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글로벌 인프라 업체들이 선박 엔진을 새로운 전력원으로 채택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프라임경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글로벌 인프라 업체들이 '선박 엔진'을 새로운 전력원으로 채택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전력망 증설이나 원전(SMR), 대형 가스터빈 등 기존 전력원들은 2027~2028년 가동 시점을 맞추기 어려운 면이 있다. 반면 선박 엔진은 빠른 설치와 장시간 안정적 운전이 가능해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 선박 엔진을 '찜하다'
선반 엔진 시장이 데이터센터 생태계에 들어온 것은 지난해 7월이다. 당시 바르질라(Wärtsilä)가 미국 오하이오주 온사이트 발전 시설에 282메가와트(MW) 규모의 엔진 15대를 공급한다고 발표하면서다. 이는 글로벌 엔진 메이저가 실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준의 발주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이후 시장은 빠르게 팽창했다. 올해 1월 베르겐 엔진이 미국 동부 AI 데이터센터에 400MW(36대)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바르질라 역시 같은 달 429MW(24대), 4월에는 각각 412MW(40대)와 790MW(42대) 공급을 연이어 발표했다.
국내 기업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HD현대중공업은 미국 아페리온 에너지 그룹과 684MW 규모의 데이터센터향 엔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20MW급 엔진 약 34~35대에 해당하는 규모로, 최근 1년간 발표된 데이터센터향 선박 엔진 프로젝트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특히 지정학적 이슈로 중국 선박 엔진 기업들이 북미 시장에서 배제된 점을 감안하면, 국내 기업들의 추가 수주 여력은 충분해 보인다는 평가를 이끌어 냈다.
◆ '시급한 전력 확보 수요'와 '전략적 사업확대'의 결과물
데이터센터용 선박 엔진 시장의 개화는 수요처(하이퍼스케일러)와 공급처(엔진 제조사)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결과다.
첫째, 하이퍼스케일러의 시급한 전력 확보 수요다. AI 모델 개발 속도전에서 전력 인프라 조기 확보는 핵심 과제다. 현재 기존 전력원들은 구축 기간이 길거나 즉시 투입에 제약이 많다. 한때 단기 대안으로 여겨졌던 대형 가스터빈조차 설계 확정 후 상업 운전까지 3~4년이 소요되며, 최근 주요 인도 슬롯이 2029~2030년까지 대부분 소진된 상태다.
반면 선박 엔진은 발전용 엔진 플랫폼을 전환해 활용할 수 있어 가스터빈 대비 리드타임을 1년 이상 단축할 수 있다. 게다가 24시간 장시간 운전을 전제로 설계돼 상시 전력 공급에 최적화돼있다.
둘째, 엔진 제조사의 전략적 사업 확대다. 데이터센터향 사업은 선박향보다 수익성과 전략적 가치가 뛰어나다.
특히 유지보수(AM, After Market) 영역은 신규 엔진 판매(영업이익률 5~10%)보다 훨씬 수익성(영업이익률 20~30%)이 높다. 데이터센터용 엔진은 365일 상시 가동되므로 2~3년마다 대형 정비 수요가 반복적으로 발생해 유지보수 매출이 빠르게 누적된다.
또한 공급자 우위 시장이라 가격 방어력이 높고, 20~30년 운영되는 장기 인프라 특성상 조선업의 사이클 의존도를 완화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 "4행정 중속 엔진 밸류체인에 주목할 때"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든 선박 엔진 업체가 수혜를 입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2행정 저속 엔진이 초대형 선박의 프로펠러를 직접 구동하는 데 쓰인다면, 최근 데이터센터에 채택되는 제품은 4행정 중속 엔진 계열"이라며 "4행정 중속 엔진은 24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대당 5~20MW 수준이라 여러 개를 붙여 증설하는 모듈형 발전 블록으로 활용하기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따라서 가장 직접적인 수혜는 4행정 중속 엔진을 양산하는 메이저 엔진사인 HD현대중공업, HD현대마린엔진, STX엔진 등에 집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로쓰리서치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마린엔진은 힘센엔진(HiMSEN)으로 데이터센터향 프로젝트 레퍼런스를 확보한 상황이다. STX엔진은 MAN·커민스 계열 엔진의 라이선스 생산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데이터센터용 엔진 수요 확대 시 국내 생산 물량 증가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연구원은 "투자 관점에서는 부품사와 유지보수(AM) 업체까지 시야를 넓혀야 한다. 메이저 엔진사가 시장 개화의 직접 수혜주라면, 부품사와 AM사는 그 수주가 실적으로 더 오래, 더 반복적으로 반영되는 밸류체인이라는 점에서 투자매력이 높다"고 조언했다.
또한 "HD현대중공업이나 STX엔진 등 메이저 엔진사의 데이터센터향 공급이 늘어날수록, 중속 엔진 핵심 부품 업체의 초도 물량도 함께 증가한다"며 "이런 점에서 케이에스피, 케이프와 같은 부품사의 수혜 강도가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