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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수다] 굳이 B필러까지 없앤 제네시스…GV90 네오룬의 답

'가격 이상의 가치'를 안전·공간·환대로…'출범 10년' 자기 문법 찾는 제네시스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6.08.21 14:52:39
[프라임경제] "돈을 냈을 때 그 가치를 기대 이상으로 해줘야 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제네시스의 럭셔리를 설명하며 꺼낸 말이다. 비싸다고 해서 곧바로 럭셔리가 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차를 타는 사람이 얼마나 만족하고, 그 차가 자신의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까지 포함해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자동차업계에서 럭셔리의 기준을 새로 이야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그 기준을 만들어온 브랜드들이 있어서다.

그런 시장에 제네시스가 'GV90 네오룬(GV90 Neolun)'을 내놨다. 흥미로운 건 최고급차를 만들면서 기존 럭셔리 브랜드의 문법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의선 회장이 말한 '가격 이상의 가치'를 기술과 공간, 사용 경험으로 풀어내는 쪽을 택했다.

그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게 문이다. GV90 네오룬에는 차체 중앙의 B필러 없이 앞문과 뒷문이 서로 마주 보며 열리는 '네오룬 아치 게이트'가 적용됐다. 코치도어 자체는 롤스로이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지만, 제네시스는 여기에 B필러리스 구조까지 결합했다.

제네시스는 GV90 네오룬에 세계 최초의 독립 개폐형 히든 B필러 코치 도어인 네오룬 아치 게이트를 적용해 차량에 탑승하는 순간마다 브랜드의 환대 철학이 느껴지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 제네시스 브랜드


리어 도어는 바깥쪽으로 이동한 뒤 회전하는 듀얼 모션 힌지를 적용해 앞문과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여닫힌다. 문이 열리면 1열과 2열 사이를 가로막는 구조물이 사라지면서 승하차 공간도 크게 넓어진다.

문이 활짝 열리면 보기 좋고, 타고 내리기도 편하다. 그러나 B필러는 장식물이 아니다. 차체 측면을 지탱하고 충돌 때 승객 공간을 보호하는 중요한 구조물이다.

그러니 이런 질문이 생긴다. 럭셔리를 보여주겠다고 굳이 B필러까지 없애야 했을까. 그리고 제네시스의 답은 꽤 집요했다.

도어 내부에 초고강도 듀얼 스틸 빔을 넣고, 탑승 공간에는 기존보다 1.5배 두꺼운 골격을 적용했다. 초고강도 스틸 튜브와 구조용 폼을 활용한 히든 롤케이지도 새로 만들었다. 제네시스는 이를 통해 B필러가 있는 차량과 동등한 수준의 충돌 안전 성능을 확보했다고 설명한다.

정의선 회장이 GV90 개발 과정에서 "풀지 못한 난제도 많았고 처음 시도하는 부분도 있었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 눈에 들어온다. 그는 "이걸 해서 우리가 이뤄내야 또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미학을 대표하는 달항아리로부터 영감을 받아 완성된 GV90는 절제된 우아함으로 깊이 있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 제네시스 브랜드


그가 말한 '한 단계'는 GV90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세계 최초 루프 에어백이 대표적이다. 차량이 전복되면 에어백이 펼쳐져 루프 글라스 전체를 덮는다. 탑승객이 차 밖으로 이탈하거나 루프에 부딪히며 다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총 12개의 에어백을 배치했고, 배터리 앞쪽에는 충돌 때 모터와 서브프레임이 배터리를 직접 타격하지 않도록 슬라이더 구조를 만들었다. 셀 하나에서 발생한 열이 인접 셀로 번지는 것을 억제하는 배터리 열전이 안전 기술(Thermal Runaway Protection, TRP)도 적용했다.

럭셔리를 이야기하다가 안전 얘기가 길어지는 게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정의선 회장의 말을 기준으로 보면 자연스럽다. 그는 "브랜드 가치를 올리려면 안전하고 좋은 차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고, 고객이 지불한 가격보다 더 큰 가치를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GV90 네오룬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 있다. 보여주기 좋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 B필러를 없앴지만, 없어진 구조물이 맡던 역할까지 다시 채웠다. 럭셔리의 표현과 자동차의 기본기가 한 지점에서 만난다.

차의 체급도 상당하다. GV90는 제네시스 플래그십 전용 일렉트릭 모빌리티 프라임(Electric Mobility Prime, eMP) 플랫폼을 사용한다. 전장은 5285㎜, 축간거리는 3245㎜다. 배터리는 123.5㎾h로 현대차그룹 전기차 가운데 가장 큰 용량이다.

제네시스는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형태의 순수성을 담아내기 위해 GV90 후면 전체를 볼륨감 있게 디자인하면서 달항아리의 유려한 곡선을 차체에 담아냈다. ⓒ 제네시스 브랜드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7인승 기준 500㎞로 제시됐다. 회사 연구소 측정치다. 350㎾급 급속 충전기를 사용하면 배터리 10%에서 80%까지 22분이 걸린다. 전·후륜 모터 합산 최고출력은 490㎾, 최대토크는 800Nm다. 현대차그룹 최초로 앞뒤 모터에 각각 전자식 차동 제한 장치(e-LSD)를 적용했고,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과 후륜 조향도 갖췄다.

