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원전주의 '건설' 주도 흐름이 '해체·정비'로 바뀌며 관련 기업들이 전략적 투자처로 부상했다. ⓒ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원전주 투자 전략이 뒤집히고 있다. 고리 1호기 해체 승인 심사를 앞두면서다. 이로 인해 기존의 '건설' 주도 흐름이 '해체·정비'로 바뀌며 관련 기업들이 전략적 투자처로 부상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오는 26일 고리 1호기의 해체 계획서를 심의할 예정이다. 상업용 원전 해체 승인으로는 국내 최초 사례다. 고리 1호기가 해체 허가를 받으면 향후 예정된 월성 1호기 등 추가 노후 원전 해체의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원전의 설계수명은 평균 40년이다. 이후 국가별로 계속 운전(운전 수명연장)을 신청해 안전성 평가를 통과하면 10년 단위로 운전 기간이 연장될 수 있으나 무제한적인 수명연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정 시점 이후에는 반드시 계획된 해체 절차로 전환돼야 한다.
원전은 발전 효율성과 경제성 면에서 뛰어나지만 방사성 물질의 존재로 인해 일반 화력발전소처럼 쉽게 철거할 수 없는 고위험시설이다. 특히 원자로 본체와 폐기물에 남아 있는 방사성 물질이 공기 중으로 유출될 경우, 주변 환경과 인명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해체 작업은 고도의 기술력과 철저한 안전관리가 요구되며 단순한 설비 철거가 아닌 △원자로 영구 정지 △방사성 오염 제거 △부지 복원까지 포함한 고난도 공정으로 간주된다.
해체 절차는 준비부터 복원까지 최소 15년 이상 소요되며, 호기당 약 8700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원전 해체 시장 규모는 약 26조~28조원, 글로벌 시장은 500조원대로 평가된다.
국내 정책 흐름 역시 정비·해체 산업에 힘을 싣고 있다. 국회는 올해 원전 관련 예산을 2138억원으로 확정하면서 소형모듈원자로(SMR)·해체 기술 개발 사업에 예산을 배분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고리 1호기 해체를 위해 필요한 핵심 기술 96개를 이미 확보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은 원전 정비 및 해체 관련 기업들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으며, 시장에서는 이들 종목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신규 원전 건설 수주와 설계·조달·시공(EPC) 역량이 중심에서 정비·해체 기술 보유 여부·ESG 지속성·수익 실현 가능성이 새로운 평가 척도로 떠오르고 있다"고 내다봤다.

기존 원전주의 '건설' 주도 흐름이 '해체·정비'로 바뀌며 관련 기업들이 전략적 투자처로 부상했다. ⓒ 챗 GPT 생성 이미지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주식시장에서도 명확하게 감지됐다. 우진엔텍(4587550)과 오르비텍(046120)은 고리 1호기 해체 일정 발표 직후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3거래일 연속 급등하며 각각 약 66%, 56% 올랐다.
두산에너빌리티(034020)는 23일 하루 동안 13.95% 뛴 6만8600원에 마감, 장중 6만94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강윤형 하나증권 연구원은 "고리 1호기 해체가 승인될 경우 국내 최초의 원전 해체 사업 참여 기회를 얻게 된다"며 "이미 원자로 압력용기, 증기발생기 등 핵심 부품 제작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해체 공정에 필요한 기술력과 실적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기술(043150)은 이날 장 초반 해체·정비 기대감으로 4.74% 상승, 장중 한때 변동성 완화 장치(VI)가 발동하면서 21.75%대를 오르내렸다. 이와 같은 등락세는 해체 시장 개화에 따른 후단 기술 중심 재평가 흐름의 확대를 보여준다.
한전KPS(051600) 또한 7.80% 상승하며 해외 노후 원전 정비 모멘텀 기대와 함께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와 관련해 성종화 LS증권 연구원은 "해외 노후 원전 정비 및 고리 1호기 해체 모멘텀이 결합됐다"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기술 수요의 실체화'로 해석하며 후단 기술 보유 기업들이 실체적 수요 기반과 투자심리의 조합 속에서 신흥 주도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봤다.
엄수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배당 정책이 견고한 원전 관련주가 구조적 수요 증가에 따른 수혜가 가능하다"며 "정비·해체 분야는 장기 성장성과 ESG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전략적 섹터"라고 평가했다.
한편 최근 원전을 도입하거나 확대하는 국가들도 초기 건설 뿐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해체까지 포함한 '전 주기적 관리능력'을 중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은 41기 △영국 36기 △독일 33기 △일본 27기 △프랑스 14기 △러시아 11기 등 소수의 국가만이 실질적 해체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중에서도 발전용 원자로 해체 실적은 미국이 유일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영구 정지된 원자로는 총 214기이며, 이 가운데 해체가 완료된 원자로는 25기에 불과하다. 아직 해체되지 않은 원전은 189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