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기고] '두 발로 기록하는 1625 백두대간' 1기의 첫 여정

 

고은숙 종주대원 | hilucy55@gmail.com  | 2025.04.26 10:31:12
[프라임경제] 산을 오르는 이유는 모두 가지각색인데 그냥 산에 오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부터 풍경을 즐기는 것, 정상에서 풍경을 즐기는 것 등 다양하다. 한국에서 등산의 난이도는 전반적으로 쉬운 편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쉽지만은 않다. 준비를 하지 않고 섣부르게 산을 오르다가는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이에 등산 경험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산에 도전할 수 있도록 몬츄라코리아(대표 한철호, 이하 몬츄라)와 트래블마스터즈(대표 김명수)가 '두 발로 기록하는 1625 백두대간'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는 총 43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구간은 탈출로와 체력 안배를 고려해 트래블마스터즈에서 직접 구분 및 설계하고 종주대가 각 구간을 다녀온 후기를 올리기로 했다. 백두대간 프로젝트의 첫 글은 1기 종주대의 고은숙님이 올렸다. 

내 삶에서 '산'은 오직 북한산뿐이었다. 본가가 은평구에 있었기에, 북한산은 늘 일상 속 배경화면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가족들과 나들이 겸, 친구들과 운동 삼아 올랐고, 또 성인이 되어선 클라이밍이 취미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등반지로 다시 찾게됐다. 

암벽을 하나하나 익혀가며 산의 이름도 조금씩 알아갔고, 그러면서 산은 단순한 운동 장소가 아닌 나를 비우고 다시 채우는 시간의 공간이 되어갔다.

'100대 명산'처럼 인증 가능한 산은 익숙했지만 '백두대간'이라는 말은 처음엔 낯설기만 했다. 어쩌면 학창시절 지리 시간에서나 들어본 기억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던 중 '백두대간 챌린지' 모집 공고를 보게 됐고, 그 순간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고단하겠지만 내가 살아가는 이 한반도의 형태와 자연의 흐름을 두 발로 직접 걸으며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설마 되겠나'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지원했지만 발대식에서 백두대간의 의미를 듣는 순간 이 여정을 더 이상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백두대간은 단순히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수천 년 동안 한반도의 생명 흐름을 지켜온 산림 생태계,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함께 흐르고 있었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백두대간의 생태계 보존과 가치를 이어가기 위한 유네스코 지정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에 울림을 줬다. 기수제를 통해 설악산에서 지리산까지 남진하는 종주를 목표로 한다. 어쩌면 향후 백두산까지 닿을 수도 있을까?

원래는 1구간 마산봉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산불 방지 기간으로 인해 8구간부터 진행하게 됐다. 8구간은 대관령숲길안내센터에서 시작해 능경봉, 고루포기산을 지나 닭목령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강원도 평창과 강릉을 잇는 총 14.02km의 이 길은 1기 종주대의 첫 여정이자 내게는 백두대간의 첫 발걸음이었다. 대관령은 해발 8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일반적으로 3월 중순까지 눈이 깊게 쌓인다. 변덕스러운 4월의 날씨 속에서 아이젠과 스패츠, 방수 기능이 있는 단단한 채비는 필수였다.

산행은 동해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탑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대관령숲길안내센터로 이동한 뒤 8구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작됐다. 

초반에는 따스한 봄 햇살 속 평탄한 숲길이 이어졌지만 능경봉으로 향하면서 경사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산행의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햇볕이 드는 곳은 흙이 드러났지만 나무 그늘 아래에는 여전히 하얗게 겨울의 잔재가 남아 있었고, 일부 구간은 발목, 무릎까지 눈이 쌓여 있어 아이젠을 착용하고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

해발 1,123m의 능경봉은 대관령 남쪽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겨울 설경이 아름답고, 봄에는 진달래가 군락을 이룬다. 맑은 날엔 동해 일출까지 조망할 수 있어 '횡계 8경'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정상을 지나면 '행운의 돌탑'이 등산객을 맞이한다. 백두대간을 지나는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하나둘씩 쌓은 이 돌탑은 짧은 숨을 고르기에 더없이 좋은 지점이었다.

다음으로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고루포기산(1,238m) 구간은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구간이다. 고루포기산은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에 있으며, 사방으로 골이 깊게 퍼져 있어 '고루 퍼졌다'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이곳에 자라는 15~20년생 어린 소나무 '보득솔(보덕솔)'에서 비롯됐다고도 한다.

고루포기산을 지나 닭목령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은 깊은 숲과 완만한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고요한 구간이다. 산 아래에서는 장대비로 내리던 비가 고지대에서는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그 풍경은 마치 봄날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켰고, 함께한 대원들은 어린아이처럼 들떠 이 특별한 순간을 즐겼다. 

나뭇가지와 젖은 낙엽을 밟으며 걷다 보면 가을의 고즈넉함이 느껴졌고, 조릿대 군락 사이 오솔길에 들어서자 다시금 봄기운이 느껴졌다. 능선을 넘은 끝자락에서 닭목령이 시야에 들어왔다. 넓게 펼쳐진 고랭지 배추밭이 두 팔 벌려 산행자를 맞이하는 그 풍경은 한껏 숨을 들이키게 만들었다.

'닭목령'은 고개의 모양이 닭의 목처럼 길게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곳의 산세는 '천상에서 사는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고 불린다. 그중에서도 고개의 마루는 금계의 목덜미에 해당해 '계항', 즉 닭목이라 불리게 됐다.

처음엔 그저 '걸어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었지만 종주란 여러 봉우리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 걷는 장거리 산행이기에 단순한 등산과는 다른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혼자였다면 지루하게 끝났을지도 모를 첫 구간이었지만 함께한 사람들과의 대화와 응원 덕분에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숲과 능선을 넘고, 계절의 경계를 오가며 만난 백두대간은 단지 하나의 산줄기를 넘어 이 땅의 생명과 문화,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임을 새삼 깨닫게 했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가, 그리고 이 위대한 산줄기가 유네스코 세계복합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 첫걸음이 앞으로 이어질 긴 여정의 시작점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