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마친 후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박대연 기자
[프라임경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다. 밝아질 때까지 스피드를 조절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경기 하방 압력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통상 여건과 환율 급등락, 정치 불확실성 등 복합 리스크를 감안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성장과 물가만 보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데 금통위원들도 공감했지만, 금융안정과 외환시장, 자본유출 등을 고려해 이번에는 동결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금리 인하 기조는 유지하고 있으며, 5월 수정 경제전망 발표 이후 속도와 폭을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금통위원 7명 중 신성환 위원이 기준금리 0.25%포인트(p) 인하를 주장하며 소수의견을 냈다. 이 총재는 "신 위원은 성장 둔화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판단 아래 인하 속도를 더 빠르게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며 "부동산과 환율 리스크가 해소된다면 큰 폭의 인하도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지난 2월 전망치(1.5%) 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관측했다.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으로 성장률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지난 2월 경제전망을 발표할 당시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이렇게 오래가고, 대형 산불이 발생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라며 "여기에 미국 관세정책이 예상한 시나리오보다 강한 상황이어서 성장의 하방 리스크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전망치 1.5%에서 낮춘다고 할 때 떨어지는 전체를 경기부양으로 올려야 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3개월 금리 향방을 묻는 조건부 가이던스에 대해선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모두가 2.75%보다 낮은 기준금리를 열어둬야 한다는 견해를 냈다.
이 총재는 "3개월래 조건부 기준금리 전망은 여섯분 모두 3개월래 2.75%보다 낮은 수준의 기준금리를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면서 "5월에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이 크기에 전망 수정치와 그 밖의 시장상황을 보며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는게 적절하다는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향후 기준금리 인하 폭과 관련해 "과도하게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부작용을 초래한다"며 "1년 정도는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에 엄청나게 많은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 부양책을 통해 성장을 올려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 정도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 기대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다음 기준금리 결정 시점이 조기 대선 직전인 점을 언급하면서 "정치 일정을 고려한 결정은 없다"며 "한은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정치 중립성과 정책 일관성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율도 금리 동결 결정의 핵심 변수로 작용했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초 1480원을 돌파하며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최근에는 1410원대까지 급락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이 총재는 "외환시장에선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 거주자 해외투자 증가 등으로 수급 부담이 남아 있다"며 "환율 급등은 금융안정뿐 아니라 금리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위안화와의 연동성도 무시할 수 없다"며 "미·중 무역 갈등이 장기화할 경우 원화가 위안화 흐름을 따라 더 약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 총재는 앞으로 추경 등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하지 않겠다는 뜻도 전했다. 이 총재는 "앞서 추경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당시 통화정책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정부가 재정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고 앞으로는 추경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현재 검토되고 있는 약 12조원 규모의 추경이 실제로 집행될 경우 성장률에는 약 0.1%p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추경 편성이 늦어졌고 지출 항목도 달라져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며 "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