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 모임 관계자들이 지난 3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앞에서 열린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에서 원금 전액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1. 개인투자자 A씨는 지난 2022년 B은행을 통해 3개의 홍콩 H지수 ELS 상품에 2억원을 투자했다. 동일한 조건의 상품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원화로 투자한 2개 계좌는 30%, 달러로 투자한 계좌는 40%의 배상비율이 적용됐다. A씨는 "같은 은행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투자했음에도 배상비율이 다르게 책정된 이유를 설명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2. 개인투자자 C씨는 D은행에서 2가지 상품에 총 1억2000만원을 투자했으나, 계좌별로 25%와 20%의 배상비율이 적용됐다. C씨는 "이의신청을 했지만 은행은 '객관적인 증빙 부족'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당했다"며 배상비율 산정의 자의성과 불투명성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상당수 피해자들이 배상 기준에 불만을 품고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의 자의적인 배상 기준 적용과 금융당국의 소극적인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 H지수 기반 ELS 자율배상 동의율은 이달 중 95%에 이를 것으로 보이지만, 미합의된 2만2000건에서는 여전히 불투명한 배상 기준에 대한 피해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들은 동일한 조건임에도 각기 다른 배상 비율이 적용되는 문제를 지적하며 공정한 기준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법무법인 YK는 현재 피해자들을 대리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며,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SC제일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을 소송 대상으로 삼고 있다. 피해자들은 최소 50% 이상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불완전 판매와 배상 기준의 불투명성을 주요 쟁점으로 삼고 있다.
YK 관계자는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전국 31개 분사무소를 통해 추가 피해자 상담과 모집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3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홍콩 H지수 ELS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하여 분쟁조정 기준안을 발표했다. 기준안은 판매사 요인과 투자자별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상비율을 산정하는 것이 골자다.
주요 항목으로는 판매사가 상품을 권유한 방식, 투자자에 대한 설명의 적절성, 금융상품 이해도, 투자 경험 등이 포함된다. 평균 배상비율은 31.6%로 설정되었으며, 이 수치 내외에서 은행들은 자율적으로 배상비율을 정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분쟁조정 기준안은 판매사 요인에 따라 기본 배상비율을 설정한 후, 투자자의 특성과 투자 과정에서의 문제점에 따라 ±45%p(포인트) 내외로 가감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고령자이거나 금융취약계층인 경우 배상비율이 가산될 수 있으며, 반대로 ELS 투자 경험이 있거나 금융상품 이해도가 높다고 평가되면 배상비율이 감소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적용 과정에서 기준의 모호성과 은행의 자의적인 해석은 피해자들 사이에서 불만을 일으키고 있다. 피해자들은 동일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계좌별로 다른 배상비율이 적용된 점과 은행의 설명 부족을 문제로 지적하며, 배상 절차의 공정성과 일관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판매사와 투자자의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상비율을 산정하고 있다"며 "배상비율이 다르게 적용된 경우에도 규정에 따른 산정 방식과 고객 개별 특성에 따라 처리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배상비율에 동의하지 않는 고객에게는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고, 필요한 경우 재심의를 진행해 최대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15일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앞에서 열린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에 참석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 모임 관계자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 ⓒ 연합뉴스
피해자들은 금융당국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배상 기준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시중은행의 자의적인 배상비율 적용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피해자는 "금융당국이 기준을 마련했지만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에 실패하고 있다"며, "배상 절차의 공정성과 일관성을 담보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은 더 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금융당국이 기준을 마련했지만, 정작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응은 부족하다"며 "배상 절차의 공정성과 일관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피해자들은 더욱 큰 고통에 빠지게 된다"고 금융당국이 실질적인 피해 구제를 위한 역할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기 위해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 제도 개선을 위한 공개 세미나'를 개최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세미나에서 "ELS 사태 이후 자율배상 기준을 바탕으로 분쟁 해결에 노력해 왔지만, 판매 과정에서의 문제점과 재발 방지를 위한 종합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비자 보호 원칙과 소비자의 자기책임 원칙이 균형 있게 구현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각계 전문가와 피해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반영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일부 피해자들은 법적 소송이 긴 시간과 큰 비용을 요구할 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 피해자는 "소송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정당한 배상을 받기 위해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의 불공정을 방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