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급속 페달을 밟을 것만 같았던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이재명 정부 출범으로 급속 페달을 밟을 것만 같았던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그 사이 물밑싸움이 계속되고 있으나, 통화당국 의중과 국제적인 정책 흐름을 감안하면 은행권에 무게추가 실린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스테이블코인 규제 논의가 멈춰 있는 가운데, 은행과 비은행권이 상표권 출원 등 시장 선점을 둘러싼 치열한 눈치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디지털자산법' 이후 국회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추가 입법 논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당초 이달로 예고됐던 민주당의 '디지털자산혁신법' 발의가 지연된 것.
지난달 열렸던 설명회에 따르면 법안에는 디지털자산과 스테이블코인의 정의, 디지털자산사업자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었다. 디지털자산법을 보완하는 역할이었음을 감안하면 아쉬운 결과다.
이렇듯 규제 마련이 늦춰진 사이 시중은행과 핀테크, 블록체인 기업 등은 관련 상표권을 잇달아 출원하며 시장 선점 경쟁에 나서는 중이다.
카카오의 경우 카카오페이(377300)와 카카오뱅크(323410)가 각각 상표권을 내놓으며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현행법상으로는 거래·보관·이체 업무만 허용된 국내 거래소조차 대비 차원에서 상표권을 출원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규제 공백 속에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눈치싸움이 이어지고 있지만, 은행권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우선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은행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도 이창용 한은 총재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비은행 기관에 허락해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수의 비은행 기관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면 여러 민간 화폐가 생기는 셈이 되고, 이 경우 가치가 다른 여러 화폐가 유통될 위험이 생긴다"며 "그런 나라에선 통화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어렵고 금융 시스템에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에 있어 은행 등 기존 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가상화폐 선진국' 미국도 시선을 같이 하고 있다. 미 상원 통과에 이어 하원 심의 중인 지니어스법(GENIUS Act)도 발행 주체가 은행에 준하는 규제를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상세히는 △은행 자회사 △법안에 명시된 요건을 충족시켜 연방·주정부 인가를 받은 미국 회사 △미국에 버금가는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적용 중인 국가의 회사 등으로 대상을 규정했다.
이에 가상화폐 엑스알피(XRP·리플) 발행사 리플랩스가 처음으로 미국 연방 당국인 통화감독청(OCC)에 신탁은행(national trust bank) 인가를 신청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Circle), 디지털 자산 수탁사 비트고(BitGo)가 리플랩스의 뒤를 이었다. 거래 수익의 절반 이상을 가상화폐 거래에서 얻은 로빈후드(Robinhood)도 오는 가을 일부 은행 서비스를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혁신을 외치는 가상자산일지라도 전통적 금융권이 지니는 신뢰는 여전하다"며 "국내에 아직 명확한 규제가 도입되지는 않았으나 국제적 흐름, 특히 미국의 동향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