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혼소송 상담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는 "이 정도 사유로도 이혼이 되느냐"는 것이다. 불륜이나 폭행처럼 분명한 사유가 있으면 판단이 비교적 쉽다. 그러나 실제 부부 사이의 파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반복적인 폭언과 무시, 오랜 불신, 대화 단절, 한집에 살면서도 남처럼 지내는 생활이 계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민법은 재판상 이혼사유로 배우자의 부정행위, 악의의 유기, 심히 부당한 대우 등을 규정하면서, 마지막에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를 두고 있다. 앞의 사유에 딱 맞지 않더라도, 부부공동생활이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진 경우를 포괄하기 위한 규정이다.
사례를 보자.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던 A씨는 남편과 15년 넘게 혼인생활을 이어왔다. 두 사람은 혼인 초기 파주시와 김포시 일대에서 생활하며 자녀를 키웠다. 남편에게 명백한 외도나 심한 폭행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활비, 자녀 교육, 양가 가족 문제로 갈등이 반복됐고, 남편은 다툼이 생길 때마다 말을 하지 않거나 의견을 무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는 거의 사라졌고, 같은 집에 살면서도 생활을 따로 하는 날이 많아졌다. 결국 A씨는 "성격 차이도 이혼사유가 될 수 있느냐"며 이혼을 고민하게 됐다.
이런 경우 가정법원은 단순히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말만으로 이혼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부부 사이에는 어느 정도 의견 차이와 갈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다툼이나 일시적인 감정 대립만으로 곧바로 혼인 파탄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갈등의 정도와 기간이다. 단순한 성격 차이를 넘어 반복적인 폭언, 무시, 경제적 통제, 대화 단절, 장기간 별거, 자녀 앞에서의 심한 갈등, 신뢰관계의 회복 불가능성 등이 함께 나타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법원은 특정 사건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혼인생활 전체의 흐름을 본다.
예를 들어 △수년간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무시 △중요한 가정 문제를 일방적으로 결정 △갈등이 생길 때마다 대화 거부 등은 단순한 성격 차이로만 보기 어렵다.
반대로 자주 다퉜다는 사정은 있지만 아직 관계 회복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이혼청구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결국 핵심은 '혼인관계가 객관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됐는지'다.
단순히 "힘들다",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언제부터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반복됐는지, 그로 인해 부부관계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증거도 중요하다. 반복적인 폭언이나 협박이 있었다면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대화, 녹음, 진단서, 상담기록, 경찰 신고 내역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장기간 별거가 있었다면 주민등록, 임대차계약서, 생활비 지급 내역, 자녀 양육 상황 등이 의미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이혼전문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이혼이 가능한지 묻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정을 이혼사유로 구성하고 어떤 증거로 뒷받침할지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이혼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협의이혼은 두 사람이 동의하면 가능하지만, 재판상 이혼은 법이 정한 이혼사유가 인정돼야 한다. 한쪽이 이혼을 거부하고 있다면 "더 이상 같이 살기 싫다"는 의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사건 초기부터 혼인 파탄의 경위, 상대방의 반복된 행동, 증거자료의 방향을 차분히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는 결국 부부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는 기준이다. 법원은 한 번의 말다툼보다 그 말다툼이 반복되며 두 사람의 신뢰를 어디까지 무너뜨렸는지를 본다. 외도나 폭행처럼 선명한 사건이 없더라도, 오랜 시간 쌓인 무시와 단절이 혼인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지점까지 밀어붙였다면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
이혼사유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매일의 생활 속에서 조금씩 쌓인다. 법이 보는 것은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관계가 아직 남아 있는지다. 혼인은 종이 한 장으로 시작되지만, 그 끝은 결국 두 사람이 더 이상 같은 삶을 살 수 있는지에서 결정된다.
김광웅 변호사(이혼전문) /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 사법연수원 제37기 수료/ 세무사 /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