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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데로 해변 |
[프라임경제]캠프에서 버스로 4시간이 경과하여 ‘바라데로’ 해변에 도착하였다. 해변은 카리브 해를 끼고 맑은 물에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가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어느 해수욕장의 보다 모래가 부드럽고 물색이 맑았다. 해수욕장은 대부분이 외국인 관광객이었으며 가끔 쿠바인들도 있었다.
관광지에서 체게바라 빼지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내국인과 외국인의 이중화폐 정책(내국인 1CPU: 외국인24CUC)으로 외국인이 관광지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너무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환률 인상으로 50CUC 한화 28만원) 쿠바에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많아지자 자영업을 허용하였으나 이후 자영업을 통해 개인적 부의 창출 원인이 발생하고 사회적인 문제점으로 나타나자 자영업자에게 50% 세금을 징수하였고 지금은 자영업의 수가 많이 감소하였다.
‘바라데로’ 해변 상가에 활기는 넘쳐났으나 자본주의 사회처럼 굳이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것보다는 손님들이 필요한 상품을 알아서 구입하라는 것에 가까웠고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옷, 기념품, 럼주가 주종을 이루었다. ‘바라데로’ 해변을 뒤로하고 땅거미가 질 무렵 일행은 캠프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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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아침 브라질 여성동지들과 산책을 하면서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느꼈던 답답함보다는 시원함과 상쾌함을 맛보았고 산책로 주변에는 드넓은 오렌지 농장이 펼쳐있었다. 울타리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오렌지 하나를 따서 입속에 넣으니 꿀맛이다. 산책로를 따라 아기를 안고 지나가는 아낙네에게 짧은 영어로 ‘You Happy?’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쿠바’ 사람들의 행복은 울타리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없는 이런 사회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6일 오전 9시에 환영식이 개최되었고 환영 행사 프로그램은 남한의 행사와 별반 다를 바 없었으나 대회사 이후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 것이 특징이었다. 대회사에서 의미적인 내용이 많아서 인지 참가한 분들의 질문이 너무 많았다. (본인은 녹음만 하였음)
‘줄리아노 안토니아밀라’에 헌화하고 ‘아바나’ 시내에 ‘쿠바문화회관’으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내에 남아공 동지들은 차에서 노래를 불러댔다. (이후 그 노래에 익숙해져서 안하면 이상할 정도였다.) ‘아바나’ 부근 농촌 풍경은 조용하였고 대량으로 목축업을 하는 것이 눈에 띄었고 열대지방이라 그런지 잔디도 잘 정리되었고 차량은 중고차 세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듯이 1960년대~2000년 차까지 거리를 활주하고 있었다. (잔디를 자주 깎아 주어야하기에 많은 인원이 투입되는 것은 도시나 중소도시 농촌지역이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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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바나 시내에서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것을 가끔 보았으나 이 공사가 언제 완공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바나의 고대건물을 리모델링 한다면 ‘아바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전 세계 인민들이 기금을 적립하여 보수하도록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만 보존이 가능하고 쿠바 정부가 관광수입에 대해 문제점을 인정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아바나’가 ‘쿠바’의 유산만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와 혁명을 관통하는 역사의 <혁명문화회관> 현장으로 발전하지 않겠나 생각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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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문화회관 |
나는 문화관 행사장에 층층마다 전시된 그림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돌아가면 지역에 화가가 있기에 그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행사장을 뒤로하고 ‘쿠바’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 싶어 밖으로 나와 보니 너무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벤치에 남녀가 나란히 앉아 포옹하고(우리보다 더 심했다) 이야기하는 장면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쿠바’ 여성들의 옷차림은 미스스커트와 꽉 째인 청바지 및 일반바지 그리고 배꼽티(남한의 배꼽티 쿠바에서 수입되지 않았나)를 입고 있었으며 옷차림도 다양했다. 그야말로 남미 특유의 발랄함과 몸맵시를 뽐내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은 여유가 있었으며 어둡지 않고 밝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보기가 좋았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만큼 고민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차차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사진을 찍으면서 시민들의 반응은 치노(중국인)가 사진을 찍느냐 하면서 힐끗 쳐다보며 손짓하는 사람도 있었다.(중국 사람도 노예시장에 팔려와 ‘쿠바’에서 일정하게 틀을 잡고 살았으며 ‘쿠바’에도 화교거리가 있다. 그러나 2~3세대를 거치는 동안 중국 피는 오간데 없다) 점심시간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이동하고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언어 소통이 안돼서 물어 볼 수도 없었으나 참 궁금했다. 통역자의 설명으로는 11시부터 4시까지는 휴식하고 이후에 일을 한다고 하여 사회주의사회는 인간 중심적으로 노동시간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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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밍웨이작업실 |
동료 몇 분과 말로만 듣던 ‘멜라콘’ 해변에서 널게 펼쳐진 대서양과 철옹성처럼 지어진 멜로성을 잠깐 앉아서 감상하였으나 평일이어서 그런지 소수의 사람과 낚시꾼들이 보였다. 멀리서 우리는 찾는 모습이 보여 우리도 쿠바인들처럼 신호등(신호등이 없는 곳이 많다) 무시하고 모임 장소에 결합하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범칙금에 얼굴도 못들을 판인데 그들은 그 것이 일상적인 생활로 인간을 중심에 두고 운전하는 습관이 그들에게 있는가?
6일 저녁 8시에 지역주민들의 쿠바방문 환영 행사에는 ‘쿠바’ 전통문화와 결합하는 시간이었다. 문화행사에 참여한 공연단은 전문가와 장애자들이 함께 준비한 행사라고 들었다. 남한에서의 전통춤이 우아하고 선을 강조한다면 ‘쿠바’의 춤은 열정적이라고 표현하고 싶고 환영행사에 특징은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름들 위주라는데 남한과 일정한 차이점이 나타났다.
남미의 열정적인 문화에 어우러져 분위기가 고조되었으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문화는 유럽, 아프리카, 원주민의 혼합된 문화가 아닐까 그래서 쿠바 및 남미의 전통으로 정착하지 않았나 생각하여 보았다. 남미 및 유럽의 동지들 모두 ‘살사댄스’에 매료되어 시간의 차이를 넘어 흡수되는 것 같았다.(에스파냐의 기타와 아프리카의 드럼이 어우러져 쿠바음악에 독특한 요소를 가미해주는데 그 대표적인 음악이 ‘룸바(rumba)’와 선(son)으로 ‘아프로쿠바’ 음악(볼레로, 맘보, 차차차)이라 한다).
문화의 다양성은 필요하지만 문화의 고유성은 지켜져야 하며 ‘쿠바’ 인민들은 춤을 통하여 세상만사를 잊고자 하는지 아니면 행복해서 그러한 역동적인 춤이 발산되는지 나에게는 중요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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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주민 환영식 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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