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전역을 상상할 때마다 내 마음속 장면은 늘 같았다. 꽃다발을 안고 위병소를 나서면 인사팀과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고, 이어 "신나라 대위님, 전역 축하드립니다! 어느 기업에 입사하실 건가요?"라는 질문이 쏟아지는 모습이었다.
나는 '여군 장교'라는 이력 하나로 전역과 동시에 취업이 될 줄 알았다. 군에서의 시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전역식도 작별 인사도 없이 전화 한 통으로 부대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동료들과 악수 한 번 나누지 못한 채 군 생활은 그렇게 조용히 끝났다.
6년 4개월 간의 군 생활을 정리하는 순간, 마음은 허전했고 앞으로의 삶은 막막했다. 전투복을 벗은 날, 익숙한 공간조차 낯설게 다가왔다. 자유는 기대와 달리 무겁게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민간인으로서의 첫날, 집 앞 공원으로 나섰다. 늘 분주했던 출근길은 텅 비어 있었고,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임무도 없었다. 잠시 스쳐 간 근거 없는 자신감과 기대감은 곧 현실의 벽 앞에서 흔들렸다.
ROTC 후보생 시절들었던 '전역장교 특별채용'이나 선배들의 성공 사례는 이제 내게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여러 기업에 홍보·마케팅 직무로 지원했지만, 서류에서 연이어 탈락했다. '군 경력 우대'라는 문구가 반가웠지만, 정작 내 경험은 민간에서 낯설게 평가됐다. 쌓아온 자부심은 흔들렸고, 자신감도 점점 사라졌다.
그때 서울제대군인지원센터를 알게 됐다. 처음에는 채용공고만 확인했지만, 상담을 통해 조금씩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군에서 쌓은 경험을 민간 직무와 연결할 수 있다는 시각을 얻은 것도 그 과정에서였다. 대통령경호처 공보담당관 채용 준비에 도전할 때는 다시금 '훈련하는 삶'으로 돌아간 듯한 몰입을 경험했다. 결과는 서류 탈락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긴장과 열정은 나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줬다.
이후 전역장병 멘토링 콘서트 참여, 모의 면접 준비 등 다양한 활동을 거치며 나는 나를 표현하는 언어와 전략을 익혔다. 작은 리조트 회사 분양 직무를 맡았을 때는 낯선 환경이었지만, 군에서 배운 책임감과 문제 해결 태도는 그대로 나의 강점이 됐다. 모바일 결제 기업과 스타트업 등 여러 환경을 거치면서, 결국 나는 '사람과 소통하며 가치를 만드는 일'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 배운 교훈은 나를 성장시켰다. 현재 나는 국어학원 강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글쓰기를 지도하고 발표를 훈련시키며, 진로 상담까지 함께한다. 교실에서 마주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민간에서 발견한 또 다른 '작전 지도'와 같다.
군 시절 전투 현장에서 지도를 펼치던 손으로, 이제는 학생들의 미래를 그려주고 있는 것이다. 제대군인으로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군복을 벗는 순간, 자신이 무너지는 것 같고 세상에 홀로 던져진 듯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작전'이 시작될 수 있다.
그 길에서 제대군인지원센터는 든든한 동반자이자 안내자 역할을 해주었다. 상담과 멘토링, 실전 경험을 연결해주는 지원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스스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다. 군에서 배운 회복력과 인내심은 민간에서도 흔들림 없는 버팀목이 된다.
제대는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용감하게 그리고 씩씩하게 자신만의 작전을 펼쳐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제대군인지원센터의 든든한 지원과 함께라면, 누구라도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신나라 군대 나온 여자인데요 저자 / 예비역 육군 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