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언젠가부터 밥때가 돼도 밥을 찾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침은 커피로, 점심은 샐러드나 샌드위치로, 저녁마저 과일이나 빵으로 때우는 일이 흔해졌다. 쌀 소비량이 해마다 줄어든다는 통계가 매년 뉴스에 오르지만, 그 숫자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우리가 쌀을 덜 먹게 된 진짜 이유는 밥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밥은 그저 '배를 채우는 탄수화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밥은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 열량으로 따지면 빵도 면도 시리얼도 밥을 대신하고, 살을 뺀다며 밥부터 줄이는 것이 상식처럼 통한다. 밥이 그저 칼로리의 문제라면, 굳이 뜸 들여 지어 먹을 이유도 없다. 간편한 간식이 밥의 자리를 밀어내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런데 정말 밥이 배만 채우는 것이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밥상을 떠올려 보면 그렇지 않다. 좋은 밥상이란 반찬이 열 가지씩 오르는 상이 아니다. 갓 지은 밥 한 공기와 정갈한 몇 가지 반찬, 그리고 그 앞에 마주 앉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밥상이었다.
밥 한 공기가 주는 것은 포만감이 아니라 정서였다. 김이 오르는 밥을 앞에 두고 "많이 먹어라" 건네던 말, 늦게 오는 식구를 위해 아랫목에 묻어 두던 밥 한 그릇, 숟가락이 오가며 나누던 하루의 이야기. 밥상은 배를 채우는 자리이기 이전에 마음을 채우는 자리였다. 우리가 밥을 덜 먹게 되면서 정작 잃고 있는 것은 탄수화물이 아니라, 그 마음을 채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채우는 정서의 뿌리를 따라가면 결국 땅에 닿는다. 밥 한 공기는 어느 논에서 자란 쌀이고, 그 쌀은 한 계절의 볕과 비,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거쳐 상에 오른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 땅과 시간과 정성을 함께 먹는 일이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지만, 그것을 그저 국산을 애용하자는 구호로만 받아들이면 절반만 이해한 것이다. 본뜻은 몸과 땅이 둘이 아니라는 것, 내가 발 딛고 사는 땅이 길러 낸 것을 먹고 산다는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래서 밥의 정서는 땅에 대한 감각과 떼어 놓을 수 없다. 공장에서 균일하게 찍어 낸 열량이 아니라, 제철의 땅이 저마다의 얼굴로 길러 낸 것을 먹는 일. 봄 냉이의 흙내, 가을 햅쌀의 단내처럼, 밥상에는 그 땅이 지나온 계절이 담긴다.
밥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길러 낸 땅과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고, 그 지역의 이야기를 먹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로컬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단지 트렌드가 아니라, 밥이 본래 땅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정서가 가장 선명해지는 순간은 누군가에게 밥을 지어 건넬 때다. 혼자 사는 분들에게 밥 한 끼를 전하는 일을 두고 우리는 '끼니를 챙긴다'고 말한다. 그것은 허기를 면하게 해 주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 한 끼에는 "당신을 혼자 두지 않았다"는 마음이 얹혀 있고, 받는 사람이 정작 채우는 것은 배가 아니라 마음의 허기다. 밥을 나눈다는 것이 곧 마음을 나누는 일이 되는 이유다.
줄어드는 쌀 소비를 걱정하며 그동안 우리는 부지런히 쌀의 쓰임을 넓혀 왔다. 쌀로 빵을 굽고, 과자를 만들고, 음료를 내린다.
이는 쌀 소비를 늘리려는 노력이지만, 여기엔 놓치기 쉬운 역설이 있다. 쌀을 이런저런 제품의 원료로 강조할수록, 사람들 머릿속에서 쌀은 점점 더 '무엇으로도 대체되는 원료'로만 각인된다는 점이다. 밀가루 자리를 메우는 또 하나의 재료. 그렇게 원료로만 소비되는 쌀은, 쓰임이 조금 늘어날지언정 귀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쌀의 쓰임을 넓히는 일에 앞서, 쌀을 대하는 마음을 되찾는 일이다. 쌀 소비를 늘리자는 캠페인이 '쌀을 원료로 더 쓰자'는 데 머물면 감흥이 없다. 그보다는 밥 한 공기에 담긴 정서 '땅의 정성, 마주 앉은 얼굴, 마음을 채우는 따뜻함'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이 돼야 한다.
값싸고 쓸모 있는 것을 택하던 가성비의 시대는 지나가고, 마음이 움직이는 데 기꺼이 지갑을 여는 가심비의 시대다. 원료로서의 쌀이 가성비의 언어라면, 밥 한 공기의 정서는 가심비의 언어다. 밥을 배를 채우는 연료가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정서로 다시 바라볼 때, 쌀은 비로소 귀해진다.
바쁜 아침이라도 갓 지은 밥 한 술을 뜨는 여유, 혼자 사는 저녁이라도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한 끼를 대접하는 마음. 그 작은 따뜻함에서 밥상은 다시 시작된다.
생각해 보면 쌀을 주식으로 삼는 나라는 세계에 많지만, 쌀을 우리처럼 대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대개는 쌀을 요리의 재료로 쓴다. 기름에 볶고, 식초를 섞어 쥐고, 육수에 끓여 무언가로 만들어 먹는다.
그런데 한국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지은 흰밥 한 공기를 상의 한가운데 놓는다. 갓 지어 김이 오르는 밥 그 자체를 귀히 여기고, 거기에 밥심이니, 식구니 하는 말과 마음까지 얹은 문화는 세계 어디에도 흔치 않다. 쌀을 먹는 나라는 많아도, 밥을 요리가 아니라 한 공기의 정서로 대하는 나라는 드문 것이다.
이렇게 되찾은 밥상의 정서는 이제 우리 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세계가 한국 문화에 끌리는 것도 화려한 무대나 기술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과 관계다. 밥 한 공기에 담긴 정서 역시 언젠가 세계가 궁금해할 이야기가 될 것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내보내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정서를 되찾는 일이 앞서야 한다. 밥을 배부르게 먹는 나라는 많다. 그러나 따뜻한 밥 한 그릇의 가치를 아는 나라는 드물다. 그것이 한국이다.
오늘 저녁에는 밥 한 공기를 제대로 지어 보시길 권한다. 배가 아니라 마음을 채운다는 마음으로.
다음 끼니에 뵙겠습니다.

- ㈜ 잇더컴퍼니 대표
- 제주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
- 서울대학교 푸드테크 최고책임자과정
수료 및 월드푸드테크협의회 정회원
전) 매일유업 조리식품 브랜드매니저
전) WK 마케팅그룹 브랜드컨설팅 컨설턴트
전) 한화 S&C 마케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