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13호 '리더의 감정 낙수효과'를 읽은 한 팀장이 메일을 보내왔다.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은 저희 센터장님이 보셔야 할 것 같은데, 차마 보내드릴 용기가 나지 않네요." 웃픈 고백이다.
자기 공감을 거쳐 상담사에게 솔직하게 다가가라고 배운 팀장이, 정작 자기 위의 리더에게는 한 문장도 건네지 못한다. 낙수는 위에서부터 흐르는 법인데 우리는 늘 중간에서만 물길을 파고 있었던 거다.
AI 시대에 맞게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감독하고 집계하던 자리를 AI에 내주는 대신, 상담사의 성장을 설계하고 현장의 변화를 촉진하는 '변화 촉진자(Change Agent)'로 옮겨 앉아야 한다. 오히려 이들이 맡아야 할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중요해졌다.
이렇게 옛 역할을 내려놓고 새 역할에 발을 디뎌야 할 때 방향을 알려주고 시행착오를 감싸줄 사람은 팀장의 상위 리더다. 그런데 그 리더가 팀장을 방치하고 있다. 중간관리자의 위기는 그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갈아입을 옷을 아무도 쥐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위기다.
팀장 교육을 마치고 나면 설문지에 이런 피드백이 있다. "이 교육은 제가 아니라 우리 센터장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엄살이 아니다.
질문과 경청, 맥락적 지원을 배우고 복귀한 팀장이 맞닥뜨리는 것은 여전히 통제와 단편적인 숫자 보고를 요구하는 회의실이기 때문이다.
그 회의실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 승진이란 단순히 높은 자리에 앉는 일이 아니라, 조직의 막힌 혈을 뚫을 수 있는 '킹핀(Kingpin)'을 만질 권한을 얻는 일이다. 볼링에서 킹핀은 맨 앞의 헤드핀이 아니다. 그 뒤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5번 핀이다.
스트라이크는 눈에 보이는 앞 핀을 정면으로 때려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5번 핀까지 힘이 전달될 때 비로소 나온다. 조직도 같다. 눈에 보이는 상담사와 팀장만 아무리 때려봐야 스플릿만 남는다.
물론 센터장과 상위 리더의 애환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실적과 비용, 본사와 현장 사이의 샌드위치 압박 속에서 리스크 관리의 최전선에 선 사람이 그들이다. 잃을 게 많아질수록 혁신보다 현상 유지를 택하는 것은 무능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다.
문제는 그 신중함의 대가를 리더 자신이 아니라 조직이 치른다는 점이다. 상담사와 팀장이 생생한 현장의 개선안을 가져와도 익숙한 예스맨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 반복되면, 조직은 더 이상 제안을 가져오지 않는다. 리더가 지지 않은 위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쌓인다.
결국 리더는 가장 늦게, 이미 손쓸 수 없게 된 뒤에야 문제를 보고받는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직원의 85% 이상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비칠까 봐' 입을 다문다. 그 침묵의 원가는 이미 매달 채용비와 진작 막을 수 있었던 민원과 이탈 고객으로 청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컨택센터의 5번 핀은 무엇인가.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측정하고 무엇으로 보상하는가에 있다. 상담사에게 고차원 공감을 요구하면서 평가는 초 단위로 하는 조직에서, 소통 스킬 교육은 알리바이가 된다.
처리 시간과 콜 수가 지표의 중심에 놓여 있는 한 팀장이 아무리 맥락적 지원을 배워도 현장은 그대로다. 그리고 그 지표는 팀장도, 교육 담당자도 바꿀 수 없다. 그 핀에 손이 닿는 자리는 임원과 센터장뿐이다.
13호에서 나는 리더의 감정이 상담사를 거쳐 고객에게까지 흘러가는 낙수효과를 이야기했다. 그 물길의 발원지는 팀장이 아니다. 메일을 보내온 그 팀장은 결국 자신의 센터장에게 아무것도 전하지 못했다. 그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말이 통하는 조직을 우리가 아직 만들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컨택센터의 위대한 전환은 눈앞의 핀을 쥐어짜서 나오지 않는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5번 핀을 정확히 겨냥하는 순간, 비로소 뒤의 아홉 개가 함께 움직인다.
지윤정 (윌토피아 대표/ 성신여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