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자동차 업체들의 실내 경쟁이 공조와 디스플레이를 지나 위생 관리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그동안 차량용 살균 기술은 암레스트 내부나 수납함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주로 쓰였다. 컵, 스마트폰, 작은 소지품을 넣고 일정 시간 살균하는 방식이었다. 사람이 머무는 실내 전체를 관리하기에는 기술적 제약이 컸다.
현대자동차(005380)·기아(000270)가 공개한 '플라즈마 케어 UVC(Plasma Care UVC)'는 이 지점을 겨냥한다. 현대차·기아는 11일 탑승자가 있는 차량 실내 개방 공간에서도 활용 가능한 UVC(Ultraviolet C, 자외선) 램프 살균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기존 차량용 UVC 기술이 밀폐된 공간 중심이었다면, 이번 기술은 탑승 공간 자체를 위생 관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플라즈마 케어 UVC 작동 그래픽. ⓒ 현대자동차
핵심은 200~230nm(나노미터) 대역의 Far-UVC다. 일반적으로 차량이나 생활가전에 적용돼 온 UVC 살균 기술은 255~280nm 대역을 활용해 왔다. 살균력은 우수하지만 피부와 눈에 직접 닿을 경우 유해할 수 있어 사람의 접촉이 제한된 공간에서만 사용됐다.
현대차·기아는 LED로 구현하기 어려운 Far-UVC 대역을 플라즈마 램프 방식으로 만들었다. Far-UVC는 투과성이 낮아 피부 깊은 곳까지 침투하기 어렵고, 세균과 바이러스에는 작용할 수 있다. 이 특성을 바탕으로 탑승 중에도 차량 실내 공기와 표면을 관리할 수 있다.
◆차량 실내, 이동 공간에서 관리 공간으로
이번 기술의 의미는 차량 실내를 바라보는 관점 변화에 있다. 자동차는 더 이상 운전자와 동승자가 일정 시간 머무는 닫힌 이동수단으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공유 차량, 자율주행 셔틀, 로보택시처럼 여러 사람이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모빌리티가 늘면서 실내 위생은 편의 기능을 넘어 신뢰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목적 기반 차량(Purpose Built Vehicle, PBV)은 이런 흐름이 가장 먼저 드러날 수 있는 영역이다. 이용 목적과 탑승자 구성에 따라 요구되는 실내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차량이 여러 용도로 쓰이고, 여러 사람이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구조에서는 공기 질과 냄새, 표면 오염 관리가 서비스 품질을 좌우할 수 있다.

플라즈마 케어 UVC가 PV5 차량에 설치된 모습. ⓒ 현대자동차
차량 실내 위생 기술이 공조, 시트, 디스플레이와 함께 미래 모빌리티의 상품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커질 수 있는 이유다.
현대차·기아가 기아 PV5를 중심으로 플라즈마 케어 UVC 활용 사례를 제시한 것도 이와 맞물린다. PV5는 기아가 PBV 전략의 핵심 차종으로 내세우는 모델이다. 이 차량에 해당 기술을 시범 적용했다는 것은 위생 관리 기술을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의 구성 요소로 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존 자동차 실내 기술 경쟁은 주행 편의, 연결성, 인포테인먼트, 공간 활용성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자율주행과 공유 모빌리티가 확산되면 탑승자는 운전보다 머무는 시간의 질에 더 민감해진다. 이전 이용자의 흔적, 실내 냄새, 공기 상태처럼 그동안 부차적으로 여겨졌던 요소가 차량 만족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냄새 저감도 이 흐름 안에서 봐야 한다. 차량 실내 악취는 음식물, 습기, 미생물 증식, 탑승자 생활 패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특히 공유 차량이나 영업용 차량에서는 냄새가 이용자 만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플라즈마 케어 UVC가 PV5 차량에 설치된 모습. ⓒ 현대자동차
현대차·기아는 "세균과 미생물이 증식하는 과정에서 냄새 유발 물질이 발생하며, 플라즈마 케어 UVC가 살균 과정에서 이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는 실내 위생 관리 기술을 새로운 차별화 요소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특히 전기차 시대에는 파워트레인 차이가 과거보다 줄어들고, 실내 경험과 소프트웨어, 서비스 품질이 브랜드 경쟁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향후 차량 실내 위생 기술은 공기청정, 항균 소재, 냄새 저감, 자동 환기 시스템과 결합하면서 미래 모빌리티의 실내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로 확장될 수 있다.
◆성능보다 어려운 건 실차 적용 기준
이날 현대차·기아는 플라즈마 케어 UVC의 성능 검증 결과도 공개했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과 진행한 시험에서는 차량 실내를 모사한 8㎥ 규모 챔버에서 30분 가동 후 공기 중 부유 바이러스가 96.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플라즈마 케어 UVC의 파장 에너지를 측정하는 모습. ⓒ 현대자동차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창업지원센터와의 공동 연구에서는 램프 단품의 표면 살균 성능을 평가했다. 폐렴균을 Far-UVC 빛에 노출한 결과 30초 조사 시 99.9%가 사멸했고, 60초 이상에서는 완전 사멸을 확인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KATECH)과의 실차 평가도 진행됐다. 현대차·기아는 기아 PV5 차량에 해당 기술을 적용한 뒤 700㎜ 거리에서 빛을 조사했고, 40분 만에 대장균 99.9% 사멸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실차 적용까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실험실이나 챔버 환경과 실제 차량 이용 환경은 다르다. 탑승자의 위치, 램프와의 거리, 조사 각도, 그림자 영역, 실내 소재의 반사율, 오염 정도에 따라 살균 효과는 달라질 수 있다. 차량은 주행 중 진동과 온도 변화도 크다. 장시간 사용 시 내장재 변색이나 소재 열화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안전성 역시 상용화의 핵심 변수다. 현대차·기아는 유해한 파장까지 이중으로 차단하는 특수 광학 필터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필터는 Far-UVC 파장만 통과시키고 다른 파장대는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 실내는 병원이나 학교보다 램프와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조사량 제어와 안전 기준 충족이 중요하다.

플라즈마 케어 UVC 살균력 평가 결과. ⓒ 현대자동차
현대차·기아는 플라즈마 케어 UVC 기술을 면밀히 검증한 뒤 실차 적용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장 양산차 적용 일정을 제시하기보다 성능과 안전성을 추가로 확인하겠다는 의미다.
이 기술이 실제 차량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살균 성능 외에도 여러 기준이 필요하다. 이용자가 탑승한 상태에서 어느 정도 강도로 작동할지, 특정 좌석에 사람이 가까이 있을 때 자동으로 출력이 조절될지, 작동 상태를 탑승자에게 어떻게 안내할지 등이 정리돼야 한다. 국가별 자외선 노출 기준과 인증 절차도 변수다.
그럼에도 이번 공개가 갖는 방향성은 분명하다. 자동차 실내는 점점 더 오래 머무는 공간이 되고 있고,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공간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위생은 부가 기능이 아니라 모빌리티 서비스의 기본 조건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기아의 플라즈마 케어 UVC는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중 하나다. 성패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보다 실제 차량 환경에서 얼마나 안전하고 일관된 효과를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래 모빌리티 경쟁이 주행성능과 디지털 경험에서 실내 환경 관리로 넓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술 공개는 자동차 업체들이 새롭게 주목해야 할 영역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