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 이후 기업들의 관심은 빠르게 '효율'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기업 현장에서는 업무 자동화와 생성형 AI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인력 재배치와 채용 축소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실제 직장갑질119 조사에서는 AI를 공식 도입했거나 도입 중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7.1%에 달했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AI 도입 이후 채용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이제 AI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조직 운영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경영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많은 기업이 AI를 "무엇을 새롭게 할 것인가"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줄일 것인가"의 관점에서 먼저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글로벌 CIO와 HR 리더들 사이에서는 AI 확산 속도가 조직 내부의 피로와 번아웃을 급격히 높이고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실제 CIO 분석 기사에 따르면 기술업계 종사자의 번아웃 비율은 최근 1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응답자의 46%는 "현재 번아웃 상태"라고 답했다.
동시에 AI 일상 사용률은 4배 이상 증가했지만, 기술업계 종사자들의 장기적 미래에 대한 신뢰도는 80%에서 60% 수준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AI가 업무 속도를 높이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감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직 내부의 불안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49.5%가 향후 업무와 고용 환경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으며, 주요 원인으로는 △산업·시장 변화(51.6%) △AI 및 자동화 기술 확산(34.1%) △조직 구조 개편(33.1%) 등이 꼽혔다.
또한 직장인의 89.4%는 AI 역량 강화를 위해 학습을 진행 중이라고 응답했지만, 상당수는 계속 배우고 있음에도 뒤처지는 감각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HR 현장과 기업교육 영역에서 '역량 절벽(Competency Cliff)'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 변화 속도가 개인의 성장 속도를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조직은 학습과 성장의 공간이 아니라 생존 경쟁의 공간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많은 기업이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적응의 문제'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인력경영의 핵심은 사람을 줄이는 관리 기술이 아니다.
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설계하고, 구성원의 역량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도록 돕는 것이 인력경영의 본래 역할이다.
실제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은 AI 전환 성공의 핵심이 기술 자체보다 조직문화와 리더십, 구성원의 학습 역량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AI 전환은 기술 전환이 아니라 조직과 사람의 전환에 더 가깝다.
오히려 지금 기업에게 더 필요한 것은 조직의 비전과 전략에 대한 재설계다. AI를 통해 사람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보다, AI를 활용해 조직의 역할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도 단순한 업무 압박이 아니라 "우리는 앞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조직인가"에 대한 방향 제시다. 사람은 단순히 연봉과 효율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성장 가능성과 의미, 함께 도전할 수 있다는 감각 속에서 몰입한다. 결국 AI 시대에 경쟁력을 갖는 조직은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는 조직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새로운 학습과 실험, 도전을 시도할 수 있도록 성장의 비전을 제시하는 조직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HR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 HR이 채용·평가·통제 중심의 관리 기능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조직의 존재 이유와 미래 방향을 설계하는 전략 기능으로 이동해야 한다.
기술은 속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방향까지 대신 결정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활용해 어떤 방향의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사람을 줄이는 조직은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성장과 배움의 의미를 다시 설명할 수 있는 조직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남는 조직은 아마 후자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