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파마리서치(214450)가 발표한 인적분할 계획을 두고 투자자와 시장의 반발이 거세다. 기존 사업 부문을 분할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지만, 소액주주들은 분할 비율의 불균형성과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승계 꼼수'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파마리서치는 지난달 13일 기존 법인을 존속법인 '파마리서치홀딩스(가칭)'로 전환하고, 리쥬란 등 에스테틱 사업을 담당할 신설법인 '파마리서치(가칭)'를 분리하는 인적분할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분할 비율이다. 지주사가 74.28%, 사업회사가 25.72%로 책정되면서, 통상적인 인적분할(대체로 5:5 수준)과 비교해 지나치게 불균형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주사 74%·사업회사 26%…불균형 분할 비율 도마 위
파마리서치가 계획하고 있는 분할 비율은 소액주주에게 상당히 불리하다는 분석이다. 최근 사업연도 기준 지주회사의 매출은 32억원, 신설법인은 3095억원으로, 신설법인이 무려 100배가량 매출이 많다. 실질적인 수익과 성장을 담당하는 신설 파마리서치(사업회사)의 비율이 현저히 낮고, 자회사 중복 상장과 지주사 특성상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은 파마리서치홀딩스(지주사) 주식을 대다수 보유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이에 따라 분할 발표 직후 주가는 하루 만에 17% 급락했고, 시가총액은 약 1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시장은 즉각 "소액주주가 희생되는 구조"라고 반응했다.
파마리서치 지분을 1%가량 보유한 머스트자산운용은 물적분할 후 자회사가 독립상장과, 인적분할 후 현물출자는 결과적으로는 똑같은 형태이고 동일한 중복상장의 문제점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파마리서치는 공시를 통해 "분할 신설회사에 대해 공개매수 방식의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존속법인이 신설법인의 지분을 대거 확보해 지배력을 갖추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결국 이번 인적분할이 지주회사가 자회사의 상장 지분을 다시 흡수하는 우회적 물적분할 구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머스트자산운용은 "물적분할 후 자회사가 독립 상장한 모습과 인적분할 후 현물출자한 모습은 그 과정에서의 신주인수권 관련된 차이점이 있지만 사실상 똑같은 형태이고 그렇기에 동일한 중복상장의 문제점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머스트자산운용은 '중복상장 없는 물적분할'을 제안했다.
또한 머스트자산운용은 이번 결정이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분할과 현물출자 과정을 거치면 대주주의 지분율은 상승하고, 이에 따라 소수주주의 거버넌스 권한은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분할 이후 두 회사 간 교환비율 설정에 따라 대주주와 소수주주 간, 나아가 자회사와 모회사 간의 소수주주 간에도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인적분할 추진 배경 "대주주 지배력 강화하기 위함"
일각에서는 인적분할 추진 배경에 대해 정상수 이사회 의장의 경영권 승계 및 상속세 절감 의도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현재 최대주주인 정상수 의장은 지분율 30%를 보유하고 있다. 정 의장의 딸 정유진 씨와 아들 정래승 씨는 각각 1만주(지분율 0.09%)씩 보유 중이다. 분할 시 지주사 주가가 하락하면 상속세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지분 이전에 유리하다는 지적이다.
머스트자산운용은 "지금의 인적분할과 현물출자를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된 후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대주주는 대부분의 소액주주와 다르게 모회사에 집중된 지분을 가진 구조로 귀결될 것"이라며 "당사는 이번 인적분할에 대해 대주주의 지분율을 30%에서 크게 증가시켜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개정된 상법의 흐름과도 맞물린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3일 국회 본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외에도 감사위원 선출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 룰'과 집중투표제 강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달 26일 논평을 통해 "파마리서치 이사회는 빠른 시일 내 충실 의무 관점에서 분할 계획의 기존 주주 이익 침해 가능성을 재검토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의 핵심을 언급한 것이다.
이어 "'쪼개기 상장'에 대해 수 차례 경고한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의 자본시장 정책 기조에 맞서는 것"이라며 "멀쩡한 회사를 두 개로 나눠서 따로 상장시켜 주주 간 이해관계를 뒤섞고 지배주주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라면 모두 상장제도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대 주주 CVC, RCPS 구조 활용 손실 회피 가능
파마리서치의 주요 주주인 유럽계 사모펀드 운용사(PE)인 CVC캐피탈(이하 CVC)이 다른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CVC는 3월 말 기준 정상수 이사회 의장(30.48%)에 이은 파마리서치 2대 주주(10.17%)다.
CVC 측 이규철·이원배 기타비상무이사는 지난달 13일 파마리서치 이사회에 참석해 인적분할에 찬성했다. 이번 인적분할의 진짜 목적이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와 상속세 절감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CVC 측 이사들이 분할에 찬성한 것을 두고 많은 시장 참여자가 의문을 제기했다.
투자금 납입 후 9개월도 지나지 않아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지자, CVC가 투자 시점에 이를 몰랐을 리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파마리서치가 인적분할하면 CVC의 RCPS(상환전환우선주)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뉜다. CVC 입장에서는 재상장 후 주가 하락이 확정적인 지주회사 RCPS에 대해서는 상환권을 행사해 연 복리 4%의 금액을 보장받고, 주가 급등이 예상되는 사업회사 RCPS는 보통주로 전환해 차익을 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CVC가 향후 파마리서치홀딩스 주가가 내려갈 때 상환권을 행사하면 CVC의 손실은 완충시킬 수 있지만 반면 회사의 현금은 줄고 소수 주주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머스트자산운용의 설명이다.
머스트자산운용은 CVC가 2000억원에 달하는 현금 투자를 파마리서치에 하며 결과적으로 75:25의 분할 비율이 산정된 원인을 제공했다면서, 파마리서치 이사회의 CVC 측 이사들이 주주 권익을 고려해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마리서치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의 일환"
반면 시장의 우려가 과하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지배주주 입장에서도 사업 자회사인 파마리서치의 주가를 적극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는 의미다.
김충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배주주 입장에서는 사업자회사의 주가가 높을수록 지주회사의 주식 교환에 있어 지주회사의 신주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공개매수가 이뤄지기 전까지 사업 자회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려는 유인이 높다"고 설명했다.
파마리서치 측은 "이번 인적분할은 단기 이해관계나 승계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글로벌 재생의학 시장 진출과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의 일환"이라며 해명에 나섰다.
회사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을 통해 연구개발과 투자 역량을 분리하고, 사업회사에 독립적인 책임경영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분할 비율에 대해선 "세무 및 회계적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는 이와 함께 △2029년까지 연 매출 1조원 달성 △명확한 배당정책 수립 등을 통해 주주와의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지배구조 개편을 동력으로 리쥬란의 글로벌 확장과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해 2029년까지 연매출 1조원 달성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