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가 국산 무기체계로는 처음으로 미국과 정식 계약을 따냈다. 6·25 전쟁 당시 미국의 포병전력 지원을 받았던 대한민국이 76년 만에 거꾸로 미국의 포병전력 재건을 돕게 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자회사 한화디펜스USA가 미 육군과 K9 차륜형 자주포(K9 Mobile Howitzer·K9MH)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9일 밝혔다.
궤도형 자주포에 이어 차륜형 자주포까지 글로벌 시장 진입에 성공하며, 입지를 넓히게 됐다는 평가다.

K9 차륜형 자주포(K9MH)가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에서 사격시험을 하고 있다.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번에 공급되는 K9MH는 자동화 포탑을 적용한 모델이다. 미 육군은 차기 자주포 도입을 위해 올해 초부터 글로벌 방산업체들에 시제품 제작을 의뢰했고 납기와 요구 성능, 현지화 비용 등을 다각도로 뜯어봤다. 그 결과 낙점된 곳이 한화다.
앞으로 최대 4년간 미 육군의 작전운용개념에 맞춰 세부 조건을 다듬는 맞춤 조정(customizing) 과정이 진행된다. 이 단계에서 특별한 결함이 발견되지 않으면 최종 양산 계약으로 이어지는 게 미군의 통상적인 수순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안정적 공급을 넘어 미국 방산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4월 앨라배마 주 오펠리카의 유휴 공장을 3년간 임차하는 계약을 맺으며 현지화 작업에 속도를 냈다. 여기에 현지 자주포 공급망 투자까지 병행해 미국 전투차량 산업 기반 강화에 힘을 보태고, 미 육군의 장기 전력 현대화 파트너로 자리매김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성과의 뿌리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오랜 기간 쌓아온 미국 네트워크와 사업보국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승연 회장은 평소 방산을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업으로 여기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술을 확보하라"고 강조해 왔다. "방산은 내수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수출 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게 그의 오랜 지론이다.

K9 차륜형 자주포(K9MH)가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에서 주행시험을 하고 있다.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런 신념을 현실로 옮긴 건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이다. 당초 미 육군은 2020년대 초부터 58구경장 화포를 탑재한 궤도형 자주포 개발 사업(ERCA)에 집중해 왔다. 그러다 국제 정세 악화로 병력의 장거리 전개 수요가 커지자, 기동성이 강점인 차륜형 자주포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김 수석부회장은 이 흐름을 미리 읽었다. "반드시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미군 사업 동향을 면밀히 추적했고, 지난 2024년 3월 미 육군 예산안에 차륜형 자주포 관련 사업이 포함된 사실을 포착했다. 곧바로 같은 해 12월 K9MH 개발에 착수하며 선제 대응에 나선 결과가 이번 계약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K9 자주포가 세계 최대 방산 시장에 진입한 의미 있는 성과이자, 대한민국 무기체계가 미국을 지키는 한미동맹의 새 역사를 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차별화된 현지화 전략으로 미국에서도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이제 맞춤 조정 과정을 무사히 통과해 양산 계약까지 이어가는 일이다. 사실상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최대 4년의 기간 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현지화 전략을 얼마나 속도감 있게 완성하느냐가 미국 방산 시장 안착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