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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근의 밥 한 끼 하시죠 ③] 때우는 끼니, 챙기는 끼니

 

김봉근 잇더컴퍼니 대표 | press@newsprime.co.kr | 2026.08.24 17:44:42
[프라임경제]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속 형사가 범인에게 던진 이 한마디가 오래 회자된 데는 이유가 있다. 미움과 연민이 뒤섞인 그 말속에, 한국인이 끼니에 담아 온 복잡한 마음이 통째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끼니를 묻는 일은 그냥 안부가 아니다. 살아 있는지, 버티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끼니라는 말에는 어딘가 고단한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우리는 끼니를 '거른다'고 하고, '때운다'고 한다. 또 형편이 어려운 살림을 두고는 '끼니를 잇기 어렵다'고 한다. 

끼니와 짝을 이루는 동사들은 하나같이 결핍의 언어다. 무언가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 겨우겨우 버티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끼니라는 말이 어딘가 궁색하고 무겁다며 꺼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무게야말로 끼니라는 말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 뿌리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 있다.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하루 세 끼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간절한 것이었다. 밥 한 그릇이 곧 하루를 살아 낼 힘이었고, 끼니를 챙긴다는 것은 생존을 챙긴다는 뜻이었다. 그 절박함의 기억이 단어에 새겨졌다. 

그래서 끼니는 지금도 어딘가 '해결해야 할 것', '거르면 안 되는 것'이라는 의무의 무게를 지고 있다. 즐긴다기보다 치른다는 느낌에 가깝다. 밥때가 돼 한 끼를 넘긴다는 말에 '치르다'라는 동사가 어울리는 언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흔히들 이 결핍의 그림자를 끼니라는 말의 약점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바로 그 역사 때문에 끼니는 한국어에서 가장 따뜻한 말이 됐다. 생각해 보면 '밥 먹었어?'보다 '끼니 챙겨 먹어라'가 더 애틋하게 들리는 것이 그 이유다. 

'식사하셨어요?'가 예의를 갖춘 인사라면, '끼니 챙기세요'는 마음을 건네는 말이다. 상대가 행여 굶고 있을까, 대충 때우고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그 한마디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결핍의 시절을 지나온 언어이기에 품을 수 있는 다정함이다. 끼니가 생존의 언어였기에, 끼니를 챙기라는 말은 곧 살아 있으라는 당부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다. 세 집 중 한 집이 혼자 사는 나라에서, 끼니는 점점 더 혼자만의 일이 되어 간다. 챙겨 줄 사람도, 챙겨 먹을 여유도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때우고, 저녁은 대충 넘긴다. 끼니가 결핍의 언어라는 사실이, 이제는 은유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 가는 셈이다. 다만 그 결핍의 모양이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였다면, 지금은 함께 먹을 사람이, 나를 챙길 시간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끼니라는 말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결핍의 그림자를 지우고 화려한 말로 갈아 끼우는 것이 답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 반대다. 끼니에 밴 절박함과 다정함을 그대로 끌어안되, 그 무게중심을 '때우는 것'에서 '챙기는 것'으로 옮기는 일이 필요하다. 해결해야 할 의무로서의 한 끼가 아니라, 나를 돌보는 다정함으로서의 한 끼로 말이다.

이 무게중심의 이동은 말장난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경기도의 한 도시와 함께 홀로 사는 분들께 한 끼를 보내드리는 일을 이어 오고 있다. 고독사를 막아 보자는 취지의 사업이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조금 달랐다. 

어느 분에게 전달한 그 한 끼는 끼니를 '때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당신을 챙기는 사람이 있다'는 신호였다. 같은 한 끼라도 때우는 끼니와 챙기는 끼니는 그렇게 다르다. 전자는 배를 채우고, 후자는 사람을 살린다.

혼자 산다는 것이 아무렇게나 때운다는 의미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곁에 챙겨 줄 사람이 없을수록, 스스로 자신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 중요해진다. 제대로 지은 밥 한 그릇을 나에게 대접하는 것.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혼자 사는 청년이 편의점 도시락 대신 갓 지은 밥을 앞에 두는 순간, 그 한 끼는 더 이상 '때우는 끼니'가 아니라 '챙기는 끼니'가 된다.

끼니를 챙긴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챙기는 일이다. 그 사람이 남이든, 나 자신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니 끼니라는 말을 궁색하다 여겨 밀어낼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만큼 사람을 향한 말이 또 있을까. 오늘 당신의 끼니는 때우는 쪽이었는가, 챙기는 쪽이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만으로도, 한 끼의 무게는 달라진다.

오늘 저녁만큼은, 당신 자신의 끼니를 정성껏 챙겨 보시길 바란다.

다음 끼니에 뵙겠습니다.

- ㈜ 잇더컴퍼니 대표
- 제주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
- 서울대학교 푸드테크 최고책임자과정
  수료 및 월드푸드테크협의회 정회원
전) 매일유업 조리식품 브랜드매니저
전) WK 마케팅그룹 브랜드컨설팅 컨설턴트
전) 한화 S&C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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