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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전쟁⑨] "총상은 아물어도 기억은 남는다"

유용원 의원 "군인 PTSD, 이젠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전상의 영역"

김경태·노병우·박지혜·김우람·박선린 기자 | kkt·rbu·pjh·kwr·psr@newsprime.co.kr | 2026.06.16 11:36:28
[프라임경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군 복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PTSD 역시 마찬가지다. 전투는 기록으로 남고, 희생은 이름으로 기억되지만, 그날의 기억은 개인의 삶 속에 오래 머문다. 때로는 수년이 흐른 뒤에야 모습을 드러내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일상을 흔든다.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살아남았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역 이후에도 악몽과 불안, 죄책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던 장병들이 적지 않았다. 문제는 그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제도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군 복무 중 발생한 PTSD는 신체적 부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발견되고, 더 늦게 인정돼 왔다. 전투와 위험 임무 과정에서 입은 정신적 외상은 개인의 삶에 장기적인 흔적을 남겼지만, 이를 치료와 보상, 사회 복귀로 연결하는 제도적 장치는 충분하지 못했다.

이같은 현실 속에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군인재해보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올해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군 복무 과정에서 발생한 PTSD에 대한 국가 책임을 확대하고, 그동안 제도 밖에 남겨졌던 장병들을 보호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후 지연성 PTSD에 대한 이해와 보상' 토론회에 참석해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하고 있는 유용원 의원. ⓒ 유용원 의원실


유 의원은 이번 법 개정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국가를 위한 희생에 기한은 없다."

전장에서 끝나지 않은 전투

유 의원은 법안 발의의 배경으로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 등 국가를 위해 최전선에 섰던 장병들의 현실을 꼽았다. 그는 "실전 교전이나 위험 직무 수행 과정에서 얻은 정신적 상처 역시 명백한 전상"이라며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한 장병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PTSD는 총상이나 파편상처럼 눈에 보이는 부상과 달리 제도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신체에 남은 상처는 쉽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마음에 남은 상처는 증명부터 어려웠다. 

특히 기존 군인재해보상법은 전역 후 6개월 이내 심신장애 판정을 받아야 보상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PTSD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지나서야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PTSD는 전역 후 수년이 지나 발현될 수 있지만, 기존 제도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유용원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그 공백을 메우는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 유용원 의원실


유 의원은 "6개월이라는 기준은 의학적 사실보다 행정 편의에 가까운 제한이었다"며 "지연성 PTSD라는 질환의 특성을 외면한 결과 많은 장병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 의원은 "전장에서의 정신적 상처 역시 전투가 남긴 결과물"이라며 "국가가 이제야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수행하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늦게 나타난 '상처', 더 늦었던 '국가의 인정'

이번 개정안의 의미는 단순히 보상 대상을 확대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가가 군 복무 중 발생한 정신적 손상 역시 신체적 부상과 동등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원칙을 법적으로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개정안에는 소급 적용 규정이 포함됐다. 법 시행 당시 이미 전역 후 6개월이 지나 보상 대상에서 제외됐던 장병들도 다시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이 고(故) 한상국 상사의 배우자인 김한나씨 등과 함께 지연성 PTSD 보상 입법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모습. ⓒ 유용원 의원실


유 의원은 "국가를 위한 희생은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며 "과거 제도 때문에 보호받지 못했던 참전 영웅들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제도 보완이 아니라 국가 책임의 기준을 다시 세운 입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PTSD는 전역과 동시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수년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또 어떤 이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이 PTSD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동안 제도는 이들의 시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전투는 이미 끝났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던 셈이다.

"입증 책임, 개인이 아닌 국가가 나눠야"

유 의원은 앞으로의 과제로 보상 심사 체계 개선을 꼽았다. 현재 PTSD 보상 과정에서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군 복무와 정신질환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문제다. 특히 수년 또는 수십 년이 지난 뒤 증상이 발현된 경우 당시 자료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유 의원은 지연성 PTSD 피해 장병의 입증 부담을 완화하고, 보상 체계를 치료·상담·재활 지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유용원 의원실


유 의원은 "과거처럼 신청자 개인에게 모든 입증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격렬한 교전이나 위험 임무에 투입된 기록이 존재하고 의학적 진단이 확인된다면 국가가 상당 인과관계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군 조직 특성상 현역 시절 정신과 진료를 받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다"며 "수십 년이 지난 뒤 국가가 오히려 개인에게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국방부와 국가보훈부가 보유한 자료를 연계해 정부가 직접 기록을 발굴하고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유 의원은 "현재 보훈 체계는 신청자가 먼저 증명해야 움직이는 구조"라며 "앞으로는 정부가 먼저 기록을 찾고 확인하는 방향으로 행정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상은 시작일 뿐, 필요한 것은 회복의 시스템

유 의원은 법 개정 이후 더 중요한 과제로 치료와 재활 체계 구축을 꼽았다. 그는 "보상금 지급은 국가 책임의 시작일 뿐"이라며 "PTSD는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화될 위험이 높은 만큼 전역 이후에도 지속적인 정신과 치료와 심리 상담, 사회 복귀 프로그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군 내부 문화 개선 역시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유 의원은 "정신적 외상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상담과 치료가 인사상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용원 의원과 김한나씨 등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지연성 PTSD 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 유용원 의원실


현재 국내 군 PTSD 치료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제로 군 PTSD 전문 상담 체계는 수요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는 "전국 어디서나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권역별 거점 병원과 민간 전문기관 연계 체계를 확대해야 한다"며 "국회 차원에서도 관련 예산 확보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 미국 보훈성(VA)의 PTSD 치료 체계를 예로 들며 국내 역시 보상 중심에서 전문 치료 체계 구축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군 의료기관과 대학병원이 협력하는 군 트라우마 전문의 양성 체계를 구축하고 실전 트라우마에 특화된 진료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개정안은 전상과 특수직무공상으로 인한 PTSD를 우선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유 의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격오지 근무나 각종 군 사고 등 일반 공상 영역에서 발생한 정신적 손상 역시 앞으로 논의가 필요하다""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다 상처를 입은 장병이라면 모두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법 개정은 PTSD 보상 범위를 확대하는 차원을 넘어, 군 복무 과정에서 발생한 정신적 상처 역시 국가가 책임져야 할 전상이라는 사실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첫걸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투는 끝났지만 누군가에게 그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역 이후에도 계속되는 악몽과 불안,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뒤늦은 동정이 아니다. 국가가 끝까지 기억하고 책임지겠다는 약속이다.

국가의 책임은 전역증을 받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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