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캐즘 △화재 △트럼프 재집권으로 올 한해 국내 배터리 산업 키워드를 정리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굵직한 이슈들이 2024년을 점령했다는 의미다.
핵심 키워드들의 공통점은 '위기'와 '변수'다. 그러나 배터리업계는 이를 '성장'과 '기회'로 보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에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에 벌어진 국내 배터리업계의 주요 이슈들을 정리해 봤다.
◆캐즘에 따른 실적 추락…투자 속도 조절
국내 배터리업계는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로 올해 상반기 부진한데 이어 3분기에도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영업이익 448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38.7% 쪼그라든 수치다. 매출도 6조8778억원으로 16.4% 감소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에 따른 공제액 4660억원을 제외하면 177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삼성SDI(006400)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삼성SDI는 매출 3조9356억원, 영업이익 1299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 72% 줄었다.
반면 SK온은 매출 1조4308억원, 영업이익 240억원을 기록하며 독립 법인 출범 3년 만에 첫 분기 흑자를 달성했다. 다만 캐즘 영향으로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다.
전략은 업체별로 다르지만, 시장 반등 시기 역시 불확실한 탓에 모두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서는 분위기다.
◆잇단 전기차 화재…신뢰 회복 관건
올해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까지 확산했다. 지난 8월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QE 350 모델에 화재가 발생해 대규모 피해가 났다. 같은 달 충남 금산에서도 기아 EV6 모델에서 불이 나 소방 인력 수십명이 투입된 바 있다.
이후에도 화재 사고가 종종 발생했으나, 지난 8월에 난 사고들이 여러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정부가 배터리 안전성을 사전에 인증하는 전기차 배터리 인증제 시범사업이 시작됐고, 배터리 제조사 공개도 의무화됐다.

지난 8월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량들이 전소된 모습. ⓒ 연합뉴스
배터리·완성차업계 모두 위기의식을 느끼고 안전성 강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런 영향으로 인식이 많이 개선되긴 했으나, 아직 전기차 포비아는 현재 진행형이다. 업계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치열해진 배터리 폼팩터 경쟁…각형에 주목
전기차 화재와 맞물려 배터리 폼팩터(형태) 경쟁도 더욱 치열해졌다. 전기차 시장에서 화재 등 안전 문제가 부각되면서 완성차업체의 관심이 중국 기업이 주력하는 각형 배터리로 쏠리면서다.
각형 배터리는 알루미늄 캔에 셀을 넣어 외부 충격에 강하고, 내구성이 상대적으로 좋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각형 배터리의 점유율은 지난해 연간 70.9%에서 올해 1~10월 78.3%로 지속 확대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각형 배터리를 공급하던 삼성SDI에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이 각형 배터리 개발을 공식화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각형 배터리를 개발하고, 향후 GM의 차세대 전기차에 탑재한다는 방침이다. 각형 배터리 후발주자이지만, GM과의 공동 개발을 시작으로 고객 요구에 선택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겠다는 것. SK온 역시 각형 배터리 개발을 마치고 완성차 업체들과 양산 시기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중국 질주…차세대 배터리 개발 사활
중국의 급성장으로 국내 배터리업계가 위기에 놓였다. 최근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시장 점유율은 중국 업체들에 밀리면서 전년 동기 대비 3.5%포인트 하락한 20.2%에 그쳤다. 반면 중국은 1·2위를 차지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특히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트렌드가 NCM(니켈·코발트·망간)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LFP(리튬·인산·철)로 이동하면서 중국의 질주가 이어질 전망이다. LFP 배터리의 경우, 중국 주요 업체들이 국내 업체들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국내 3사는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압도적인 기술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에너지 밀도, 안전성 등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삼성SDI는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SK온도 2025년 하반기까지 라인을 준공해 2029년 상용화한다는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2030년까지 상용화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트럼프 재집권' 불확실성↑…포트폴리오 다각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으로 국내 배터리업계가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그동안 국내 배터리업계는 IRA상 AMPC 혜택을 받으려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하며 현지 전기차 배터리 생산 거점을 빠르게 늘려왔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이 계속해서 IRA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업계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IRA 폐지 또는 축소 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SNE리서치는 "올해 전기차 수요 부진과 함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인한 정책 변화 가능성이 한국 배터리업계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며 "행정 명령을 통해 바이든 정부가 추진한 IRA 정책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특히 미국 외 국가의 기업들에 지급되던 AMPC 지급이 유예되거나 축소될 경우, 바이든 대통령 집권 시 IRA 정책 효과를 기대해 대규모 증설에 나섰던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 3사는 변수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면서도 비전기차 사업에 힘을 주겠다는 전략이다. 전기차 전환 추세는 유효하기에 사업을 축소할 순 없는 데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리스크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국내 배터리업계는 이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캐즘과 트럼프 재집권 변수를 성장과 기회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