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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피가 마른다"… 고별 세일 속 '폐점 보류' 홈플러스의 겨울

고별전 포스터 뒤에 선 직원들의 목소리…"본사 지침 없어 하루하루 불안"

추민선 기자 | cms@newsprime.co.kr | 2025.11.20 15:52:51
[프라임경제]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가양점. 입구로 향하는 길목마다 '사랑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등 이별 문구가 적힌 고별 세일 포스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90% 고별 세일' 현수막이 걸렸고, 주차장은 평소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텅 빈 공간이 넓게 드러났다.

그러나 이 매장은 폐점이 확정된 곳이 아니다. 폐점이 보류된 곳이다. 이 간극이 만든 혼란 속에서 직원들은 "피가 마른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홈플러스 폐점 굿바이 세일'..."본사 지침 없어"

가양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깊은 한숨 끝에 이렇게 토로했다.

"본사에서 어떤 안내도 내려온 게 없습니다. 정말 피가 마르는 심정이에요. 매일 불안한 마음으로 출근하고 있는데, 하루빨리 정확한 지침이 나오길 바랄 뿐입니다."

홈플러스 가양점 지하 1층 패션몰에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프라임경제


매장 곳곳은 그의 말처럼 '정상 영업 중'이라고 보기 어려운 분위기다. 철수한 매장 자리에 들어선 임시 할인매장, 불이 꺼진 채 문을 닫은 코너, 고객이 드문드문 보이는 매장 내부 풍경이 불안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홈플러스 가양점 매장에 붙어 있는 고별전 포스터와 정상영업 안내문. © 프라임경제


SNS에는 '홈플러스 폐점 굿바이 세일'이라는 광고 영상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고별 세일 포스터엔 '패션몰 고별 세일'이라고 적혀 있지만 이를 세밀하게 구분해 읽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당연히 폐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또 폐점이 아니라는 말도 들리고…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하 2층 신선식품 코너에서는 여전히 홈플러스 PB 중심으로 구성된 '홈플런' 연말 행사가 열리고 있었지만, 줄어든 물량과 채워지지 않은 매대는 홈플러스의 자금난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폐점도, 정상 영업도 아닌 '애매한 현재'…소비자 혼란 커져

현재 고별 세일이 열리는 매장은 가양점만이 아니다. 경기 시흥점, 경기 일산점, 울산 남구점 등도 지난달부터 '고별 세일'을 시작했다.

문제는 폐점을 전제로 계약했던 땡처리 업체와의 정리 판매 계약이, 폐점이 보류된 이후에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홈플러스 가양점 외벽에 '90% 고별 세일' 현수막이 걸려있다. © 프라임경제


홈플러스 본사는 "폐점 발표 당시 이미 계약된 사안이라 일정 변경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소비자·직원에게는 혼란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날 매장을 찾은 한 소비자는 "SNS에서 '굿바이 세일'이라는 광고를 보고 당연히 문을 닫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정치권 개입으로 폐점 보류…M&A는 안갯속

홈플러스는 올해 3월 회생절차를 신청한 뒤, 임대료 협상에 난항을 겪던 15곳 점포를 연내 폐점하겠다고 밝혔다. 연간 영업손실 800억원 중 700억원이 임대료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가양점 지하 2층 식품코너. © 프라임경제


상황은 지난 9월19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진 이후 달라졌다. 김 원내대표는 당시 "매수자가 결정될 때까지 15개 점포와 추가 점포에 대해 폐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밝혔다. 폐점에 따른 실업 문제 등 사회적 파급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홈플러스는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을 오는 12월29일로 연장했지만, M&A는 여전히 교착 상태다.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곳은 하렉스인포텍과 스노마드 단 두 곳으로, 모두 자금력과 유통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인수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홈플러스는 청산 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직접고용 2만명 △간접고용 8만명 △8000여 입점업체 등이 연쇄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홈플러스 가양점의 텅 빈 지하주차장 모습. © 프라임경제


홈플러스 관계자는 "매각 성사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으며 남은 일정 동안 추가 투자자 유치와 내부 운영 안정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양점뿐 아니라 시흥점, 일산점, 울산 남구점 등 폐점 보류 매장들은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정상 영업도, 폐점도 아닌 '반쯤 꺼진 매장'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뿐이다.

"피가 마른다."

수십 장의 고별 세일 포스터가 붙은 가운데, 그 사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직원들의 절박한 생계의 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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