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뱅크론은 계속 이어질까? 산업은행의 러먼 브라더스 인수 추진으로 불거진 논란으로 은행간 대규모 합병이 뭇매를 맞고 있다. 분에 넘치는 투자로 국가 경제를 금융 대란으로 몰아넣을 뻔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이상으로 삼고 있던 투자은행(IB)이 이번 미국 금융 위기 속에 대거 사라지면서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자본시장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에 대해서도 길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금융권이 적극적인 변신 의욕을 보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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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나은행> |
◆유니버셜은행으로 모델 변경 필요성 제기
그 동안 자통법 이후 우리 나라의 잠정적인 목표는 한국형 골드만삭스를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높은 레버리지 비율을 이용, 위험성과 수익성 사이에서 줄을 타는 투자은행 중심의 금융산업 구조 재편은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를 통해 본질적 회의의 대상이 됐다. 은행이 IB 기능을 강화를 주도하는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증권사들이 대거 미국 금융 위기 와중에 타격을 받으면서 증권사들이 IB 기능 강화의 첨병 역할을 떠맡기도 어렵게 됐다. 최근 굿모닝신한증권 등은 리먼 등에 투자한 비용을 크게 손실을 봐 IB 기능 자체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진 상황이다.
그렇다고 변화 없이 현재 금융 시장을 그대로 둬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은 없다. 규제 강화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지만, 금융 시장 혁신 자체를 부정하거나 '후퇴'를 원한다기 보다는 지도 감독 기능의 재정비를 주문하는 목소리로 요약된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원장도 26일 "한국은 지나친 규제와 비효율적 행정 관행으로 시장 자율에 의한 경제기반 자체가 아직 형성되지 못한 단계"라고 말하면서 규제보다는 금융권 리스크 관리를 통한 금융산업 발전을 기본 그림으로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런 상황에 유니버셜은행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윤식 미국 조지워싱턴대 국제금융학 교수는 모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 정부와 금융업계에선 지금부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보험업이 결합한 '유니버설뱅크' 모델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소매금융과 도매금융, 투자금융을 고르게 혼합, 수익모델을 분산해 놓은 형태가 여기에 해당한다.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경우를 기본 모델로 삼아온 미국식 금융 제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씨티그룹과 HSBC 등의 경우가 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제반상황엔 변화, 필요성 자체에는 변함없는 메가뱅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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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민은행> |
이후 황영기 KB국민지주 회장 내정자가 지난5일 KB국민지주의 출범 준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빅 3간 대등인수합병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소규모 인수합병도 병행할 것을 주장한 것은 대표적인 유니버셜 은행 추진 구상으로 읽힌다. 황 회장은 이 자리에서 "우선 경제 전체 규모에 비해 은행이 숫자가 너무 많다. 대형은행 3개 정도로 정리가 된 일본의 case를 감안하면 수는 세 개 정도가 적당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우리 나라도 곧 자통법이 시행이 되는데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자산운용회사가 없는 상황이며 국가 대표 은행, 증권회사, 자산운용회사가 나와서 이를 국가 성장 동력으로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이런 맥락에서 보면 투자은행이 위기이 상징처럼 인식된 상황에서 기존의 탄탄한 리테일 영업망을 갖춘 국민은행은 이에 기업금융과 투자은행 등 영역을 거느리는 유니버셜 은행 방향으로 발전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같은 대등 인수합병론 등에 대해서 다른 거대은행들이 즉각 반응하거나 환영 일색으로 나선 것은 아니다. 신한지주 관계자는 황영기 회장의 발언에 대해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우리금융 역시 민영화 문제로 운신이 자유롭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 6월 취임식에서 "총자산을 500조~600조원대로 늘려 세계 67위인 자산 순위를 30위권으로 도약시키겠다"고 말했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도 "M&A와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신한은행 역시 전반적으로 고른 포트폴리오 상 당장 누군가 파트너를 고를 압박감이 없는 것이지 규모의 경제를 도외시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외환은행 매각 문제와, 유진투자증권 등 일부 증권사 매물의 등장 역시 메가뱅크론으로 가는 계기를 공급하는 논제들이라, 메가뱅크론을 빼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금융계에 던져주고 있다.
◆공공성 가미된 한국형 메가뱅크 어떻게 만들까 관건
그러나 이렇게 메가뱅크론이 미국을 맹종하는 IB중심에서 재편되고는 있지만 그 기본형에 대한 공감대 형성까지 완료된 것은 아니다. 아직 우리식의 메가뱅크를 통한 금융계 발전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못한 가운데, 단순한 '몸집 부풀리기'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번 미국 금융 위기 역시 대마불사론이 통한 구제 사례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일반 납세자들의 희생을 통한 회사 회생, 더욱이 미국 금융의 일보후퇴라는 부담을 지웠다는 점에서는 이상적인 상황이 아니다.이런 관성에 안주하는 메가뱅크가 탄생하는 것은 한국 금융 재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따라 대략 국민지주가 인수합병 문제에 본격적으로 열을 올리기 전, 즉 국민은행이 국민지주로 전환한 다음 자사주 부담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우리 금융시장 개편의 공감대가 그려져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4조원대의 매수청구권 행사 물량을 안고 있어, 해외 투자자들을 물색해 부담을 털어낼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안정되는 시점은 대략 2년쯤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여기에 우리지주는 민영화 추진 문제를 안고 있고, 산업은행은 정리에 약 4년여 시간이 남아 있다. 즉, 약 2~3년 내의 시간이 금융권에 가장 격변기이자, 우리 나라 메가뱅크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 시기가 될 전망이다.
이 상황에서 체질 강화와 방향 설정, 몸집 키우기 등이 이뤄저야 하는데 현재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가 제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전광우 금융위 위원장은 "은행들이 몸집 불리기에만 치중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는 주장을 최근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반복, HSBC의 외환은행 인수포기로 인한 '시장 과열' 가능성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것이 곧바로 인수합병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이해나 제동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임태희 의원은 "금융에 대한 규제가 만사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26일 해 리스크 관리가 이번 정부의 기본 정책임을 밝히고 있다.오히려 안일한 대마불사론에 대한 경종으로 읽는 게 타당하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 역시 25일 "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투자은행(IB) 위기가 찾아오는 등 지난 번 황 회장의 감담회 발언 이후 변화가 있으나 적극적 인수합병 추진 등 기본 방침이 변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현재의 금융 위기 상황에 조심스럽지만 기본 방향은 유지될 것임을 시사했다.
문제는 오히려 메가뱅크가 탄생할 경우 이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금융권이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투자 기능에 대해 전면적인 부정론을 펴고 있다. 또 최근 산업은행측의 리먼 브라더스 인수 추진에 대해서도 비판이 과도하게 쏟아지고 있다. 스톡옵션 보유와 공직자 윤리 문제 등에 초점이 맞춰지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 타진 자체를 백안시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우려는 여기서 나온다.
오히려 초점은 우리 나라 금융권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차차 등장할 메가뱅크 체제에서 전혀 도외시할 수 없는 투자은행 기능 자체보다는,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25일 열린 '미국 금융위기와 한국의 기회' 토론에서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겪은 비극은 리스크 관리 부재에 기인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금융 당국이 감독 기능을 잃고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교훈에서 우리도 "단기 실적주의를 지양하고 공공성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황건호 증권업협회장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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