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하고 부분파업 일정까지 확정했던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이하 노조)가 실제 생산라인을 멈추기 하루 전 사측과 잠정합의에 도달했다. 2021년부터 이어온 무분규 교섭 기록도 6년째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교섭에서는 쟁의권이 실제 파업보다 협상 압박 수단으로 작용했다. 기아(000270)는 교섭 후반으로 갈수록 임금과 성과보상 제시 수준을 높였고, 노조는 기본급 14만9600원과 지난해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자사주 246주 등 최초 요구에서 상당폭 물러섰다.
최종 보상안은 첫 회사 제시안보다 높아졌지만 지난해 합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최대 생산·판매 실적을 앞세운 노조의 성과배분 요구와 수익성 둔화·관세 부담을 반영하려는 회사의 입장이 맞선 끝에 형성된 절충선이다.

기아 노사가 지난 8월25일 12차 본교섭을 갖고, 6년 연속 무분규로 2026년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 기아
고용 문제에서도 요구와 합의 사이에 변화가 나타났다. 노조는 신기술·신규 설비 도입 과정에서 총고용 보장을 요구했지만 잠정합의에는 미래 산업전환에 공동 대응하고 경쟁력 강화를 통해 고용안정을 추진한다는 원칙이 담겼다. 주 4.5일제와 65세 정년 연장 등 일부 노동조건 요구는 공개된 주요 합의사항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기아 노사는 지난 25일 오토랜드 광명에서 12차 본교섭을 열고 2026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오는 28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가결되면 기아는 6년 연속 파업 없이 임단협을 마무리한다.
◆높아진 보상안에도 최초 요구와 큰 간극
올해 교섭은 노사 요구 수준의 차이가 큰 상태에서 시작됐다. 노조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과 지난해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주 4.5일제 시행, 정년 65세 연장 등을 요구했다. 자사주도 조합원 1인당 246주 이상을 제시했다.
교섭이 결렬되자 노조는 7월23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가결했고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중지 결정까지 받으며 합법적인 파업 요건을 갖췄다. 이후 특근 거부와 교섭을 병행하며 회사의 추가 제시안을 압박했다.
기아의 보상안은 교섭이 진행될수록 높아졌다. 8월13일 첫 일괄제시안은 기본급 9만3000원과 성과금 350%+1100만원, 자사주 45주였다. 8월19일에는 기본급 9만8000원과 성과금·격려금 400%+1200만원까지 올라갔다.
노조는 여기서도 합의하지 않고 8월26~28일 근무조별 2~4시간 부분파업을 예고했다. 2020년 이후 6년 만의 파업 가능성이 현실화된 가운데 하루 전 열린 마지막 교섭에서 추가 조정이 이뤄졌다.

기아 오토랜드 광주 EV5 생산라인. ⓒ 기아
최종 잠정합의안은 기본급 10만원 인상과 성과격려금 400%+1270만원, 자사주 47주, 최대 생산·판매 목표 달성 특별포인트 50만 포인트다. 첫 제시안과 비교하면 기본급은 7000원, 성과격려금 정액분은 170만원 늘었고 비율도 50%포인트 높아졌다. 자사주는 2주 추가됐다.
최종안과 노조 최초 요구 사이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남았다. 기본급은 요구액인 14만9600원보다 4만9600원 낮았고, 영업이익의 30%를 요구했던 성과급은 400%+1270만원으로 정리됐다. 자사주 역시 요구했던 246주에서 47주로 낮아졌다. 회사가 제시 수준을 높인 만큼 노조도 최초 요구에서 상당폭 물러나면서 간격을 좁혔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보상 수준도 일부 낮아졌다. 지난해 기본급 10만원과 성과격려금 450%+1600만원, 주식 53주에 합의했지만 올해는 기본급 인상액만 같고 성과격려금과 자사주는 줄었다.
지난해 최대 생산·판매와 올해 2분기 최대 매출에도 보상 규모가 커지지 않았다는 점은 눈에 띈다. 교섭 결과만 놓고 보면 생산·판매 성과보다 영업이익 감소와 관세 등 향후 수익성 부담이 보상 수준에 더 강하게 반영됐다.
노조는 쟁의권과 부분파업 예고를 유지한 채 회사의 제시 수준을 끌어올렸고, 기아는 정규 생산라인 중단 없이 교섭을 마무리할 기회를 확보했다. 현대차가 올해 전면파업까지 진행한 뒤 잠정합의에 도달한 것과 달리 기아는 실제 파업으로 넘어가기 전에 협상을 마무리했다.
◆총고용 보장서 공동 대응…고용안정 원칙
임금 외에서는 산업전환과 고용안정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노조는 신기술이나 신규 설비를 도입할 경우 노조와 협의하고 총고용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잠정합의에서는 '중대재해 예방 및 미래 경쟁력 강화를 통한 고용안정 합의'를 별도로 체결했다. 안전문화 정착과 미래 산업전환에 노사가 공동 대응하고 경쟁력을 강화해 고용안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기아 오토랜드 광주 EV5 생산라인. ⓒ 기아
최초 요구와 비교하면 고용보장의 구속력은 약해졌다. '총고용 보장'처럼 결과를 명확하게 규정하기보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사가 함께 대응하고 고용안정을 위해 노력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기아는 미래차와 자동화 등 생산체계 변화에 대응할 여지를 확보했고, 노조는 고용 문제를 산업전환 과정의 공동 의제로 남겼다.
주 4.5일제와 65세 정년 연장도 기아가 공개한 주요 잠정합의 내용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올해 교섭에서는 노동시간과 정년을 확정하기보다 임금·성과보상과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원칙을 중심으로 마지막 합의가 이뤄졌다.
기아는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함께 운영하면서 시장 수요에 따라 생산 차종과 물량을 조정하고 있다. 여기에 자동화 범위가 넓어질 경우 생산인력 배치와 직무 전환 문제도 구체화될 수 있다. 올해 합의문에 담긴 '공동 대응'이 실제 생산현장의 인력 운용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지는 향후 노사 협의의 몫으로 남았다.
오는 8월28일 잠정합의안이 가결되면 기아는 6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이어간다. 쟁의권을 확보한 노조는 생산라인을 세우지 않고 회사 제시안을 끌어올렸고, 사측도 보상 수준을 높이며 파업 직전 접점을 만들었다.
다만 최대 생산·판매에도 성과보상은 지난해보다 낮아졌고, '총고용 보장' 요구는 '공동 대응' 원칙으로 조정됐다. 노사 모두 최초 입장을 그대로 관철하기보다 파업 직전까지 간 교섭에서 현실적인 접점을 택한 셈이다. 전동화와 자동화가 생산현장에 구체화될수록 성과배분과 인력 운용은 향후 노사 협의에서 다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