실제 쟁의행위가 시작되더라도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하는 운항은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