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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재구성] 현대차그룹 수소, 남극 기지의 전기를 다시 설계

디젤 의존 낮추고 잉여 태양광을 수소로 저장…고립형 에너지망 전환 본격화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6.06.19 09:36:11
[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그룹의 수소 기술이 남극과학기지 전력 체계 안으로 들어간다. 자동차용 연료전지나 수소 모빌리티가 아니라 전력망과 떨어진 극지 연구시설의 에너지 구조를 바꾸는 방식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8일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해양수산부, 극지연구소와 '남극과학기지 그린수소 그리드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에는 성 김 현대차그룹 전략기획담당 사장,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 신형철 극지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협력은 오는 202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설립 40주년을 앞두고 추진됐다. 핵심은 디젤 발전에 기대온 극지 연구시설의 전력 체계를 재생에너지와 수소 기반의 순환 구조로 바꾸는 데 있다. 현대차그룹은 수전해기, 수소 저장 장치, 연료전지 발전기 등을 구축하고 태양광 발전 설비 확충도 함께 추진한다.

남극 기지의 에너지 문제는 일반적인 친환경 전환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남극과학기지는 외부 전력망과 연결되지 않은 고립형 시설이다. 기상 상황은 거칠고, 연료와 장비를 들여오는 물류 조건도 까다롭다.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연구 활동의 기본 조건이지만, 지금까지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는 디젤 발전이었다.

극지연구소가 운영 중인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의 디젤 발전 비중은 97%에 이른다. 태양광 설비도 일부 운영돼 왔지만 남극의 자연 조건은 재생에너지 활용을 어렵게 만든다. 여름철 백야와 겨울철 극야, 적설, 악천후가 겹치면 발전량은 크게 흔들린다. 친환경 전력을 생산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과제는 그 전력을 필요한 시간까지 붙잡아두는 일이다.

왼쪽부터 성 김 현대차그룹 전략기획담당 사장,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 신형철 극지연구소 소장이 업무협약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그린수소 그리드는 이 지점에서 의미가 생긴다. 일조량이 풍부한 시기에 남는 태양광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들고, 압축 저장한 뒤 태양광 발전이 제한되는 시기에 연료전지 발전으로 다시 전력을 생산하는 구조다. 남극에서 수소는 이동수단의 연료보다 '보관되는 전기'에 가까운 역할을 맡는다.

그린수소 그리드가 남극형 해법으로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생에너지는 탄소를 줄일 수 있지만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고, 디젤은 안정적이지만 탄소 감축 흐름과 맞지 않는다. 수소 저장과 연료전지 발전을 결합하면 태양광의 변동성을 흡수하면서도 디젤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결국 이번 프로젝트는 남극 기지의 전력원을 교체하는 작업이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다시 쓰는 방식을 새로 짜는 작업이다.

남극이라는 장소성도 작지 않다. 극지는 기후변화 연구의 최전선이면서 동시에 기후변화 대응을 요구받는 공간이다. 연구시설이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는 현실은 오래된 숙제였다. 해양수산부와 극지연구소가 수소·태양광·디젤을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전력 운영 체계를 도입하려는 배경도 이와 맞닿아 있다. 디젤을 한 번에 걷어내기보다 친환경 에너지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식이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수소 생태계 전략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된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수소전기차와 연료전지 시스템을 중심으로 수소 기술을 축적해 왔고, 국내에서는 청주와 파주 등에서 청정수소 생산·저장·활용을 연계한 수소도시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해외에서도 인도네시아와 홍콩 등에서 현지 맞춤형 수소 설루션을 설계하고 있다.

남극 프로젝트는 이 흐름을 고립형 전력망 영역으로 확장한다. 도심 인프라나 산업단지와 달리 남극 기지는 전력망, 물류, 기후 조건이 모두 불리하다. 이곳에서 수전해, 저장, 연료전지 발전이 하나의 체계로 운영되면 수소 기술은 차량 중심의 활용 범위에서 벗어나 에너지 저장과 분산형 전력망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이번 사업을 CSR 프로젝트로 설명하는 만큼 사회공헌 성격은 분명하다. 다만 산업적 의미는 그보다 넓다. 남극과학기지의 전력 전환은 탄소중립 구호를 상징하는 행사가 아니라,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저장 기술로 보완하는 현실적 에너지 모델에 가깝다. 

특히 섬, 오지, 재난 지역처럼 외부 전력망 의존이 어려운 지역에서 수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성 김 현대차그룹 전략기획담당 사장은 "남극 그린수소 그리드 조성 CSR 프로젝트는 남극과학기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위한 주요 출발점이다"라며 "이번 협력은 정부의 탄소중립 추진 정책과 방향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은 수소 전 주기 기술을 기반으로 극한 환경에서도 적용 가능한 에너지 모델을 구현하는 등 다양한 지역으로 확장 가능한 지속가능 수소 설루션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의 남극 그린수소 그리드는 당장 디젤 발전을 완전히 대체하는 해법은 아니다. 그러나 남는 전력을 버리지 않고 저장해 다시 쓰는 구조를 남극 기지에 심는다는 점에서 출발선의 의미가 있다. 남극의 전기를 바꾸는 일은 수소 기술의 쓰임을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하다. 자동차에서 시작한 현대차그룹의 수소 전략이 이제 고립형 에너지망의 언어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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