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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무진 국감 질문에 발빠른 대응, 하지만 가장 아픈 문제는 ‘어물쩍’
전혜숙 의원(민주당)이 지난 국정감사 기간에 공개한 “대상 청정원과 CJ 등이 중국에서 양념장을 들여다가 고추장을 제조한다”는 사실이 몇몇 언론에 보도되자 소비자들은 경악했다.
전 의원은 중국산 고춧가루 수입량이 의외로 적은 반면, 청정원 등 주요 업체가 복합원재료라는 이름의 중간재를 즐겨 수입하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 하지만 해당 기업들은 이런 내막을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환산치만 표시(복합재료에 들어간 각 재료의 환산비율만 표기)’해 왔다.
고추장은 메줏가루에 질게 지은 밥이나 떡가루, 혹은 죽을 버무리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섞어서 만드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이다. 물론 양산 체제로 고추장을 생산하다 보면, 이윤을 추구하느라 외국산(특히 중국) 재료를 쓰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당히 미리 버무려 놓은 중간재료를 외국에서 들여다가 한국에서 다시 버무리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이런 중간재료는 행정기관의 용어로는 복합원재료라고 하는데, 생긴 게 국 등에 맛을 내는 양념장(일명 다대기)와 흡사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적어도 소비자들로서는 중국산 양념장(복합원재료)을 국내 굴지의 식품업체들이 수입해 국내에서 고추장을 제조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당연히 소비자들은 이런 보도를 접하자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해당 업체들은 발빠른 대응을 내놨다. 언론 보도가 나간 몇시간 후부터 CJ와 대상은 급하게 보도자료를 공동 작성하는 등 움직임을 보였다.이들은 일부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산 저질 다대기와 달리 업체에서 사용하는 복합원재료는 철저한 위생 관리를 하고 있으며, 중국산 복합원재료를 사용하는 양은 일부분으로 국산 재료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욱이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현실론까지 친절하게 제시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발빠른 해명에는 정작 빠진 부분이 있다. 소비자들이 가장 당혹스럽게 생각한 ‘양념장(복합원재료)을 사용해 만들면서 왜 그간 정직하게 말하지 않았는가?’라는 부분에 대한 논의만 쏙 누락된 것이다.
◆06년 무렵부터 이미 ‘양념장 고추장이 상식’,그럼 왜 고백 안 했나?
이는 기업들이 느끼는 문제의식과 소비자들의 인식이 ‘온도차’를 갖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로 갖고 있는 고추장에 대한 기대치와 제조법에 대한 ‘상식’이 다른 것이다.
실제로 국감에서 자료가 공개됐던 당일, 모 식품회사 직원은 고추장에 양념장(복합원재료)을 쓰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제목을 뽑은 기자에게 “이게 왜 상식이 아니냐”는 요지의 항의성 전화를 걸기도 했다.
대상 청정원 등 관련업체가 기업공시 자료 등을 토대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들이 중국에 양념장제조 관련 업체를 인수하는 인연을 맺고, 양념장(복합원재료)을 수입해 쓴 것은 약 2006년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르면 고추장 제조방식에 대한 상식은 이미 몇 해 전부터 ‘너그러워져’ 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점이 업체 관계자들에게는 상식이었을지언정, 일반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 소비자들이 언론 보도를 접한 직후 배신감을 느끼면서 성토한 대목도 이 부분이다. 그간 간과돼 왔던 점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지금부터라도 명확히 제품 라벨에 양념장(복합원재료)를 썼다고 솔직히 밝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거짓말 안 한다+규정대로 한다=기업 스스로 바꾸지는 않아요
하지만 관련 기업들은 이 문제에 대해 ‘관련 규정만 준수하겠다’라는 입장만 보이며 특별히 능동적인 소비자 만족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들 기업이 제품 라벨에 양념장 사용을 굳이 하려 들지 않는 것은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기 때문이다. 즉 관련 규정에 미비점이 있었기 때문인데, 식품의약청에 따르면 ‘식품 등의 표시 기준’에서는 복합원재료를 사용한 경우 명확히 표시를 하게 되어 있으나,이에 하부규정 혹은 지침으로 볼 수 있는 ‘식품 등의 표시 기준 해설서’에는 굳이 이를 명시하지 않고 환산치만 표시해도 되도록 설명해 왔다.
식약청 등 행정기관에서는 전혜숙 의원실의 문제 제기와 관련 보도가 이어지자 이러한 미비사항을 교정하기 위해 입법안을 13일 내놓았다. 앞으로 명확히 복합원재료 사용임을 표시하고, 괄호를 친 후 환산치를 적는 쪽으로 정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식품 등의 표시기준’ 개정안 통과가 빨라야 내년 1월, 늦으면 딱히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 개선에 시일이 오래 소요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 것은, 이런 복합원재료에 대한 문제가 이번에 처음 관련기관에 인지된 것도 아니고 이미 금년 봄부터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데 있다. 전혜숙 의원실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식약청은 이미 금년 4월 2일자로 관련기관들에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 협조하도록 요청했으나 특히 시간적 긴박성을 강조하지 않고 ‘개선을 업계에 통보’하는 등 ‘참고’만 하도록 하는 소극적 자세에 그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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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청정원 관계자 역시 “13일 발표는 개정‘안’이 아니냐”고 아직 강제성이 없음을 강조하고 개정안 통과 등 규정에 따라 개선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규정이 본격적으로 손질될 때까지는 당분간 양념장 고추장은 기존의 라벨을 달고 계속 소비자 곁을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건강 챙겨주시겠다면서요? 법대로 챙기겠다는 거였나요?
문제는 법규 해석상으로는 위법은 아니지만, 고객 건강을 관리해준다는 이미지로 성장해온 이들 업체가 이런 늦장 행보를 보이는 게 옳으냐는 데 있다.
브랜드 론칭 이래 ‘착한 사람들이 만든다’는 모토로 눈길을 끌어온 해찬들 제품군과 ‘당신의 건강 청정원이 책임질게요’라는 케치프레이즈로 사랑받아온 대상 청정원의 기존 이미지를 생각하면, 다소 부정적 요소라도 스스로 밝히면서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게 더 어울린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은 ‘규정대로’와 ‘거짓말 한 적은 없다’는 논리로 이런 기대치와는 역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
이들 업체는 톱탤런트들을 줄줄이 캐스팅한 이미지 광고를 내보내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세요’라고 말하는 기업, 소비자 건강까지 챙기는 ‘애인 같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왔다. 이런 이미지 메이킹에 익숙하기에 소비자들은 규정이 바뀔 때까지 늦장을 부리겠다는 ‘법대로’ 태도를 낯설게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그러하듯, 조금은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사실이라도 먼저 고백하고 신뢰를 더 굳건히 쌓는 전화위복 계기로 삼는 게 적절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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