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른쪽 세 번째) 이병진 사장이 부산도시철도 사상-하단선 502 정거장을 찾아 현장 점검하는 모습. ⓒ 부산교통공사
[프라임경제] 삼성전자도 피해 가지 못한 노사갈등이 산업계 전반의 변수로 떠오르면서 공공부문에서도 안정적 노무 관리가 주요 경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거 지역 노동계의 투쟁 노선을 상징했던 부산지하철노조가 6년 연속 무분규 교섭을 이어가며 주목받고 있다.
부산교통공사의 2025년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은 노조대의원대회 찬반투표에서 92.8%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로써 공사는 2020년부터 이어온 무분규 '노사 동행' 기록을 유지하게 됐다.
그간 부산지하철노조는 총 8차례 파업을 벌이며 강경 노선을 걸었다. 1994년 파업 참가율은 98.9%에 달했고, 2004년과 2007년에도 각각 79.8%, 76%를 기록했다. 한때 '투쟁 노조'로 각인됐던 이미지를 벗고 모범적 노사관계의 사례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변화의 중심에는 이병진 부산교통공사 사장의 소통 리더십이 자리한다. 이 사장은 부산시 주요 보직과 행정부시장을 거친 정통 행정가로, 2017년 부산시 공무원노조가 선정한 존경받는 간부공무원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취임 이후에도 노조를 공공교통 안전과 서비스 품질을 함께 책임지는 파트너로 대하며 공존과 상생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파업 선봉에서 상생 교섭으로···철도안전관리평가 전국 1위
부산도시철도는 개통 41년 차로 부산 시민의 든든한 발이 되었다. 그러나 노후시설 교체와 안전관리 고도화, 누적 적자와 무임수송 손실이라는 과제도 함께 커졌다.
이 사장은 취임 당시를 두고 "공사의 체질을 바꿔야 할 시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변화와 도약, 뉴 메트로'를 슬로건으로 조직 혁신과 경영환경 변화 대응에 무게를 뒀다. 시민이 매일 이용하는 공공교통인 만큼 운행 안정성과 서비스 품질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취임 첫날에도 별도 행사 없이 건설현장과 차량기지를 찾았다.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작업환경을 살폈다. 이 사장은 "노조를 공공교통 안전과 서비스 품질을 함께 책임지는 동반자로 대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현장 중심의 소통이 6년 연속 무분규 교섭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노사 안정은 경영 성과와도 맞물려 있다. 최근 부산도시철도는 평일 하루 이용객 100만 명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으며, 2년 연속 시내버스를 앞질렀다. K-패스와 동백패스 효과에 공사의 안전·서비스 신뢰가 더해진 결과로 풀이된다.
공사는 2024년 국토교통부 철도안전관리평가 전국 1위, KCSI 도시철도 부문 9년 연속 1위, 지방공기업 경영평가 '나' 등급 회복 등의 성과도 냈다. 5회 연속 가족친화인증을 획득하며 조직문화 개선도 병행하고 있다.
미래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3월 AX 경영 전담조직인 'AI정보지원단'을 출범시키고 AI 기반 안전관리와 고객서비스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동래역·광안역 디지털국가자격시험센터 유치, 덕천~숙등 지하도상가 ‘B-Life Hub’ 조성, 포켓몬 체험형 마케팅 등을 통해 도시철도의 생활 플랫폼 기능도 강화하고 있다.
◆공사, 재정난의 핵심 '무임수송' 손실 ···지난해 1854억원, 비중 86.5% 차지

지난 2월 개최된 2026년 전국도시철도 운영기관 노·사 대표자협의회 모습. ⓒ 부산교통공사
다만 성과의 이면에는 구조적 재정난이 남아 있다. 시민 이동권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인 만큼 운송원가 상승과 경직성 비용 증가는 매년 재정 압박을 키우고 있다.
이 사장은 "재정 건전성 확보는 공사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라며 "전기요금과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구조적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2025년 기준 운영적자는 4314억원으로, 2022년 3441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누적 결손금도 3조2294억원에 달한다. 지출 대부분이 인건비와 동력비 등 필수 경비라 단기간에 줄이기도 쉽지 않다.
