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여성의 건강과 임신, 피임, 월경은 오랫동안 '여성 개인의 몫'이자 혼자 견뎌야 하는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여성 한 사람만이 이들을 모두 관리하기에는 상당히 빠듯하다. 여성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솔루션이 절반의 해답에 불과한 이유다.
베스펙스(공동대표 정주원·손미진, Vespexx)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깨고 여성 건강의 주어를 '그녀(She)'에서 '우리(We)'로 바꾸는 '다이애딕 헬스케어(Dyadic Healthcare, 양자 건강관리)'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회사는 아시아 시장에서 80만 커플의 일정과 컨디션을 잇는 협업 캘린더 '시그널링(Signaling)'을 바탕으로 기술적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또 정밀 호르몬 리더기와 AI 라이프스타일 코칭을 결합한 임신 준비 플랫폼 '수너(Soonr)'를 앞세워 북미 시장 공략도 본격적이다.
◆ "임신과 출산, 왜 여성 혼자 감당해야 하나"…개인적 질문에서 출발한 혁신
정 대표의 창업 동기는 유년 시절의 강렬한 기억에서 출발했다. 만삭의 몸으로 새벽에 양수가 터진 상태에서 스스로 차를 운전해 동생을 낳으러 가던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는 "어린 눈에는 슈퍼우먼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왜 임신과 출산의 책임을 여성 혼자 짊어져야 하는가'라는 구조적 의문이 남았다"고 회상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근무하던 시절 처음 펨테크를 접한 그는 창업자, VC 심사역, PM을 거치면서 '여성 건강의 데이터 격차를 해소하면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았다.
회사에 따르면 글로벌 펨테크 시장의 과반은 파트너의 이해와 참여가 필수적이다. 여성 혼자만 기록하고 해석하게 만들면 문제도 데이터도 절반밖에 보지 못하게 된다. 이는 베스펙스가 두 사람을 하나의 건강 단위(Dyadic)로 바라보는 이유다.
◆ 'Noom & Duolingo for Fertility'…측정에서 행동 변화까지 잇는 '수너(Soonr)'
베스펙스가 미국 시장을 겨냥해 선보인 '수너(Soonr)'는 단순한 배란일 계산 앱이 아니다. 전용 연결형 체외진단기기 '슈얼리 스마트(Surearly SMART)'와 AI 모바일 플랫폼이 결합된 통합 솔루션이다.
기존 캘린더 앱이 과거 주기를 토대로 배란일을 단순 추정했다면, 수너는 소변 검사를 통해 황체형성호르몬(LH)과 프로게스테론 대사체(PdG)를 98% 정밀도로 정량 측정한다. 단 5분 만에 호르몬 차트가 앱에 연동되어 배란 임박은 물론 실제 배란 성공 여부까지 즉각 판별한다. 더불어 올해 말 출시 예정인 남성 정자 운동성 및 수 검사 키트까지 동일한 대시보드에 통합된다.
정 대표는 "미국은 시험관 아기(IVF) 시술 1회 비용이 4만~5만 달러(약 6000만~7000만 원)에 달한다"며 "전문의 첫 진료를 잡는 데만 수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의 공백기 동안 가정에서 자연 임신 확률을 극대화하려는 D2C 프리미엄 수요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특히 수너는 여성과 남성의 수면, 체온(배란기 0.5도 상승 감지), 영양, 스트레스, 음주·흡연 데이터를 연동해 '가임력 스코어(Fertility Score)'를 산출하고 맞춤형 생활습관 개선을 유도하는 '90일 임신 준비 프로젝트'를 제공한다.

여성·남성의 수면, 체온 등의 데이터를 연동해 맞춤형 생활습관 개선을 유도하는 '수너(Soonr)' ⓒ 베스펙스
그는 이를 두고 어렵고 불안한 임신 준비를 데이터와 동기부여를 통해 팀플레이로 해결하는 '가임기 눔·듀오링고(Noom & Duolingo for Fertility)'라고 주장한다.
◆ 체외진단 강자 수젠텍과의 전략적 협력…규제·제조·AI '수직계열화' 완성
베스펙스의 또 다른 경쟁력은 탄탄한 기술 및 제조 밸류체인에 있다. 회사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흔히 겪는 의료기기 규제와 하드웨어 양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코스닥 상장 체외진단 전문기업 수젠텍(Sugentech)으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기기 R&D부터 생산·규제 대응까지 수직계열화된 인프라를 구축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원 출신 손미진 공동대표의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대목동병원, KAIST, GIST 지문과 함께 국외 임상 검증도 진행 중이다. 글로벌 신뢰도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수익 모델 역시 '진단기기(초기 진입)·테스트 스트립(정기 소모품)·커플 AI 코칭(구독)'이라는 3중 구조를 확립해 안정적인 반복 매출 기반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은 향후 가족형성 복지 프로그램 및 보험·클리닉 연계 채널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정 대표는 "베스펙스의 성장 잠재력은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며 "지난해 20억원 규모의 Pre-A 투자(인라이트벤처스 리드)를 유치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NIPA가 주관하는 '글로벌 ICT 미래 유니콘 육성사업' 15개사에 최종 선정됐다"고 전했다.
현재 회사는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주관 '거점기반 글로벌 PoC 지원사업'을 통해 미국 진출에 도움을 받고 있다.
정 대표는 임신 준비가 베스펙스의 종착점이 아닌 '데이터 게이트웨이'라고 단언한다. 임신 준비 과정에서 축적된 연속적 호르몬·라이프스타일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성 건강 데이터 온톨로지(지식 지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또 무배란·다낭성난소증후군(PCOS)·월경전증후군(PMS) 조기 스크리닝은 물론 산후 회복과 폐경 이행기 관리까지 여성 생애주기 전반을 관통하는 글로벌 AI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기술의 궁극적인 가치는 사람의 삶에서 더 나은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며 "여성의 몸이 '혼자 마주해야 하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파트너와 함께 이해하고 계획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에게 더 많은 시간과 체력, 주도권을 돌려주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겠다."고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