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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로 말하는 페라리, 한국을 위한 테일러메이드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 공개…한국 아티스트들과 빚어낸 글로벌 협업 결실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6.01.20 09:24:32
[프라임경제] 페라리가 한국 시장을 위해 제작한 세상에 단 한 대뿐인 '페라리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Ferrari 12Cilindri Tailor Made)'를 공개했다. 

글로벌 브랜드의 로컬 에디션은 이제 낯설지 않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접근 방식부터 결이 다르다. 특정 컬러나 배지를 더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의 미감과 공예, 사운드와 도시 감성을 하나의 자동차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다.

이번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는 페라리의 최상위 퍼스널라이제이션 프로그램인 Ferrari Tailor Made를 통해 완성됐다. 핵심은 '한국 시장 전용'이라는 문구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문화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했는가에 있다. 

페라리의 최상위 퍼스널라이제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장인정신의 정수를 담아낸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 ⓒ 페라리코리아


페라리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페라리 스타일링 센터,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쿨헌팅(Cool hunting) 그리고 네 팀의 한국 아티스트를 한 축으로 묶었다. 아시아·유럽·북미를 잇는 협업 구조 자체가 이번 프로젝트의 성격을 규정한다.

약 2년에 걸친 제작 과정은 자동차를 결과물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디자인 △공예 △기술이 교차하는 실험에 가깝다. 이는 페라리가 한국을 단순한 판매 시장이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을 확장할 수 있는 문화적 무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외관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요소는 프로젝트 팀이 새롭게 개발한 '윤슬' 페인트다. 빛에 따라 녹색에서 보라색으로 변주되는 이 컬러는 고려청자의 색감, 서울의 네온 라이트, K-팝과 전자음악의 리듬을 하나의 표면 언어로 통합한다. 이는 특정 전통 요소를 직설적으로 차용하기보다, 한국의 감각을 추상화해 페라리의 조형 언어로 번역한 결과다.

이 선택은 페라리가 지역성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문화적 상징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체계 안에서 재해석하는 쪽에 무게를 뒀다.

이 특별한 테일러메이드 차량은 아시아, 유럽, 북미 세 개 대륙을 아우르는 다학제적 협업의 결실이다. ⓒ 페라리코리아


실내는 이번 프로젝트의 정수가 가장 밀도 높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말총 공예 작가 정다혜의 작업은 △시트 △바닥 △글라스 루프 △대시보드까지 확장됐다. 특히 대시보드에는 실제 말총 공예 작품이 통합돼 자동차 실내에 예술 작품이 구조적으로 포함되는 전례를 만들었다. 이는 페라리 역사상 처음 있는 시도다.

여기에 국내 기업이 개발한 3D 패브릭을 적용한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소재 실험을 통해 전통 공예의 미감을 현대적 기술로 구현하며, 테일러메이드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술 협업의 결과물임을 분명히 했다.

김현희 작가의 반투명 아크릴 기법은 외관 엠블럼과 실내 센터 터널, 헌정 플레이트로 이어지며 '기억의 저장소'라는 개념을 시각화한다. 이 정도 수준의 엠블럼 커스터마이징은 테일러메이드 프로그램에서도 이례적이다.

화이트 컬러는 옻칠 작업으로 잘 알려진 이태현 작가의 미학에서 출발했다. 백색 옻칠의 레이어링 개념은 화이트 브레이크 캘리퍼와 시프트 패들로 구현됐는데, 특히 화이트 캘리퍼는 페라리 양산 공정에서 처음 적용된 사례다.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는 '전통에서 영감을, 혁신으로 추진력을(Inspired by Tradition, Powered by Innovation)'이라는 테마 아래 '도로 위의 예술'을 새롭게 해석하며 테일러메이드의 수준을 한 차원 더 끌어올렸다. ⓒ 페라리코리아


여기에 사운드 아티스트 듀오 그레이코드와 지인이 페라리 V12 엔진 사운드를 시각적 패턴으로 변환해 리버리에 적용했다. 동일한 윤슬 페인트를 한 톤 어둡게 사용해 입체감을 더한 이 기법 역시 이 차량만을 위해 개발된 공정이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페라리 최고 디자인 책임자 플라비오 만조니(Flavio Manzoni)가 직접 참여했다. 단순한 승인 절차가 아니라 디자인과 R&D 팀이 아티스트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프로젝트 전반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테일러메이드가 브랜드 주변부가 아닌, 디자인 전략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행사 다음 날 진행되는 서울대 디자인 전공 학생들과의 간담회 역시 우연이 아니다. 페라리는 과거 우니베르소 페라리(Universo Ferrari) 전시를 통해서도 한국의 미래 세대와 직접 소통해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을 장기적 문화 파트너로 대하는 전략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프로젝트 팀은 한국의 역동적인 예술적, 문화적 에너지를 단 하나뿐인 페라리 작품으로 구현해내는 흥미로운 도전을 완수했다. ⓒ 페라리코리아


한편 이번 테일러메이드 프로젝트의 기반이 된 페라리 12칠린드리는 단순한 신차가 아니라 전동화가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페라리가 어떤 가치를 끝까지 붙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대부분의 슈퍼카 브랜드가 터보차저와 하이브리드, 전동화로 무게 중심을 옮긴 가운데 12칠린드리는 여전히 자연흡기 V12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는 효율보다 감각, 수치보다 경험을 중시해온 페라리의 정체성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선택이다.

보닛 아래에는 6.5ℓ 자연흡기 V12 엔진이 탑재돼 최고출력 830마력(cv)을 발휘하며, 최대 회전수는 9500rpm에 이른다. 터보의 개입 없이 고회전으로 치솟는 이 엔진은 즉각적인 응답성과 선형적인 출력 전달 그리고 인위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운드트랙을 만들어낸다. 최고속도는 340㎞/h 이상,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까지는 약 3초 만에 도달한다.

중요한 것은 이 성능이 과시를 위한 수치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합형 능동 공기역학 시스템, 역방향 개폐식 보닛, GT 성향의 섀시 세팅은 고속주행 안정성과 일상주행의 완성도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는 12칠린드리가 '마지막 내연기관 페라리'라는 향수에 기대기보다,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V12의 논리를 기술로 증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차량 실내에 예술작품이 통합되는 전례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 페라리코리아


이런 플랫폼 위에 한국을 위한 테일러메이드 프로젝트가 얹혔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전동화 전환기 한가운데서 페라리는 가장 전통적인 엔진을 가장 현대적인 문화 해석과 결합시켰다. 이번 12칠린드리는 단 한 대의 예술 작품이기 이전에, 페라리가 아직 내려놓지 않은 가치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페라리 12칠린드리 테일러메이드는 한국적 요소를 장식처럼 덧입힌 결과물이 아니다. 이는 △공예 △예술 △기술 △사운드를 매개로 한국이라는 문화권을 페라리의 언어로 다시 쓰는 시도다. 

단 한 대의 자동차지만, 이 프로젝트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페라리는 이제 로컬 시장을 단순히 맞추는 단계를 넘어, 브랜드 정체성을 확장하는 실험실로 활용하고 있다. 이 한 대의 12칠린드리는 그 변화의 가장 집약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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