숫자만 보면 '큰 차에 큰 배터리와 강한 모터를 넣었다'고 정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플래그십에서는 그 힘을 어떻게 느끼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제네시스는 GV90의 전면 윈드실드부터 비전루프, 테일게이트까지 모든 유리에 두께 5㎜가 넘는 차음 유리를 사용했다. 차체 골격 안쪽에는 고발포 방음 충진재를 넣고 흡차음재와 실링 구조도 강화했다.

전기차는 엔진 소리가 사라진 대신 풍절음과 타이어 소리, 차체를 타고 들어오는 진동이 더 쉽게 느껴진다. 그래서 최고출력 490㎾라는 숫자만큼이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 플래그십에서는 중요하다.

GV90 네오룬에서 제네시스가 특히 강조하는 건 '환대'다. 차에 접근해 도어 핸들을 당기면 차량 전원이 켜지고 문이 열린다. 탑승 후 도어가 닫히면 회전형 변속 레버와 크리스탈 스피어 통합 컨트롤러, 트위터가 움직이며 차가 준비됐다는 사실을 알린다. 별도의 시동 버튼은 없다. 브레이크를 밟고 기어를 넣으면 출발한다.

고급 소재가 적용된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을 바탕으로 가구를 배치하듯 시트와 콘솔, 디스플레이를 조화롭게 구성해 럭셔리 라운지와 같은 분위기를 선사한다. ⓒ 제네시스 브랜드


정차하면 앞좌석은 180도 돌아간다. 운전석과 조수석 탑승자가 뒤를 바라보며 뒷좌석 승객과 마주 앉을 수 있다. 자동차의 실내가 운전석 중심 공간에서 작은 라운지로 바뀌는 순간이다.

4인승 GV90 네오룬 이그제큐티브 스위트에서는 그 방향이 더 분명하다. 2열 바닥에는 천연 우드 베니어를 사용한 우드 플로어가 깔리고, 한국의 온돌에서 영감을 얻은 복사열 난방 시스템이 들어간다. 2열과 트렁크 사이에는 파티션이 자리하고 냉장고와 테이블도 마련된다.

외관에는 달항아리가 등장한다. 제네시스는 달항아리의 곡선과 여백에서 GV90 디자인의 모티브를 가져왔다. 거대한 차를 선과 장식으로 가득 채우기보다 큰 면과 곡선, 비례를 강조했다.

달항아리와 온돌이라는 단어만 떼놓으면 자칫 '한국적인 것을 넣었다'는 홍보 문구로 끝날 수 있다. GV90에서 조금 다른 부분은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달항아리는 차체의 형태로, 온돌은 탑승자가 실제로 느끼는 열로 바뀌었다. '한국적 럭셔리'를 장식보다 경험으로 전달하려는 선택이다.

오랜 시간 자신만의 럭셔리 문법을 쌓아온 브랜드와 달리 제네시스에는 아직 그런 시간이 없다. 2015년 독립 브랜드로 출범한 지 이제 10년 남짓이다. 정의선 회장 스스로도 "가야 될 길도 멀다"고 말했다.

제네시스는 GV90의 실내 공간을 탑승객의 취향을 세심하게 반영하는 고급스러운 맞춤형 생활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 제네시스 브랜드


그렇다면 제네시스에 더 중요한 건 남들이 만든 럭셔리의 모양을 얼마나 비슷하게 구현하느냐가 아니다. 제네시스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경험을 얼마나 쌓아가느냐에 있다.

"사람에 따라서, 본인이 그 가격에 비해서 훨씬 더 가치를 느끼고 그것이 본인의 인생에 많이 도움 된다고 느끼면 그것이 저는 진정한 럭셔리라고 생각을 해요."

정의선 회장이 생각하는 럭셔리 역시 정형화된 답과는 거리가 있었다. 결국 럭셔리는 얼마짜리 차를 타느냐보다 그 가격을 잊게 만들 정도의 경험을 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문을 열었을 때 B필러가 보이지 않는 장면도 답이고, 그럼에도 안전해야 한다는 집요함도 답이다. 조용히 움직이는 5m가 넘는 차체와 서로 마주 앉을 수 있는 실내, 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까지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물론 좋은 기술을 많이 넣었다고 제네시스가 곧바로 오랜 역사를 가진 최고급 브랜드와 같은 자리에 서는 건 아니다. 브랜드의 가치는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경험과 신뢰에서 커진다. 제네시스도 이제 그 시간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GV90 네오룬에서 정말 봐야 할 건 123.5㎾h 배터리도, 세계 최초 루프 에어백도 아닐지 모른다. 제네시스가 이제 '좋은 고급차'를 만드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럭셔리가 무엇인지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정의선 회장은 아주 짧게 정리했다.

"돈을 냈을 때 그 가치를 기대 이상으로 해줘야 한다." 제네시스의 다음 10년은 결국 그 한 문장을 얼마나 많은 고객에게 납득시키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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