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국GM의 2026년 임금 및 단체협약(이하 임단협)이 최종 타결됐다. 지난 5월27일 상견례 이후 17차례 교섭과 7월 중 다섯 차례 부분파업을 거쳐 마련한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투표를 통과했다.
전체 투표자 6193명 가운데 찬성은 3500명, 반대는 2686명, 무효는 7명이었다. 찬성률 56.5%, 찬반 격차는 814표다. 교섭은 마무리됐지만 노사가 확보한 신뢰의 폭이 넓다고 보기는 어려운 결과다.
합의안에는 기본급 9만2000원 인상과 타결 일시금, 2025년 경영성과에 대한 성과급을 합한 1500만원 지급이 담겼다. 노조가 요구한 기본급 14만9600원과 1인당 약 3000만원의 성과급에는 미치지 못했다. 기본급은 요구안보다 5만7600원, 일시금과 성과급은 약 1500만원 낮아졌다.
지난해 한국GM 판매는 46만2310대였고 수출이 44만7216대를 차지했다. 노조가 높은 성과 배분을 요구한 근거에는 수출 중심의 판매 실적이 있다. 최종안은 한국GM의 지급 부담과 노조의 성과 보상 요구가 절충된 수준이지만, 찬성률은 임금 조건만으로 조합원 다수를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임금 양보와 미래 물량의 절충
노조는 지난 6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5635명의 찬성을 얻었다. 잠정합의안 찬성표는 이보다 2135표 적었다. 투표 목적과 참여 인원이 달라 수치를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강경 대응에 대한 높은 지지가 최종 합의안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조합원들이 받아들인 것은 임금 조건과 함께 합의문에 담긴 미래 생산계획이다. 노사는 현재 생산 중인 9B 프로그램의 후속 차종인 '9BXX-2'가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 Technical Center Korea, 이하 GMTCK)에서 개발 절차를 밟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2027년 3분기 안에 신규 차종의 국내 생산 여부가 최종 결정될 수 있도록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인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차량이 출고되고 있다. ⓒ 연합뉴스
임금 요구를 상당 부분 낮추면서도 교섭을 타결한 선택에는 생산 중단 장기화를 피하고 후속 차종 논의를 공식 문서에 남기려는 판단이 함께 작용했다. 한국GM은 안정적인 사업 운영을 확보했고, 노조는 그동안 불확실했던 차세대 프로젝트에 이름과 시한을 붙였다.
다만 9BXX-2의 국내 생산이 확정된 상태는 아니다. GMTCK가 차량 개발에 참여한다는 사실과 한국 공장의 생산 배정은 별개의 결정이다. 차종과 생산 공장, 양산 시점은 GM 본사의 글로벌 제품 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생산 안정 필요한 두 차종 체제
한국GM이 교섭 장기화를 피해야 했던 사정은 판매 구조에서 확인된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27만5523대로 전년 동기보다 10.5% 늘었다. 수출은 27만252대, 내수는 5271대로 수출 비중이 98.1%에 달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가 북미를 중심으로 판매를 끌어올리는 동안 국내 공장은 글로벌 공급기지 역할을 맡았다. 6월에도 전체 판매 4만8134대 가운데 4만7085대가 수출이었다. 부분파업이 길어질 경우 국내 판매 감소보다 해외 공급 차질이 더 큰 부담으로 번질 수 있는 구조다.
임단협 타결로 단기 생산 리스크는 낮아졌다. 공장 가동과 선적 일정을 정상화하고, 하반기 수출 물량에 대응할 여건도 마련됐다. GM이 공식 발표에서 임금 조건보다 안정적인 생산과 사업 운영, 경쟁력 강화를 강조한 이유다.

2026년형 트레일블레이저, 신규 외장 컬러 모카치노 베이지. ⓒ 한국GM
현재의 판매 호조가 미래 물량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국GM 판매는 사실상 두 차종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 판매를 합하면 46만1834대로 전체 판매량과 거의 같다. 한 차종의 세대교체가 공장 가동률과 수출 실적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구조다.
현행 프로그램이 세대교체 구간에 들어가면 생산설비 전환과 부품 공급망 재편, 인력 운영 계획을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 후속 차종 결정이 늦어질수록 현재 물량과 다음 세대 사이의 공백 위험도 커진다. 판매가 유지되는 시기에 후속 프로젝트를 확정해야 전환 비용과 생산 차질을 줄일 수 있다.
GM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한국사업장에 총 6억달러, 88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발표했다. 소형 SUV 상품성 강화와 생산설비 현대화, 신규 프레스 설비가 투자 대상이다. 현행 차종의 경쟁력과 공장 효율을 높이는 투자지만 9BXX-2 국내 생산 확약까지 포함하지는 않았다.
◆2027년 3분기까지 최종 결론
이번 합의의 핵심은 2027년 3분기라는 시한이다. 현재 차종이 2028년 이후에도 생산될 예정이라는 설명이 나왔지만, 생산 연장과 후속 차종 배정은 구분해야 한다. 기존 모델의 수명을 늘리는 동안 다음 프로젝트를 확정해야 설비와 인력 전환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산업은행은 한국GM 지분 17.02%를 2028년 5월까지 유지할 방침이다. 주요 자산 처분과 구조 변경을 견제할 수 있는 지분이 유지되는 기간 안에 후속 차종의 방향을 정해야 고용 안정 계획도 구체화할 수 있다. 2027년 3분기 시한은 산업은행의 견제 장치가 남아 있는 시간표와도 겹친다.
한국GM과 노조가 타결을 설명하는 방향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GM은 생산 안정과 경쟁력을 강조했고, 노조는 후속 차종의 개발 사실과 결정 시한을 합의문에 넣었다는 성과를 앞세웠다. 같은 합의안을 두고 회사는 운영 정상화, 노조는 고용 안정의 근거를 각각 확보한 셈이다.
아시프 카트리(Asif Khatri) GM 해외사업부문 생산 총괄 부사장은 "올해 임단협 교섭 타결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회사와 노동조합이 상호 이해와 책임감을 바탕으로 도출한 의미 있는 성과"라며 "이를 계기로 안정적인 생산과 사업 운영을 이어가며 회사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필요한 작업은 합의문에 적힌 시한을 본사의 생산 배정 결정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안정적인 생산과 품질, 원가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GMTCK의 개발 역량과 부평·창원공장의 생산성을 구체적인 투자 논리로 제시해야 한다. 노조도 쟁의 중단 이후 생산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에 참여해야 신차 유치 요구의 설득력을 키울 수 있다.
찬성률 56.5%는 임단협 타결을 승인한 숫자인 동시에 후속 차종의 구체적인 결과를 확인하겠다는 요구가 남았음을 보여준다. 올해 임금 협상과 부분파업은 일단락됐다. 이번 합의가 노사 신뢰로 이어질지는 2027년 3분기까지 9BXX-2의 국내 생산을 얼마나 구체화하느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