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신적 피해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이재 이사장이 세미나 시작에 앞서 기념사를하고 있다. = 김상준 기자
이이재 120다산콜재단 이사장은 17일 서울갤러리 워크숍룸에서 열린 '2026 콜센터 감정노동 보호 실천 전략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세미나는 상담사들이 겪는 감정노동 문제를 짚고, 실질적인 보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행사는 광역자치단체 콜센터협의체가 주최하고 120다산콜재단과 노동·일터연구소 '감동'이 공동 주관했다. 주요 참석자로는 △김병민 서울시 정무부시장 △이이재 120다산콜재단 이사장 △문은영 법률사무소 문율 변호사 △이정훈 노동·일터연구소 대표 등을 비롯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 콜센터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현장에서는 감정노동 피해를 더 이상 상담사 개인의 인내 문제로 남겨둬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짙게 형성됐다. 악성 민원 대응과 정신적 피해의 산업재해 인정, 법률 지원과 행정적 보완까지 한자리에서 논의되면서 콜센터 현장의 보호 체계를 어떻게 촘촘히 만들 것인지가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상담사 골병, 노사가 함께 산재 책임져야"
이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시민 만족도 이면에 상담사들의 상처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그는 "행정 서비스의 최전선에 선 상담사들이 골병들고 있다"며 예방의 중요성과 함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치유와 사후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산재 인정의 현실적 어려움도 언급했다. 그는 "물리적 피해를 넘어 정신적 피해까지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지만, 직장 문화에서는 여전히 이를 외면하는 경향이 짙다"며 정신적 피해의 경우 여전히 당사자가 직접 입증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현실을 짚었다. 이어 "이번 세미나가 정신적 피해의 산재 인정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노사가 함께 산재에 대처하고 책임을 나누는 변화의 이정표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특이민원은 위험 신호…입증 부담 덜어줄 안전망 구축
이어진 주제 발표에서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이 쏟아졌다. 서강숙 120다산콜재단 민원관리부장은 조직 차원의 상담사 보호 방안을 소개했다.
서 부장은 "단순한 '진상 고객'이 아니라 상담사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 신호로 봐야 한다"며 "재단은 녹취, 경고, 상담 종결, 심의위원회 연계 등 단계별 절차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사 개인의 대응에 맡기기보다 조직 차원의 보호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예시가 서울특별시 감정노동 종사자의 권리 보호 등에 관한 조례의 개정이다. 기존 4개의 금지 조항을 7개 항목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2025년 1월 740건, 2월 588건, 3월 795건이던 악성·강성·주의 민원 처리 건수는 2026년 1월 689건, 2월 783건, 3월 646건을 기록하며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
이어 이은미 재단 인사부장은 '마음이 베인 것도 산재입니다…120이 잇는 권리의 다리' 발표에서 감정노동이 실제 질병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끊임없는 감정 통제와 폭언 누적은 치명적인 정신적 손상을 부른다"며 "복잡한 절차와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산재 신청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재단은 '산재보험 길잡이 상담센터'를 운영하며 상담과 절차 안내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응대율 얽매인 KPI 축소하고 데이터 투명하게 공유해야"
노동계와 법조계의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임석환 더불어사는희망연대본부 다산콜센터지부장은 영화 '다음 소희'를 언급하며 콜센터의 현실을 짚었다. 그는 실적 압박과 간접고용 구조, KPI 중심 평가가 상담사들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통화 시간이나 응대율에 집착하는 핵심성과지표 축소를 제안했다.
원청 책임 법제화와 산재 인정 기준의 명확화도 촉구했다. 특히 "보이지 않는 산재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해 현장에 적잖은 울림을 남겼다.
문은영 법률사무소 문율 변호사는 노사 공동 산재 지원의 법률적 쟁점을 다뤘다. 문 변호사는 업무 인과관계를 입증하려면 악성 민원 녹취, 근무 시간, 실적 자료 등 핵심 데이터를 노사가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시에 개인 민감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인사 평가에 악용되지 않도록 엄격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산재 지원을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제도로 작동시키려면 자료 관리와 개인정보 보호, 치료 후 복귀까지 함께 설계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진2. 콜센터 감정노동 보호 실천 전략 세미나. = 김상준 기자
행정 당국의 입장도 제시됐다. 곽철홍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 과장은 고객상담 직종의 정신질환 산재 원인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1%가 고객 폭언에서 비롯된다는 통계를 소개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사전 예방 조치와 산재보험법에 의한 사후 보상 체계의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감정노동 보호가 개별 기관의 내부 관리 차원을 넘어 행정과 제도의 과제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날 현장에서는 감정노동 보호 매뉴얼도 함께 배포됐다. 매뉴얼에는 제도와 규범, 법적 조치 절차, 감정 치유와 회복, 근무환경 개선 방안 등이 담겼다. 상담사의 피해를 사후 위로나 복지 차원에만 둘 것이 아니라, 실무와 제도 개선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 이사장은 "감정노동자 보호는 사후 위로나 단순한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공공서비스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고, 우리 사회의 노동 존중 인식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특별시 120다산콜재단은 2007년 9월 '서울시 민원을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한다'는 슬로건 아래 120다산콜센터로 출범, 지금까지 서울시정 전반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