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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家 정신적 지주, 명계춘 여사 타계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 부인, 95세 노환으로 별세

이종엽 기자 | lee@newsprime.co.kr | 2008.09.16 11:43:34

[프라임경제]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부인인 명계춘 여사가 9월 16일 오전 4시 40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사진= 생전에 명계춘 여사의 근검절약 정신은 그룹의 정신적 기둥이었다>
 
1913년 서울 출신으로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지난 1931년 고 박두병 회장과 백년가약을 맺은 명여사는 6남 1녀를 기르며 자상한 어머니로 일생을 살아왔다. 명 여사는 18세에 집안의 맏며느리가 되어 평생을 대가족과 직원들을 뒷바라지해 왔으며, 1973년 박두병 회장이 타계한 뒤부터는 두산가의 '정신적 지주'로서 가풍인 근검절약과 인화의 정신을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전수해 왔다.

명계춘 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 부인은 유교적 전통이 강한 박씨 집안의 맏며느리로 6남 1녀를 오늘날 한국 경제의 주춧돌로 키워냈다. 명 여사는 강한 정신력과 포용력을 갖춘 현모양처의 표본이었으며,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가족과 직원들을 뒷바라지를 해온 두산가의 산증인이자 정신적인 지주였다.

박두병 회장이 인화와 신용의 기업가 정신으로 1967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1970년 아시아상공회의소 연합회 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 상공업계의 거목으로 한국의 산업합리화운동을 주도한 20세기의 대표적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재벌가의 안주인답지 않게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명 여사의 조용한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고 두산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열 여덟에 30여 명이나 되는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들어간 명 여사는 무척 벅찬 일과의 나날을 보냈다. 거의 매일 끊이지 않다시피 묵고 가는 친척들의 뒤치다꺼리는 물론이고, '박가분(朴家粉)'의 30여 명 직공들의 식사를 돌보며 눈코 뜰 새 없이 집안 살림을 하느라 고된 하루하루를 보냈다. 명 여사는 어릴 적 명절 때 쓰던 달걀 껍데기에 남아있는 흰자위를 모을 정도로 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고 한다.

두산이 창업 100주년을 맞은 1996년 8월, 명 여사는 경기도 광주시 탄벌동 선영에 세운 창업 100주년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하여 감회에 젖기도 했으며, 2005년 4월에는 박두병 회장이 인재양성을 위해 서울 길동에 만든 연수원인 'DLI-연강원'의 리모델링 준공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병원에 마련돼 있으며, 19일 오전 8시 30분 발인해 경기도 광주시 선영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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