공사도 자구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긴축재정으로 205억 원을 줄였고, 전력 사용량 4.8% 감축으로 전기요금 35억원을 절감했다. 올해는 '함께 바꿈 100+ 프로젝트'를 통해 운영 손실 100억원 이상 감축이 목표다. 부품 재활용, 안전점검 통합 발주, 역명 부기 유상판매 등도 병행 중이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이 사장은 "도시철도 무임수송은 △노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국가유공자법 등에 따른 국가 복지정책이지만 비용 부담 주체가 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며. "그 결과 운영기관이 40년 넘게 무임손실을 떠안아 왔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전국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무임손실은 7754억원에 달했다. 부산교통공사는 1854억원으로 당기순손실의 86.5%를 차지했다. 부산은 전국 특·광역시 중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무임승객 비율도 34.9%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 사장은 "무임수송은 교통정책이자 복지정책"이라며 "국토교통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건복지부와 기획예산처 등 관계 부처가 함께 풀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코레일은 정부에서 무임손실 지원 ···적자 구조 악순환 '안전투자' 위협
무임수송 손실은 단순한 회계상 적자에만 그치지 않는다. 노후 전동차 교체와 시설 개선 등 안전투자 여력까지 잠식한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공사는 노후 전동차 교체와 시설 개선을 위해 2018년부터 총 5286억원 규모의 공사채를 발행했다. 올해 차입금 이자만 474억원, 하루 평균 1억3000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안전투자를 위해 빌린 돈이 다시 부채와 이자 부담으로 돌아오는 악순환구조다.
이 사장은 "해법은 국가와 지방이 함께 책임지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도시철도 무임수송 손실에 대한 국비보전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코레일은 관련 법에 따라 무임손실을 지원받고 있다"며 "반면 도시철도 운영기관은 같은 공익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별도 지원 근거가 없다"라며 국가 정책에는 동일한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관련 청원이 국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 넘어가면서 무임손실 국비보전 논의도 실질 심사 단계에 들어섰다. 20년 넘게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 온 쟁점이 이번에는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어려운 여건에도 노후 전동차 교체···"시민과 함께 100년 교통기관"
재정난 속에서도 안전관리는 소홀히 할 수 없다. 시민이 매일 이용하는 생활 인프라인 만큼 사고 예방과 시설 개선은 공공기관의 기본 책무다.
공사는 올해 시설투자비 1771억원을 편성해 노후시설과 설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40년 넘게 운행한 1호선 노후 전동차는 올해 8월 모두 퇴역하며, 2호선 전동차 교체도 진행 중이다.
예방 중심의 관리체계도 강화하고 있다. 전국 도시철도 최초로 전 노선 객실 CCTV 실시간 관제 시스템을 구축했고, 2~4호선 LTE-R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향후 AI와 데이터를 활용해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체계로 전환한다.
도시철도 네트워크 확대도 과제다. 올해 말 개통을 목표로 종합시험운행 중인 양산선은 부산과 단일 생활권으로 잇는 사업이다. 사상~하단선과 하단~녹산선도 서부산권 교통 인프라 확대와 지역 균형발전의 주요 축으로 꼽힌다.
이 사장은 "도시철도 확충이 부산 대중교통의 미래"라며 "버스와 광역교통망을 연결해 자가용보다 대중교통이 더 편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절대안전, 시민행복, 대중교통의 중심'이라는 비전 아래 부산시민과 함께하는 100년 교통기관으로 나아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1일 전재수 부산시장 체제가 본격 출범하고 시 실·국장급 인사가 단행되면서 산하 공기업의 정책 연속성과 경영 안정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6년 연속 무분규 교섭이라는 노사 안정성과를 냈지만, 재정난과 안전투자, 무임수송 손실이라는 구조적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새 시정과 어떤 정책적 보조를 맞추느냐가 부산 공공교통의 지속 가능성을 가를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