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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관들 줄줄이 구설수,'북촌 잔혹사'

삼청동 감사원은 언장사과 치욕,재동 헌재도 구설수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8.11.07 17:44:52

[프라임경제] 가회동, 재동, 삼청동 등은 조선시대부터 이른바 '북촌'으로 불려온 곳이다.

궁에서 가까운 곳으로, 왕명을 출납하기 용이해 권력과 관계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이로 인해 남산 부근과 더불어 양반 마을로 꼽혀 왔던 곳이다. 현재에도 삼청동과 인근 재동 등에는 국무총리 공관 등 주요 인사들이 집무를 보고 있으며 청와대와도 멀지 않다. 또 '북촌'의 명성에 걸맞게 헌법재판소와 감사원도 이곳에 있다. 

삼청동 감사원은 공직 기강 확립과 회계 검사로 감사원장은 '삼청동 대감'으로 속칭되는 기관. 실세 기관이기도 하지만 공직자 윤리의 보루라는 점에서 권한에 걸맞는 평가도 받아 왔다.

좀 아랫쪽 재동에 위치한 헌법재판소 역시 1989년 설립 이래 헌법 가치 수호를 통해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기관이다.

그러나 '북촌'의 명성을 이어온 이들 기관이 최근에는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이 오히려 법과 규정을 무시해 헌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스스로 추락시켰다는 논란마저 있다. 이명박 정권 들어 빚어진 이번 논란은 가히 '북촌 잔혹사'라 할 만 하다. 

◆감사원, 표적감사·자료파기 위법 감시 기관 위상 추락

감사원은 이번 정권 들어 가장 뜨거운 논란에 말려든 사정 기관이다. 감사원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전윤철 전 원장이 정권 교체 후 법적 임기를 남기로 사퇴한 다음 김황식 현 원장이 취임했다.

전 원장은 "임기를 채우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여권의 압박으로 사퇴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새롭게 지명한 사람이 원장이 됐다. 임기 보장으로 감사원의 독립성을 지키겠다는 법적 안전판이 정권 초기에 있었던 "지난 정권 코드의 인사들은 정부투자기관장 등에서 물러나라"는 논쟁 와중에 무시된 셈이다.

이후 감사원은 KBS 감사에 착수하면서 방만 경영 논쟁에 군불을 땠다. 이 군불이 이번 정부와 원만하지 않았던 정연주 전 KBS 사장 막마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결국 김 전 사장은 감사언의 고발 조치 등으로 코너에 몰리자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감사원이 원장의 법정 임기 포기, 표적 수사 동원 논란 등으로 사정기구로서의 위상을 좀먹는 상황에서 최악의 사태가 터졌다. 이른바 쌀직불금 논란 중 부각된 '자료 파기' 논쟁이 그것.

쌀직불금을 불법 수령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지난 정권 말에 감사원이 밝혀냈지만, 정치적 고려로 인해 이 점이 은폐됐다가 이번 정권 들어서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감사원은 자료가 파기됐다고 자료 공개를 거부했지만, 오히려 이는 자료 무단 파기 논란을 빚었다.

이 점에 대해 박지원 의원(민주당)은 "감사원이 멋대로 자료를 파기했다면 이는 (법)규정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기록물보존법에는 각종 국가기관 자료를 임의로 파기할 수 없으며, 보관기관이 지난 자료라도 적법 절차를 통해 파기해야 하므로 이번 쌀직불금 자료 파기는 사정기관이 법을 앞장서 어기는 경우가 된다.

결국 이 일로 김 원장은 "관련책임이 드러나면 관계자를 모두 문책하겠다"는 요지의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제 4의 권부' 헌법재판소도 위법 논란?

삼청동 헌법재판소가 이렇게 정권 초부터 시끄러운 가운데 이웃한 재동의 헌법재판소도 혼란에 빠져들었다. 헌법재판소는 사법부로 성격을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입법,행정,사법에 이은 제 4의 권부로 따로 치는 학자도 있는 기관. 어느 모로 보나 헌법 가치를 수호하는 위상을 높게 평가하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헌법을 다루고 보호하는 이 기관 역시 위법 논란에 말려들었다.

이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일으킨 설화 때문. 강 장관은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접촉해 본 결과 종합부동산세 헌법소원이 위헌 결론이 날 것 같다"는 발언을 해 대정부질의에 나선 국회의원들을 경악시켰다.

일이 커지자 강 장관은 "제가 아니고 담당 실장과 국장이 재판관이 아닌 연구관과 만난 것이며 의견변경 취지와 내용을 설명한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헌법재판소 역시 "강 장관이 오해소지가 있을만한 표현을 해 유감"이라면서 논란의 진화에 나섰다.

한나라당에서도 7일 윤상현 대변인이 나서 "사실을 확인해 본 결과 실장과 국장이 정부측 의견이 바뀌어 다시 제출하면서 재판연구관에게 취지와 내용을 설명한 것"이라고 브리핑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법조계나 법학자 출신 야당 의원들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단지 주심재판관이 아닌 연구관을 만나 설명을 시도한 것이 사실이라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변호사 출신인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자료 제출을 할 때에도 서면으로만 할 수 있게 돼 있다"면서 설사 기재부 관료들이 접촉한 사람이 연구관이라도 문제는 문제라는 견해를 6일 밝혔다.

동국대학교 법대에서 헌법학 교수를 지낸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 역시 7일 "어느 해명도 믿을 수 없다. 재판관을 만는 게 아니라 연구관에게 설명을 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문제다. 원래 사무처에서 접수를 하게 (규정이) 돼 있고 이쪽으로 하는 게 관례"라면서 연구관마저도 접촉을 안 하는 게 법적으로 옳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법과 규정 무시한 기관들이 위상 추락 불러

결국 이번에 감사원과 헌법재판소의 위상이 급격하게 추락하게 된 것은 이들 기관을 둘러싼 외부 기관들이나 사람들(넓게는 청와대)이 이들의 힘과 권한을 왜곡되게 사용하거나 혹은 이들을 호가호위하려고 짐짓 생각한 데에도 큰 원인이 있지만, 이들 스스로 편의에서나 '무리수를 두기 싫어서'라는 이유로 법과 내부 규정 등의 선을 스스로 넘나든 데 큰 원인이 있어 보인다.

어떤 이유에서든 감사 중단과 사실 은폐를 하는 경우라도 기본 자료까지 파기하는 최악의 선택은 피했거나, 혹은 자료를 제출하러 온 관리가 취지를 설명하려 들 때에 이를 제지, 거부하는 최소한의 선만 지켰어도 이들 기구의 위신이 구설수감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주요 헌법상 기관들이 이렇게 법과 원칙을 수호하는 대신 법과 원칙을 어겼다는 이야깃거리로 전락하고 있는 사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 "법과 원칙이 서는 사회"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는 것과 정면 배치돼 더욱 안타까운 시선을 모으고 있다. 감사원과 헌법재판소 등 이들 기관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위상과 공신력을 조만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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