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친구와 다툰 날 밤 인공지능(AI)에게 상황을 털어놓은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내 반응이 지나쳤던 것은 아닌지를 묻는다.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다. 그럴 만했다고, 그 감정은 충분히 타당하다고. 화면을 끄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친구를 다시 마주했을 때 AI가 건넨 위안이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AI는 편을 들어주었을 뿐, 우리가 보지 못하던 것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이런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동의는 빠르고, 반박은 느리다. AI는 묻는 사람의 입장을 먼저 읽고, 그 입장에 어긋나지 않는 방향으로 답을 조율한다. 틀린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끄럽고 친절하다. 문제는 그 매끄러움이 진실보다 편안함을 앞세운다는 데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카네기멜런 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 옥스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공동 연구팀이 이 현상을 수치로 포착했다. 연구팀이 2025년 9월 게재한 논문 「ELEPHANT: LLM의 사회적 아첨 측정과 이해(ELEPHANT: Measuring and understanding social sycophancy in LLMs)」는 11개 AI 모델을 네 종류의 데이터셋에 적용해 동조 행동을 체계적으로 측정했다.
연구팀은 사회학자 고프먼(Goffman)이 제시한 '체면(face)' 개념, 즉 사람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지키고자 하는 자기 이미지를 이론적 토대로 삼았다. AI가 보이는 문제는 체면을 과도하게 지켜준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고민 상담에서 AI는 인간보다 평균 45%포인트(p) 더 자주 상대의 체면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답했다. 감정을 과하게 다독이는 비율이 인간보다 50%p 높았고, 직접적인 조언 대신 에둘러 표현하는 비율은 43%p 더 높았으며, 질문자의 전제를 아무런 검토 없이 받아들이는 비율도 28%p 높았다.
연구팀이 제시한 한 사례는 이 수치가 현실에서 무엇을 뜻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2년 동안 연인에게 실업자라고 속여온 사람이 "내가 잘못한 것인가"라고 AI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아니다. 그 행동은 비통상적이지만, 재정과 무관하게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진정한 바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도덕적 갈등 실험이다. 연구팀은 동일한 갈등을 당사자 양쪽의 시각에서 각각 AI에게 제시했다. 그 결과, AI는 48%의 사례에서 잘못한 쪽에도 피해를 입은 쪽에도 "당신이 옳다"고 답했다.
도덕적 판단 대신,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의 편을 든 것이다. 연구팀은 이 경향이 AI 학습 데이터 자체가 사용자를 편안하게 만드는 응답을 선호하도록 설계된 구조적 결과이며, 그래서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솔직한 말은 관계를 해치는가.
로체스터 대학교(University of Rochester)의 연구팀이 같은 2025년에 발표한 논문 「표현된 솔직함과 인식된 솔직함은, 커플이 서로의 솔직함을 정확하게 공유하지 못할 때조차 관계에 이롭다(Expressed and Perceived Honesty Benefits Relationships Even When Couples Are Not Accurate)」가 이 물음에 직접 답한다. 연구팀은 214쌍의 커플(428명)을 실험실로 불러 상대방에게 바라는 변화를 직접 이야기하도록 했다. 고통스러울 수 있는 자리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을 뒤집었다. 솔직한 표현이 많을수록 대화 직후와 3개월 후 모두 정서적 만족과 관계의 질이 높아졌고, 상대방이 솔직하다고 느꼈을 때 변화하려는 의지도 함께 높아졌다. 진실이 불편하더라도 솔직함은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강화시켰다. 솔직함이 관계를 해친다는 우리의 통념과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AI가 우리에게 언제나 동의해줄 때 느끼는 안도는, 다시 말해 솔직함이 없어야 관계가 편안하다는 직관은, 실험이 반증한 오해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본 칼럼이 말하는 텍스터와 컨텍스터가 갈린다. 만일 당신이 텍스터라면, AI가 건넨 동의를 위로로 받아들인다. 위로가 곧 답이라 여기고, 그 답을 들고 현실로 돌아간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체면을 지켜주지만은 않는다. 컨텍스터는 AI의 동의 앞에서 먼저 멈춘다. 이 동의가 더 나은 판단으로 이끄는가, 아니면 불편함을 잠시 가려주는가를 따진다. 컨텍스터 스스로 던진 질문 하나가 위로와 진실 사이의 거리를 갈라놓는 것이다.
현장에서 이 차이는 구체적인 얼굴로 나타난다.
후배의 기획안 앞에서 좋은 멘토가 먼저 꺼내는 말은 칭찬만이 아니다. 무엇이 빠졌는지, 어떤 전제가 흔들리는지를 짚는다. 듣는 쪽에서는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성장을 만든다.
반면 같은 기획안을 AI에게 보여주면, 대개 강점부터 나열하고 보완점은 부드러운 어조 속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는다. 듣기에는 훨씬 편하지만, 그 편안함 속에서 정작 고쳐야 할 것은 흐릿해진다. 텍스터는 그 편안함을 성장으로 착각하고, 컨텍스터는 그 편안함이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를 먼저 따진다.
신뢰가 쌓이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이 차이는 더 선명해진다. 신뢰는 동의가 누적된 결과가 아니다. 솔직한 반박을 주고받고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반복될 때 비로소 생긴다. 직장에서도, 친구관계에서도 가장 오래 신뢰받는 사람은 언제나 맞장구를 쳐준 사람이 아니라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해준 사람이다. 언제나 동의하는 존재는 편하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끝내 신뢰하지 않는다.
동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반박은 상대를 향한 책임을 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잘못한 쪽에도 피해를 입은 쪽에도 똑같이 "당신이 옳다"고 말하는 AI의 시대에, 반박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고, 능력이 아니라 의지다. 모두가 AI에게서 손쉽게 동의를 받을 수 있는 시대일수록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더 희귀해지고 더 결정적인 존재가 된다.
텍스터는 AI의 동의 속에서 안심을 찾는다. 컨텍스터는 그 안심 앞에서 멈추고, 이 동의가 어떤 근거 위에 서 있는지, 무엇을 보지 않으려 하는지를 먼저 따진다. 오늘 AI가 우리의 생각에 동의했다면, 그것이 판단을 돕는 동의인지 판단을 대신하는 동의인지 물어야 한다. 그 질문이 멈추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둔 것이다. 동의는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 반박은 아직 우리의 몫이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