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국GM이 국내에서 운영 중인 △쉐보레 △캐딜락 △GMC의 '3브랜드 체계'가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멀티 브랜드 전략을 내세우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그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 뚜렷하다.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GM)는 비용 효율과 시장 확장성을 이유로 세 브랜드를 하나의 조직 아래 묶어 '원 팀 시너지'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한국시장에서 드러난 흐름은 오히려 세 브랜드가 서로 흩어지며 GM의 핵심 강점인 멀티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올해 실적만 보더라도 이 구조적 문제는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병렬 운영'이 만든 단절…뒤처진 신차 투입 속도
쉐보레·캐딜락·GMC는 조직상 하나로 묶여 있지만, 실제 시장 운영은 완전히 분리된 병렬 구조에 가깝다. 브랜드 간 고객 이동 경로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한 지붕 세 가족' 구조가 그대로 고착화된 상황이다.
쉐보레는 △콜로라도 △트래버스 △타호 등 북미 수입 SUV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GMC와 합산한 올해 1~10월 내수는 전년 대비 38.8% 감소한 1만2979대에 그쳤다. 이 판매량조차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혼자서 1만340대를 책임졌다.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제외하면 쉐보레·GMC 전체 내수는 사실상 존재감이 미미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 ACTIV. ⓒ 한국GM
뿐만 아니라 전체 판매 중 내수 비중은 3.5%에 불과해 사실상 수출 중심의 하청 운영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한국GM은 더 이상 내수시장 자체를 전략 대상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는 해석도 우세하다.
이와 함께 캐딜락은 전동화 전환 속도가 더디고 대부분의 라인업이 노후화돼 판매가 월 100대 안팎에 머물고 있다. 최근 에스컬레이드 IQ를 앞세워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프리미엄 시장에서 존재감 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다.
GMC 역시 초대형 픽업 중심의 니치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충성도 높은 일부 수요 외 확장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차 투입 로드맵이 불투명하고, 라인업 확대 움직임도 미약하다.
핵심 문제는 세 브랜드가 서로에게 고객을 이어주는 브랜드 상승 이동 경로(brand ladder)를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는데 있다. 쉐보레에서 상위 브랜드인 캐딜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구조도, 라이프스타일 확장을 통해 GMC로 넘어가는 동선도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즉, 세 브랜드가 한 조직 안에 있어도 브랜드 간 길이 모두 끊기며 시너지효과가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에스컬레이드 IQ는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풀사이즈 전기 SUV다. ⓒ 캐딜락코리아
더욱이 국내 자동차시장은 고급화·전동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는데도 한국GM의 세 브랜드는 모두 이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다. 경쟁사들이 매년 1~2종의 핵심 신차를 투입하는 것과 달리, 한국GM은 글로벌 GM의 일정에 종속돼 신차 투입 템포가 현저히 뒤처진다.
결국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타이밍과 수요에 맞는 제품 전략을 제공하지 못하면서 3브랜드 운영 체계는 글로벌 포트폴리오의 부산물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라진 멀티 브랜드 장점…한국시장 맞춤 전략 절실
GM은 글로벌시장에서 멀티 브랜드 전략을 가장 유연하게 활용하는 기업이다. 미국에서는 쉐보레의 대중성, GMC의 트럭·SUV 전문성, 캐딜락의 프리미엄 포지션이 명확히 자리 잡아 시너지를 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구조가 전략이 아니라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 브랜드가 각자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브랜드 간 고객 이동 경로는 끊기고 △상품·서비스·마케팅 전략은 분산되고 △통합 운영은 형식적 선언에 그친 채 병렬 구조의 비효율만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구도가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GM은 브랜드별 전략 조직이 분리돼 있고, 신차 배정 권한도 글로벌 본사에 크게 종속돼 있다. 한국시장만을 위한 포지셔닝 조정이나 라인업 교체, 전략적 신차 투입이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

시에라는 GMC의 초대형 픽업트럭이다. ⓒ 한국GM
결국 한국GM의 3브랜드 전략은 한국시장에서는 '전략적 선택'이라기보다 '구조적 제약의 결과물'로 작동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신차 투입이 아니라 세 브랜드 간 고객 이동 경로 회복, 한국시장에 최적화된 라인업 재정비, 브랜드 포지셔닝의 재정의 등 구조적 처방이다.
이런 변화 없이는 쉐보레·캐딜락·GMC의 3브랜드 체계는 앞으로도 시너지를 내지 못한 채 각자도생의 병렬 구조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쉐보레, 캐딜락, GMC가 한국에서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 건 시장 맞춤 전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라며 "세 브랜드를 한 조직 안에 묶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시너지가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관건은 한국GM이 한국시장을 단순 영업 거점이 아니라 전략 시장으로 다루느냐에 달려 있고, 그 인식 전환이 없다면 3브랜드 체계는 앞으로도 병렬 운영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