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규직이 인생의 기본 경로로 통하던 시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플랫폼 업무·프리랜싱·단기 프로젝트·크리에이터 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는 청년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제도는 여전히 정규직 중심에 머물러 변화 속도와 타협하지 못하고 있다. 선택지는 넓어졌지만 보호 경계 밖으로 밀려나는 청년도 함께 늘어나는 현실이다.
청년 노동 지형은 이제 직장이 아니라 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플랫폼과 프리랜싱을 넘나드는 노동이 일상화됐음에도, 제도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불안정성이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청년이 어떤 형태로 일하든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정규직 중심 고용 제도를 재편해야 할 시점이다. © 연합뉴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지난 8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청년층 정규직 근로자 비율'을 보면, 청년층의 정규직 비율은 최근 10년간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20~29세 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2015년 67.9%에서 2024년 56.9%까지 11%p 가까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전체 청년층(20~39세) 정규직 비율도 74.2%에서 68.8%로 낮아졌다.
반면 30~39세 구간은 지난해 기준 77.3%로 여전히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정규직 감소가 특히 20대 초·중반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확인된다.
이같은 추세는 청년층이 안정적 일자리로 진입하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고용 구조가 정규직 중심에서 점차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들이 실제 체감하는 노동 환경 또한 제도 설계와 충돌하고 있다.
프리랜서 영상편집자 A씨는 "한 달만 일이 끊겨도 바로 무소득이 된다"라며 "아파도 쉴 수 없고, 4대보험도 없어 미래가 불안하다"라고 전했다.
계약직과 인턴을 반복하다 결국 크리에이터 기반 플랫폼 노동을 선택한 B씨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는 유튜브 편집과 SNS 운영 대행을 병행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B씨는 "어떤 일을 해도 공식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해 몇 년을 일해도 제자리인 느낌"이라며 "일을 옮길 때마다 경력이 끊겨 다시 시작하는 기분만 계속된다"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실질적 노동은 분명 존재하지만, 제도권 경력 구조에서 배제되는 지점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청년층 정규직 근로자 비율' © 국가데이터처
청년 노동에서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플랫폼 기반 노동의 빠른 확장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공동 발표한 '2023년 플랫폼 종사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플랫폼 노동자 규모는 최근 88만3000명에 이른다. 이는 불과 3년 사이 30% 이상 증가한 수치다.
고용 형태가 급속도로 다변화되고 있음에도, 사회보험·경력 인정·소득 관리 등 핵심 제도는 정규직 중심 구조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프로젝트 기반 노동이 일상화되면서 업무 지속기간도 평균 3~4개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단기 업무 → 공백기 → 단기 업무' 형태가 반복되면서 경력 축적이 구조적으로 어려워졌다.
사회보험 체계 역시 여전히 정규직 중심 설계로 비정형 노동자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여러 플랫폼을 오가며 일하는 청년이 늘었지만, 현행 고용보험 구조는 하나의 사업장·단일 고용 관계를 전제하고 있어 보호 사각지대가 넓어지고 있다.
가입률 역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실업·산재 같은 위험에 노출됐을 때 실질적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
해외 주요국은 비정형 노동 증가를 이미 제도 설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독일은 듀얼 직업훈련 시스템을 통해 청년 대부분을 사회보험 체계 안에서 보호하고 있다. 훈련 이후에도 동일 직무군에서 경력을 이어가는 구조를 마련해 왔다.
덴마크·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노동 형태가 아닌 개인을 기준으로 사회보장을 구성했다. 이를 기반으로 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도 실업급여 등 안전망에 포함되도록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일부 지방에서는 청년 창업과 정착을 지원하는 제도가 작동하고 있다. 여기에 청년층 이동성을 흡수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정규직 중심 고용이 흔들리는 시대, 청년 고용 해법은 단순히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데 국한돼있지 않다. 핵심은 어떤 방식으로 일하더라도 경력을 이어가고, 위험에 처했을 때 최소한의 보호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노동 형태의 다변화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경력 인정과 사회보험 체계를 현실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플랫폼·프리랜서·창업 등 정형화되지 않은 노동이 증가하는 만큼, 청년이 수행한 작업과 소득을 자동으로 기록해 공식 경력으로 인정하는 '일 중심 경력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특정 회사 소속 여부가 아니라 실질적 역량과 경험을 기준으로 경력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사회보험 역시 노동 형태와 관계없이 일한 시간에 따라 기여하고 동일하게 보호받는 '노동시간 기반 보험 체계'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정규직 여부가 아닌 실제 노동을 기준으로 안전망을 구축하는 접근이다.
소득 변동폭이 큰 노동 현실에서는 일정 기준 이하로 소득이 떨어졌을 때 자동으로 안전망이 작동하는 소득 변동 완충 장치도 필요한 과제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변화를 단순한 복지 확충이 아니라, 정규직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의 고용 정의를 청년세대 현실에 맞게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노동의 형태가 달라졌다면 보호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변금선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이 어디서 일하든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 정의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라며 "경험숙련·사회보험·경력 이동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고용 모델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청년에게 "스스로 생존하라"는 구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노동 현실은 이미 달라졌다. 그 변화에 맞춰 보호의 방식을 새로 설계해 불안정 속에서도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사회가 응답해야 할 다음 세대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