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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함, 전에 있었나?" 대한항공 정비사 돕는 생성형 AI

90여개 DB·수백만건 정비 데이터 통합…자연어로 유사 결함·정비 이력 검색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6.08.14 09:35:24
[프라임경제] 항공기에서 결함이 발견됐을 때 정비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과거 사례를 확인하는 것이다. 같은 기종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는지, 당시 어떤 부품을 교체했고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정보가 방대하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쌓인 정비 이력은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 있고, 현장에서 작성된 기록에는 약어나 정형화되지 않은 표현도 적지 않다.

대한항공(003490)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항공기 정비 현장에 도입한 것도 이런 한계를 줄이기 위해서다. AI가 직접 항공기를 고치거나 정비사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도록 하기보다, 정비사가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한항공은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한 '정비결함 분석 시스템'을 최근 오픈했다. LG CNS와 아마존웹서비스(Amazon Web Services, AWS)가 약 6개월간 개발에 참여했다.

겉으로 보면 'AI 정비'지만, 시스템의 출발점은 데이터 정리다. 대한항공은 기존에 분산돼 있던 90여개 데이터베이스(DB) 테이블과 수백만건의 정비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했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각각 찾아야 했던 기종·기번별 결함 이력과 부품 수리 및 조치 기록 등을 한곳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한항공 보잉 747-8i 항공기. ⓒ 대한항공


여기에 생성형 AI가 검색 방식을 바꿨다. 정비사가 결함 증상이나 상황을 일상적인 문장으로 입력하면 AI가 단순히 같은 단어가 들어간 기록만 찾는 것이 아니라 문맥과 의미를 분석해 관련 정비 이력과 유사 사례를 제시한다.

과거 정비 기록을 사람이 다시 읽기 쉽게 만드는 작업에도 AI가 활용된다. 현장 정비사들이 남긴 약어나 비정형 기록을 표준화된 문장으로 변환하고, 정비 과정에서 취한 주요 조치와 결함 부위 등 핵심 정보도 자동으로 추출한다.

기존 데이터베이스를 하나로 합치는 데 그쳤다면 '통합 검색 시스템'에 가까웠겠지만, 대한항공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새 시스템은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기종과 개별 항공기별 결함 수명 주기, 반복 결함 여부, 부품 수리·조치 이력 등에 대한 통계와 추세를 제공한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서로 다른 정비 데이터 사이의 상관관계와 결함 발생 패턴도 분석한다.

항공기와 지상 간 통신을 통해 들어오는 실시간 운항 메시지도 함께 조회할 수 있다. 예컨대 특정 항공기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났을 경우 정비사는 해당 항공기의 과거 이력뿐 아니라 비슷한 사례와 관련 부품의 수리 기록, 반복 여부 등을 한꺼번에 살펴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AI의 역할이다. 대한항공이 이번 시스템에서 강조하는 것은 '의사결정'이 아니라 '의사결정 지원'이다. AI가 정비 여부나 부품 교체 필요성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구조라기보다, 정비사가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보다 빠르게 확보하고 비교·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이는 항공 정비라는 업무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다. 일반적인 사무 업무에서는 생성형 AI가 문서를 작성하거나 답변을 대신 만들어주는 것 자체가 효율화가 될 수 있다. 반면 항공기 정비는 판단 하나가 운항 안전과 직결되는 영역이다. 생성형 AI의 답변 자체를 결과물로 사용하는 것보다, 축적된 정비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꺼내 정비사의 판단에 연결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결국 대한항공이 AI에 맡긴 것은 정비사의 '판단'보다 그 판단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정보 탐색과 분석'이다. 대한항공 역시 신규 시스템 도입을 통해 기술 정보 분석과 의사결정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엔지니어링 업무의 정확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방대한 정비 이력이 쌓일수록 효과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사람의 경험에 의존해 과거 사례를 기억하거나 여러 시스템을 오가며 정보를 찾던 방식에서 벗어나, 축적된 데이터를 필요한 순간에 곧바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그동안 분산돼 있던 방대한 정비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하고 AI를 활용해 정비 현장에서 보다 쉽고 빠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구축했다"며 "앞으로도 첨단 AI와 데이터 기술 기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함으로써 정비 역량을 고도화하고 안전 운항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생성형 AI가 항공기를 직접 정비하는 시대까지 온 것은 아니다. 다만 수백만건의 기록 속에서 정비사가 찾고자 하는 답의 단서를 먼저 찾아주는 역할은 시작됐다.

대한항공의 이번 시스템이 보여주는 변화도 여기에 있다. 항공 정비에서 AI의 첫 자리는 사람을 대신하는 '정비사'가 아니라, 사람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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