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폭스바겐코리아가 수년간 강조해온 '수입차 대중화' 전략이 한국시장에서 사실상 힘을 잃었다. 폭스바겐은 더 이상 '대중 브랜드'로도, '독일차의 합리적 대안'으로도 인식되지 못한 채 존재감이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다.
올해 월 판매량은 단 한 차례도 1000대를 넘지 못했고, 1~10월 누적판매는 전년 대비 39.2% 급감한 4048대에 그쳤다. 한때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굵직한 존재감을 보였던 시절과 비교하면 체감 온도는 더욱 냉랭하다.
과거 합리적인 독일차라는 명확한 포지션도 이제는 소비자에게 먹히지 않는다. 시장 트렌드는 고급화·전동화로 빠르게 이동했지만, 폭스바겐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근 수입차시장이 각자의 색이 분명한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는 사이, 폭스바겐은 대중 브랜드도, 프리미엄 브랜드도 아닌 애매한 중간 지점에서 고립된 상태다. 가격 전략, 전동화 전환, 제품 포트폴리오, 마케팅 모두가 한국시장 핵심 수요와 엇갈린 결과다.
폭스바겐코리아의 '3A 전략(누구나 접근 가능하고(More Accessible), 총소유비용이 합리적이며(More Affordable), 첨단 안전·편의사양을 적극 적용한다는(More Advanced) 전략)'은 처음에는 한국시장에 맞는 해법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후 시장 환경 변화는 예상보다 빠르고 거셌다.
가장 치명적인 변수는 디젤 중심의 라인업이었다. 경쟁사들이 전기·하이브리드 중심으로 전환한 반면, 폭스바겐의 국내 라인업은 디젤 비중이 여전히 높았고, 전기차 ID.4는 출시가 지연됐다. 전동화 흐름에 맞지 않는 라인업은 소비자의 선택지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본사 차원의 우선순위에서도 한국은 뒤로 밀려 있었다. 신차 배정이 늦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글로벌시장과 국내 시장간 출시 시점 격차는 갈수록 커졌다. 예컨대 8세대 골프는 해외에서는 2020년에 판매를 시작했지만, 한국 출시 시점은 2022년으로 2년이나 늦었다.
가격 전략도 과거와 달라졌다. 한때 합리적 수입차로 평가받던 시절과 달리, 최근 모델들은 수입 대중차치고 비싸고, 프리미엄으로 보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이 가격이면 굳이 폭스바겐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굳어지며 브랜드 충성도까지 흔들렸다.
지난 몇 년간 국내 수입차시장에는 구조적 지각변동이 있었다. 볼보는 전동화와 디자인으로 존재감을 공고히 했고, 테슬라는 전기차시장을 장악했다. 렉서스·토요타는 하이브리드 전략으로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고, BYD 같은 후발 전기차 브랜드도 빠르게 점유율을 올렸다.

폭스바겐 쿠페형 순수 전기 SUV ID.5. ⓒ 폭스바겐코리아
이 변화 속에서 폭스바겐은 확실한 존재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폭스바겐이 놓친 것은 단순한 '판매량'이 아니라 '왜 사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이다.
수입차시장에서 전기·하이브리드가 전체의 90%를 차지하는 지금, 디젤과 구형 내연기관 중심 전략을 유지한다면 현재의 부진은 일시적 침체가 아니라 장기적 구조적 추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거 폭스바겐은 대중 수입차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전동화와 고급화가 공존하는 지금의 시장에서는 중간 포지션에 안주하기 어렵다. 전동화 전략을 전면 재구축하거나, 특정 세그먼트를 집중 공략해 브랜드 역할을 재정립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흐름은 쉽게 반전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판매부진이 계속되다 보면 비용절감 차원에서 적극적인 마케팅을 진행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또 판매부진으로 직결돼 결국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한국이 더 이상 그룹 차원에서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게 됐고, 유럽이나 중국에 주력하는 편이 그룹 입장에서 더 효율적이게 됐을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폭스바겐이 한국에서 잃은 것은 단순한 판매량이 아니라 '구매 이유' 자체다"라며 "시장은 이미 대중화와 프리미엄 양극화로 갈라졌고, 폭스바겐은 그 사이에서 포지션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폭스바겐코리아는 여전히 '가성비 독일차'라는 낡은 프레임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다"며 "한국시장에 맞는 제품 전략과 전동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할 때다"라고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