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대자동차그룹의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보존 기여 활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독립 유공자 지원과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복원을 꾸준히 이어온 현대차그룹의 행보가 단발성 사회공헌을 넘어 민간외교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이 흐름의 현재형에는 정의선 회장이 있다.
상하이에 위치한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무대이자,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적 공간이다. 이 공간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의 물밑 역할이 있었다.

상하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모습. ⓒ 현대자동차그룹
그 출발점은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지난 2004년 5월 중국 상하이시 정부청사에서 당시 한쩡(韓正) 상하이 시장과 직접 만나, 임시정부청사가 위치한 로만구 일대 재개발과 관련해 한국 기업의 참여 가능성을 요청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이 자리에서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는 한국의 독립혼과 정통성을 상징하는 장소"라며, 한국 정부와 국민의 높은 관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2010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상하이시가 로만구 일대를 상업지구로 재개발하려던 시기였다. 임시정부청사 인근 지역 전체가 개발 대상에 포함되면서, 사적지 보존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외에서 제기됐다. 우리 정부 역시 청사 주소지 보존을 요청했지만, 상하이시는 지역 낙후 문제를 이유로 재개발 제외에 난색을 보였다.

상하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모습. ⓒ 현대자동차그룹
이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이 민간 차원의 가교 역할을 맡았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직접 나서 상하이시와 소통하며 한국 기업의 재개발 참여 가능성을 열었고, 이후 상하이시와 한국 정부 간 협의가 이어지면서 재개발 계획은 전면 유보됐다.
국제 공개입찰까지 진행된 사업이 중단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문화부 관계자들은 "민관이 혼연일체로 협력한 결과, 중국 정부에 우리의 입장이 충분히 전달됐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지켜낸 임시정부청사는 오늘날까지 원형을 유지하며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상하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모습. ⓒ 현대자동차그룹
이런 민간외교의 맥은 현재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독립 유공자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보훈활동을 그룹 차원의 지속 과제로 삼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국가보훈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독립운동 사료 전산화 △유해봉환식 의전 차량 지원 △국립현충원 셔틀버스 기증 등 실질적인 보훈 사업을 확대했다.
특히 해외에서 순국한 독립 유공자의 유해봉환식에는 제네시스 G90 등 그룹 차량을 의전용으로 제공하고, 유가족을 초청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서울과 대전 국립현충원에는 친환경 전기버스를 기증하며 보훈 현장의 접근성과 편의성 개선에도 나섰다.
현대차그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올해부터는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 전반으로 활동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국외 사적지 현황을 점검하고, 개보수가 필요한 곳은 관계 기관과 협력해 보존 작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과거를 기리는데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역사를 전하겠다는 의지다.

상하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모습. ⓒ 현대자동차그룹
중국 현지에서의 사회공헌활동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현대차그룹은 2008년부터 17년간 내몽고 사막화 방지 사업인 현대그린존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 사업은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계승된 대표적 장기 프로젝트다. 2019년에는 정의선 회장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중국 전역 소학교를 지원하는 꿈의 교실, 수소 에너지 교육 프로그램 등도 병행하며 현지 사회와의 접점을 넓혀왔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현대차는 중국사회과학원이 발표하는 기업사회책임(CSR) 평가에서 자동차 부문 10년 연속 1위를 기록했고, 외국 기업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의 민간외교는 과거의 유산을 지키는데서 출발해 현재의 책임과 미래세대로의 계승으로 확장되고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보존 사례는 그 상징적인 출발점이다. 기업의 역할이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사회와 역사를 잇는 연결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